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가족이 죽었다. 찢어지게 가난해 최소한의 생계도 이어가기 어려웠던 일가족이 죽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자였던 강서구 일가족은 죽음을 선택하기 전 월세 10만 원 남짓을 깎아달라 했다 한다. 그들이 10여만 원에 고통 받았다는 사실은 죽음이 알려진 몇 주 남짓 동안만 우리 사회에서 잠시 부각되고 잊혀 진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선언한 촛불 정부 아래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죽어간다.
가난을 지워버린 포용적 복지국가
포용적 복지국가를 표방한 촛불 정부에서 이뤄진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은 역대 최저 수준이었다. 지난 4년 평균 2% 남짓한 인상률에 불과했다. 정부 12개 부처 73개 복지 프로그램이 기준중위소득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복지에 대한 필요가 있는 국민들이 복지 대상이 될 수 있는지, 그들에게 얼마만큼 안전망을 펼칠 것인지, 기준중위소득을 기준으로 결정한다. 기준중위소득은 단순한 지표가 아닌 복지제도의 중심이다.
지나치게 낮은 기준중위소득은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앙상하게 만든다. 수급자가 되기도 어렵고, 수급자가 되어도 살아가기 어렵다. 생계 급여의 수급 자격은 기준중위소득 30%다. 의료 급여의 수급 자격은 기준중위소득 40%다. 수급자의 실제 급여는 수급 대상자의 소득 인정액을 제외하면 더욱 앙상해진다. 생계 급여는 선정 기준이 곧 최저보장 수준이므로 소득 인정액이 줄어야 기준만큼 급여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득 인정액에서 근로·사업 소득은 30%까지밖에 공제되지 않는다. 한 달 내 폐지를 주워 10만 원을 번다면 30%를 공제하고 7만 원은 실제 수급액에서 차감한다.
빈곤을 벗어나려면 디딤돌이 될 자산이 필요하지만, 수급 자격 이상의 소득 인정액과 재산의 소득 환산율이 드러나면 수급권이 박탈된다. 때문에 수급자들은 명목상 소득이 잡히지 않도록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임금의 일자리를 감내하게 된다.
공공부조의 보충성 원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국가가 삶의 최저선을 보장하고 그 이상은 자력 구제하도록 하기 위함이지만, 최저생활의 경계선을 비현실적인 수준으로 낮게 설정해두었기에 수급권을 박탈당하면, 곧바로 벼랑에서 추락한다. 수급권자는 하루에 6000원이 넘지 않도록 먹고, 이웃과 만남을 끊는다. 건강은 날로 악화되고 고립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스스로 생을 저버리거나 고독사한다.
강서구 일가족 또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였다. 생계 급여, 의료 급여, 주거 급여를 모두 받았다. 강서구 일가족은 125만 원가량의 수급비를 지원받았다. 125만 원은 넘을 수 없는 삶의 마지노선이었다. 그들은 평소 이웃과 교류하지 않았고, 우울증과 류머티즘, 갑상선 질환에 시달렸다. 의료 급여는 받았지만, 건강보험이 포괄하지 못하는 비급여 치료비용에 허덕였다. 일가족의 가장이었던 어머니는 제대로 소득신고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단계 판매업으로 치료비용과 생활에 보탬을 해왔지만, 코로나19로 그마저도 어려워졌다. 강서구 일가족이 남긴 마지막 말은 "월세 10만 원을 깎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얼마 후 그들은 일산화탄소를 마셨다.
빈곤은 여러 복지 문제를 씨줄과 날줄로 잇지만, 정부는 최저생계보장의 기준선이 되는 기준중위소득을 현실화하지 않았다. 정부는 우리 사회에서 가난을 지워버렸다.
문재인 정부의 변명
작년 기준중위소득 결정 시기에 계측된 필요인상률은 16%를 넘었다. 두 개의 값이 합산되어 있다. 첫째 지난 3년간 중위소득 평균인 기본인상률 4% 정도다. 이와 같은 기본인상률은 원칙으로 합의되었다. 둘째 기준중위소득은 통계청의 공식 통계자료를 활용하도록 하는데, 2017년 말 통계청의 공식 소득분배지표 분석 데이터가 가계동향조사에서 가계금융복지조사로 변경됨에 따라, 중위값 증가분 12% 정도가 발생했다. 16%는 기본인상률과 통계자료 변경에 따른 증가분이 합해진 값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해진 산출 방식을 무시하고 2.68%의 지나치게 낮은 인상률을 최종 결정했다. 인상률 추산의 원칙으로 합의된 3년간 중위소득 평균 기본인상률은 1%로 결정하고, 통계자료 변경에 따라 반영해야 하는 증가분은 6년 동안 나누어 반영하도록 하면서 1.68%로 결정했다. 그 결과 실질적인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른 중위값과 기준중위소득은 10%p 이상 차이 난다. 국민의 실질적 살림살이를 반영하지도 못하고, 공식 통계자료 상 중위값을 반영하지도 못한 것이다.
현재 2022년 기준중위소득을 결정하기 위해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생활보장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월말이면 차년도 기준중위소득이 최종 결정된다. 기획재정부는 올해도 어김없이 1.4%의 낮은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제시했다. 지극히 현실적인 필요인상분에 비해서 비정상적으로 낮은 인상률을 제시하는 문재인 정부의 변명은 작년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경제가 어렵기 때문이라 한다.
사회가 위태로울수록 사회의 가장 약한 부분이 먼저 무너진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앞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을 위한 안전망 구축에 앞장서는 것이 국가의 역할 아닌가? 코로나19는 낮은 기준중위소득 인상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재난을 변명 삼아 재난에 가장 취약한 사람들을 가장 먼저 외면하는 게 촛불 정부의 포용적 복지국가인가?
문재인 정부가 수급자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다면, 기준중위소득이 현실화되어 최저생계의 마지노선이 지나치게 위축되어 있지 않았다면, 우리 사회가 강서구 일가족에게 10만 원의 여유를 더 허용했다면, 그들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포용적 복지국가를 말하려거든 최소한 2022년의 기준중위소득을 대폭 인상해야만 한다.
강서구 일가족의 죽음에 부쳐
기준중위소득 인상률을 무력화하며 국민기초생활보장을 내팽개쳐왔던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 집권여당은 종합부동산세 부자감세안을 발표했다. 고가의 부동산을 소유한 집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고, 집 소유 열망을 가진 중산층에 정책 구애를 펼치고 있다. 월세 10만 원에 시름하다가 일산화탄소를 마신 강서구 일가족과 반서민 친기득권의 길로 오롯이 걸어가는 정부여당 행태가 대비되어 절망스럽다.
더없이 큰 지지율과 개혁 열망을 품고 탄생한 촛불 정부 아니었던가, 180석 이상의 거대한 힘을 가진 여당이 아니었던가, 한 사회에서 가장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품어주고, 지켜줄 힘이 없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문재인 정부는 인색한 기준중위소득 인상률 뒤에 가려진 고통 받는 서민의 삶을 살폈어야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부자의 세금을 깎아주는 데 골몰할 것이 아니라, 서민의 월세 부담을 덜어주는데 사력을 다했어야 한다.
강서구 일가족의 명복을 빈다. 강서구 일가족의 죽음에 부쳐 묻는다. 국가와 의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여당은 누구를 위해 그 자리에 있는가? 촛불 정부가 자랑하는 포용적 복지국가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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