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 나는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제 그 말을 믿기 시작했다."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인권운동가로도 크게 활약한 변호사 클래런스 대로(Clarence Darrow)가 남긴 촌철살인의 명언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미국 대통령들에 대한 실망감을 신랄하면서도 위트 넘치게 표현했다.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믿기 시작한" 사람들이 요즘 한국에 부쩍 많아졌다. 현 정권에서 권력의 요직을 지낸 사람들이 옷을 벗자마자 줄줄이 대선에 뛰어드는 그로테스크한 풍경이 그 증거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출마에 이어 최재형 전 감사원장도 감사원장에서 '조퇴’한 지 17일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세간에는 "꼴뚜기가 뛰니까 망둥이도 뛴다"는 비웃음도 무성하지만 본인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나라고 대통령을 못할쏘냐"는 오기와 자만심이 넘친다. 100년 전 한 미국 변호사가 했던 '개그’가 태평양 너머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큐’로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풍자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은 비극이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말한 "정치에서 부조리(absurdity)는 약점(handicap)이 아니다"도 우리나라에서 물구나무선 명언이 됐다. absurdity는 부조리, 불합리, 어처구니없음. 황당함, 허무맹랑, 어리석음, 어불성설 등 여러 가지 말로 번역되는데, 최재형 전 감사원장의 행보를 묘사하는 데 그만큼 적확한 단어도 없다. 그는 대선 출마를 위해 헌법에 명시된 감사원장 임기도 채우지 않고 사임하는 '반헌법’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적 위상이 흔들리는 것을 걱정했다는 사람이 감사원 조직의 신뢰성에 엄청난 타격을 가하면서 야당의 품에 안긴 것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그런데도 자신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이 대권 가도에 핸디캡이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다. 아니, 그런 황당무계함이 오히려 득점 포인트라고 여기는 눈치다. 참으로 absurd하다!
최 전 원장을 두고 언론에서는 '원칙주의자’라고 칭송해왔다. 그러나 그의 원칙은 독재정권 시절부터 사법농단 사태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불의에 한 번도 분개하지 않다가 현 정권과의 마찰에는 분기탱천한 '선택적 분노의 원칙’이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 말과 행동이 모순되는 '이율배반의 원칙’, 경쟁자의 지지율 하락을 틈타 대체카드가 되려는 '어부지리의 원칙’이다. '점잖은 신사’ '얌전한 모범생’ 등의 인물평도 무성했는데 이번에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옛 속담이 틀리지 않음을 온몸으로 증명해 보였다.
"정치는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다고 여겨지는 유일한 직업일 것이다." <보물섬> <지킬 박사와 하이드> 등의 걸작을 쓴 영국의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정치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어록을 많이 남겼다. 이 말은 당시 영국의 정치가 유한계급의 여가활동처럼 흘러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정치에서 미숙함(inexperience)과 무능(incompetence)은 죄악’임을 지적하는 통렬한 경구다.
얼마 전 파키스탄의 한 언론인이 스티븐슨의 어록을 인용하며 자기 나라 정치 상황을 개탄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권력을 대물림해온 봉건영주 가문의 사람들은 정치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타고난 권리인 것처럼 여긴다." 그런데 '정치가 아무런 준비가 필요 없는 직업’이라고 여기기로는 요즘 한국이 세계에서 으뜸인 듯싶다. "반문 정서에 기대면 정치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이 마땅한 권리인 것처럼 여기는" 게 하나의 유행으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보수정치 세력은 진보 정권을 공격하면서 "초보운전" "아마추어 국정운영" 등의 말을 자주 해왔다. 그런데 지금 제1야당이 총애하는 정치 신인들은 초보운전자 정도가 아니라 아직 자동차 운전대도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한 무면허 운전자들이다. '무경험자의 근거 없는 자신감’처럼 위험한 것도 없는데 국정운영 능력에 대한 그들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도로주행 연습도 변변히 하지 않고 과속질주하면 언젠가 대형참사가 나는 법이다. 조만간 우리는 '뼛속 검사’와 '뼛속 판사’가 외교안보와 경제, 복지 문제 등을 놓고 토론하는 광경을 보게 될 듯한데, 이런 장면은 희극과 비극 중 어느 장르일까.
따지고 보면 이런 희·비극이 벌어지게 된 것은 결국 현 집권세력의 잘못 때문이다. 입에는 꿀을 바르고 뱃속에는 칼을 숨긴 자를 중용하고, 자기 발등을 찍을 도끼를 위험천만한 높은 시렁에 모셔놨으니 인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하랴. 이보다 더 뼈아픈 것은 현 정권이 어느새 장기판의 졸처럼 만만한 상대로 전락해버린 점이다. '좀비 정당’이 '부활’의 기적을 이룬 것과는 대비된다. 오죽했으면 최 전 감사원장 같은 인물이 자신만만하게 대선판에 뛰어들었겠는가?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 아니라 형편없는 것과 불쾌한 것 중에서 선택하는 것이다."(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지금의 정치 지형이 그렇다. 어느 한쪽이 정권을 잡으면 나라가 더 형편없어질 것 같고, 다른 한쪽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극도의 불쾌감의 대상이다. 불쾌를 희망으로 바꾸는 길은 자신의 존재 이유에 대한 깊은 성찰뿐이다. "자기의 존재 이유에 대한 반성은 가장 어려울 때 진지하고 적극적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현 집권여당이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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