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매일경제>와 인터뷰한 내용이 논란이 되고 있다. 기업이 일자리를 만들 수 있도록 언제든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기업의 과실에 경영진 처벌이 아닌 법인에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발언은 '노동시간 확대'다. 윤 전 총장은 현 정부가 추진한 주 52시간제를 두고 "정부는 주 52시간제로 일자리가 생긴다고 주장했지만 일자리 증가율이 0.1%에 불과하다는 통계도 있다"며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타트업 청년들을 만났더니, 주52시간제 시행에 예외조항을 둬서 노동자가 노동시간 조건을 합의하거나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고 토로했다는 게 이유였다. 게임을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 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회 노동자에게 선택권이란 게 있을까
이미 한국은 긴 노동 시간을 '자랑'하고 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다.
2016년에는 윤 전 총장이 언급한, 게임 개발을 위해 장시간 일하던 20대 청년이 과로사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청년은 사망하기 석 달 전부터 불규칙한 야간근무와 초과근무를 이어왔다. 사망 한 달 전부터는 1주간 근무시간이 78시간이었다. 어떤 때는 1주간 89시간도 일해야 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의 사망 원인을 두고 게임개발 등 IT업계의 관행인 '크런치모드'(게임 출시와 업데이트를 앞두고 숙식 등을 모두 회사에서 해결하는 초장시간 노동)를 지목했다.
윤 전 총장 말대로 주52시간제에 예외조항을 두고 게임 개발 등 업계를 한정해 장시간 노동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한다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안 그래도 파리 목숨인 IT업계에서 이를 선택한다는 건 일을 그만둬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윤 전 총장이 만난 스타트업 청년들은 적어도 그 업계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겐 실질적인 '선택권'이란 없기 때문이다.
하루 노동시간 9시간 넘어가면 사망재해 2배 증가
장시간 노동과 산업재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필요충분조건 관계다. 윤조덕 한국사회정책연구원 원장이 지난 7일,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등이 주최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올바른 시행방향은?' 토론회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업무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망재해 발생위험률은 급격히 늘어났다.
독일 자료 'Nachreiner, Akkermann, & Haenecke'(2000)에 따르면 사업장에 출근한 노동자가 업무를 시작한 시간부터 끝난 시간까지, 즉 노동시간의 길이가 8시간까지는 시간대별 상대적 사망재해 발생위험률이 유사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하루 노동시간이 9시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상대적 사망재해 발생위험률이 2배로 증가했다. 그리고 12시간 이후 시간대부터는 위험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윤 원장은 이를 두고 "1일 8시간의 기준 노동 이외의 추가 노동시간(이른바 잔업시간)이 길어질수록 사망재해 발생위험률이 증가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윤 원장은 "과도한 노동시간은 한편으로는 산업재해발생 위험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자의 여가시간이 짧아져 삶의 질 향상에 제약요인이 되며 이로 인하여 근로자의 창의성과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노동 정책의 빈곤함 드러낸 윤 전 총장
현대자동차에서 야간근무를 없애고 주간연속 2교대제를 도입한 게 2008년이다. 40년 만에 야간근무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사회는 조금씩 노동자가 대우받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2018년에 통과된 주 52시간제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2022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진 윤 전 총장의 인터뷰 내용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노동계에서 이번 인터뷰를 두고 윤 전 총장의 노동관과 함께 노동 정책의 빈곤함이 드러났다고 비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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