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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노동 기본소득 민주주의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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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노동 기본소득 민주주의국가?

[김상돈의 기본소득세상]

세계 2차 대전 동안, 독일 히틀러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태인의 대학살(홀로코스트: holocaust)의 실무책임자인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전범 재판(1961년)에서 그를 악의 평범성 이라는 언어로 표현하여 유명해진 정치철학자가 한나 아렌트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많이 회자 되고 비교적 잘 알려진 유태인계 독일 여성 정치철학자다. 그녀가 정초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의미는 그저 조직이나 위에서 시키는 일을 기계적으로 성실하게만 수행하는 노동, 다시 말해, 선악을 전혀 구분하여 사유하지 않은 채 주어진 일만하는 그 자체로 초래된 악을 뜻한다.

악의 평범성으로 유명한 한나 아렌트가 쓴 그녀의 주저 <인간의 조건>에서 노동은 인간이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노고(勞苦)로서 인체의 신진대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간의 생물학적 삶 자체다. 곡식을 생산하고 수렵과 채집 활동을 하고 음식을 만드는 활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노동은 삶 그 자체다. 작업은 손의 수고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주거와 의복 등의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다. 장인이나 제작자의 활동이 여기에 속한다. 노동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작업은 ‘제작하는 인간(Homo faber)’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인간의 자유로움에 바탕을 두고 자신의 고유한 모습을 드러내어 언어로 표현하고 사회 내에서의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규정하는 정치, 사회적 활동을 행위라고 불린다. 행위는 활동적 삶에서 인간이 인간다움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계기이다. 이 같은 활동적 삶을 통해 ‘노동하는 동물’에서 ‘제작하는 존재’, 최종적으로, 사회적·정치적 존재로서 자신의 존재의미와 가치를 구현하는 유일한 존재가 인간이다.

아렌트의 이 같은 활동적 삶에 대한 사유를 통해 끔찍한 탈근대 위험사회(4차산업혁명에 따른 노동 없는 자본주의사회)를 대비하기 위한 인간의 생존-필요 충족 조건으로서 탈 노동 기본소득을 짚어 보려 한다. 위험사회를 이론적으로 정초한 울리히 벡은 “자본주의는 노동을 철폐한다. 실업은 변두리의 운명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더불어 실업은 잠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러나 이로 인해 고용과 민주주의에 대한 책임감을 벗어던진 범역적 자본주의(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신의 정당성을 잠식당하게 될 것이다. ... 우리는 노동 없는 자본주의로 줄달음치고 있다”고 말이다.

기본소득제도의 구상화는 바로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존재로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구현하기 위한 생존-필요 충족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4차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소멸론과 노동 없는 자본주의사회는 피할 수 없는 대세이며, 거부할 수도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이러한 논거로는 인공지능(AI), 로봇경제, 플랫폼 자본주의 시대, 불로 소득과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공존적 삶의 해체 등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위험천만하게 펼쳐지고 있기에 새로운 분배적 대안 및 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끔찍한 탈근대 위험사회(노동 없는 자본주의사회)와 함께 제도적으로 구성되고 구축해야 한다.

복지국가는 노동의 탈 상품화를 지향한다면, 기본소득은 탈노동화(delaborization) 원리를 실현하는 정책이다. 탈상품화란 ‘개인 또는 가족이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회적으로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하는 정도로서 연령, 건강, 가족 지위, 취업 가능성 등과 관계없이 개인이 노동 시장 참여를 강요당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탈 상품화의 효과가 큰 국가는 사회권에 기초하여 개인에게 많은 복지 급여를 주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미약한 사회권에 기초하여 복지 급여가 제한적이다. 복지국가는 노동의 탈상품화 전략을 통해 제한적으로 노동소외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처방은 될 수가 없다.

탈 노동화란 말 그대로 노동으로부터 탈피하는 것을 뜻하고, 고실업 시대 또는 4차산업혁명에 따른 일자리 소멸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탈 노동화는 기본적으로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전제한다. 탈 노동화는 일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와 공간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임금노동에 의존하는 정도가 감소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반면에, 여가와 그 외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노동시간 감소는 필연적으로 임금소득의 감소로 이어지지만, 늘어난 여가와 그 외 시간을 통해 일상적 생활세계의 생산력이 임금소득의 상실분을 상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한 것이다. 기본소득 제도에서 국가의 역할은 모든 국민에게 실질적 자유를 민주적으로 평등하게 분배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충분하고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한 실행수준의 기본소득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에 따른 기본소득 재원 마련방안이 주요한 정책 의제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본소득은 복지국가 사회권의 한계인 복지 사각지대, 낙인찍기, 개인의 생애주기별 사회적 위험을 무조건성과 보편성으로 돌파할 수 있다고 보는 관점이다.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기본소득은 “국가가 모든 개인에게 자산조사와 일에 대한 요구 없이 지급하는 소득”이다. 이것이 기본소득의 핵심적 원칙이다. 기본소득은 범주(농민, 예술인, 청년 등)별 기본소득과 무조건 기본소득으로 구분된다. 무조건 기본소득은 다시 부분 기본소득과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분류된다. 만약에, 우리나라가 완전한 기본소득 방식으로 국민최저선을 고려해서 기본소득이 제공된다면, 전 국민에게 월 1,054,317원(2020년 1인 기준 준 중위소득 60%) 수준 이상이 제공되어야 한다. 완전한 기본소득이 노동자들과 만나면 아주 적은 수입을 얻거나 아무런 수입도 얻지 못하는 경제적 위험시기를 반복해서 겪더라도 견딜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노동자들은 직업재교육, 새로운 직업기술, 신규사업, 자영업자 또는 이익 배분 기업의 노동자로 시장의 변화에 적시 적소에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결코 완전한 기본소득으로 탈 노동 기본소득 민주주의 문을 열려 하지 않는다. 그 시작은 소액(부분)의 기본소득이다. 예를 들면, 2021년 정부 예산이 558조이다. 2023년부터 기본소득이 제도화될 경우, 연 50만 원으로 4인 가구 기준 200만 원이 될 것이고 이 액수가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제공하는 무조건 기본소득으로 도입될 경우 대략 25조의 예산이 소요된다. 소액의 기본소득은 별도의 세원개발과 재원 마련방안이 필요 없다. 다만 기존예산의 세액조정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고 합리적 근거다.

이 같은 소액의 기본소득이 완전한 기본소득에 못 미치더라도, 사람들은 보수가 적거나 불확실한 일자리를 잡더라도 노동시간을 줄여 더 많은 직업훈련이나 교육을 받고, 자기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으며, 저축, 대출, 비공식적 연대 등을 통해서 다종다양한 일을 수행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소액의 기본소득 제도화의 관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기본소득의 액수가 어느 정도 되어야 완전히 충분한 수준인지에 대한 물음을 답변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완전한 기본소득이라는 것을 단 한 번에 성취하려는 행동은 매우 무책임하고, 완전한 기본소득만이 만병통치약이고 신줏단지처럼 여기는 모든 아이디어는 위험천만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기본소득이 0.0000001% 증액이 필요할 경우 모든 국민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숙의 형 민주적 토의 과정(예: 국민투표, 공론조사 등)을 통하여 기본소득정책의 절차적 정당성과 합리성을 전제로 증액 및 감소가 이루어질 것이다. 이것이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세계화 모델과 서유럽의 복지국가 모델에 얽매이지 않고 대한민국의 고유한 실험과 대한민국 자신을 기호화하는 기본소득 민주주의국가라고 주장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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