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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의 탈춤 "곧은 목지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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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완의 탈춤 "곧은 목지 와장창"

[탈춤과 나] ② 故 백기완 선생과 탈춤

[탈춤과 나] 두번째 글은 지난 2월 작고하신 백기완 선생(1932-2021)의 글이다. 은율탈춤의 고장 황해도 은율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탈춤을 보고 자란 선생은 해방 이후 남한으로 내려와 통일운동과 함께 민중문화의 소중함을 설파하고 몸소 실천해 왔다. 백 선생의 할아버지 백태주는 1919년 삼일운동 이래 독립운동에 투신했고 1942년 일제에 의해 투옥돼 옥중 사망했다. 역시 독립운동을 위해 집을 떠났던 아버지가 탈춤을 추며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그린 이 글은 일종의 사부가(思父歌)이자, 어떠한 억압에도 꺾이지 않는 민중의 저항정신을 기리고 있다. 2002년 작성된 글이다. (편집자)

▲탈춤과 문화운동의 1세대로 꼽히는 채희완 부산대 명예교수와 함께 한 백기완 선생 ⓒ채희완

"곧은 목지 와장창"

요즈음은 모두가 흔들거리는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을 듯하다. 웬만한 장단이나 노랫소리가 나오면 너도나도 무턱대고 흔들어대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흔들어대는 어느 아낙한테 우리 탈춤을 좀 추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눈알을 모로 굴린다.

탈춤이라니 무슨 소리냐고, 그런 춤이 있다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단다. 또 마냥 흔들어대는 어느 고등학생한테 그렇게 흔들어대는 것은 마치 바위에 던져버린 유리병처럼 바사지는 몸짓, 저를 잃어버리는 몸짓이다. 그러니 마냥 휘젓는 것 같아도 두 다리를 땅에 박아 알기, 다시 말해 중심을 잡고 그리고는 잘못된 세상을 말아 사람의 뜻, 사람의 바램을 빚어내는 우리 탈춤을 좀 추면 안 되겠느냐고 했더니 할아버지는 역시 낡았다고 한다.

요즈음은 바사지든 깨지든 정신없이 흔들어대지 않고서는 미처 버릴 것 같아 자연히 온몸을 흔들어대는 것이라고. 나는 되물었다. 무엇 때문에 미칠 것 같으냐고. 그것은 아마도 두 다리를 땅에 딛고저 해도 디딜 수가 없이 마냥 뽑혀지고, 또 날마다 해가 떠올라도 앞이 안 보이는 하제, 다시 말해 희망이 안 보이는 것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그 잃어버린 하제, 빼앗긴 희망을 몸으로 빚고 한 상황으로 빚는 우리 탈춤을 추어야 할 게 아니냐고 했더니 그의 대답에 나는 대뜸 염통이 들 꼬이는 것 같았다.

탈춤은 추어 본 적도 없지만 어쨌든 그것은 오늘의 몸짓도 아니요, 따라서 사람의 몸짓이 아니라 추어지질 않는단다.

참말로 그럴까. 나는 갑자기 눈시울이 찡 해지면 문득 8․15 해방 바로 뒤 서울의 어느 골목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동네 꼬마들이 공차기를 하고저 패를 묶는데 촌놈인 꼴새에 학교도 못 다니는 뜨내기라고 나만 뺀다.

나는 그것이 그렇게 서운할 수가 없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골목구석에 쭈그리고 있는데 어절씨구 온몸이 써물거려 도무지 더는 쭈그리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애들이 뛰어 놀고 있는 골목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불림’을 외쳐버렸다. 잘 알다시피 주어진 판일랑은 이를 따질 것도 없이 깨버리고 새로운 판을 일구는 한소리 ‘불림’, “곧은목지 와장창”

그리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이를테면 춤의 맨 마루 맘판에 이르는 것 같으자 나는 나도 모르게 골목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곧은목지 걸음을 걸어버렸다. “와~싹 왔싹 왔싹 왔싹” 곧은목지 걸음이란 어떤 것일까.

말 그대로 곧은목지란 소보다도 더 끔찍하게 부려지다가 부러진 목이 붙어버려 목과 함께 온 몸이 뻗뻗이 굳어버린 나간이, 잘못 번역된 요샛말로는 장애인이다.

그래서 곧은목지는 눈이 넷이라고 했다. 얼굴의 두 눈과 발끝의 두 눈, 여기서 발끝의 두 눈으로는 바로 발 앞에 돌을 보자 함이요, 그리고 얼굴의 두 눈으로는 먼 산을 보자는 네 눈, 그러니 그 걸음걸이는 어떠했을까.

발끝의 두 눈으로는 바로 발 앞을 보자고 하고, 또 얼굴의 두 눈으로는 먼 산을 보자고 하니 눈깔은 딱 부러진 앞박이가 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가슴은 저절로 떡하니 펴게 된다.

아무리 배가 고파 허리가 자지러져도. 더구나 주머구(주먹)는 저절로 불끈 쥐어지고 그리고는 앞만 보고 가되, 높은 뫼 거친 들이 디리 다그쳐도 그냥 앞만 보고 가고, 또 굽이치는 긴 강이 가로막아도 그냥 앞만 보고 가고, 더구나 칼을 든 망나니가 가로막아도 앞만 보고 가고, 개망나니 떼거리들이 창과 오라를 들고 덤벼들어도 오로지 앞만 보고 가는 곧은목지 걸음.

그랬더니 어더렇게(어떻게) 되었을까. 보나마나였다. 판이 깨지자 애들이 한꺼번에 달겨들어 몰매를 주어 나는 피투성이가 되었다. 하지만 참말로 야릇한 일이었다. 나는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고깝지도 않았다. 도리어 매를 맞으면 맞을수록 받아치는 내 몸부림으로 하여 무엇인가 맺혔던 것이 시원하게 확하고 풀리는 것 같았으니 어찌 그리 되어지는 것이었을까.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던 일제 식민지지배 막바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우리 집안은 홀랑 거덜이 나 다 쓰러져가는 이응집(초가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짐을 함께 꾸려야할 우리 아버지가 아니 보이시는 것이었다. 더구나 그렇게 이사를 하고 나서 봄이 가고 여름 가을이 가고 겨울마저 깊어 가는데도 우리 아버지께서는 도통 집엘 오시지 않아 우리 어머니께서는 시름이 이만저만이 아니셨다.

호롱불로 삯바느질을 하시다가도 먼데서 사나운 눈보라가 스산하게 재를 넘어와 마침내 마루에 둘러친 수수거적을 싸르르 흔들 것이면 옷깃을 여미시곤 하셨다.

얼추(혹) 아버지의 기척이 아닐까 해서. 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어머니의 안타까운 기다림 따위는 아랑곳도 아니하고 앙앙 눈물 없는 울음, 맨데이 울음을 울곤 했다.

배가 고프니 고구마라도 내놓으라고. 그러던 어느 날 똑뜨름(역시) 눈이 펑펑 나리던 밤이다.

먼데서 왁자 하는 소리가 들려오자 어머니께서는 날더러 나가 보라신다. 이참엔 네 아버지일 것이 틀림없다고. 아니나 다를까. 승냥이도 꼬리를 사린 그 깊은 밤 짚새기를 철철 끌며 나가보니 눈이 허옇게 뒤덮인 배추밭에서 누군가가 홀로 훠이훠이 펄쩍펄쩍 뛰면서 거퍼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내 고장이 바로 탈춤으로 이름난 은율이라 익히 본 적이 있는 춤이지만 입때껏 보아온 것과는 좀 달랐다.

첫째 탈춤을 추는 사람들은 거의가 “녹수청산 지화자”라는 불림을 외치는데 그것이 아니고 “곧은목지 와장창, 얼쑤”그런다.

둘째 팔 다리를 휘저을 것이면 눈더미에 넘어지고 그래도 다시 일어나 “곧은목지 와장창”하며 휘젓다가 또 넘어져도 또 일어나고. 거기까지는 입때껏 내가 보아온 은율탈춤 바로 그것이었다.

헌데 엎어졌다가 일어나서는 대뜸 불림을 바꾸는 것이었다. 뭐라고 바꾸느냐.

“와~싹 왔싹 왔싹 왔싹” 그러면서 그 허연 눈밭을 똑바로 걸어가고 똑바로 걸어오는 것을 보아하니 바로 우리 아버지라. 나는 달려가며 “야, 아바이” “오, 기완아” 그러면서 우리 부자는 뜨겁게 껴안고 한참을 구르다가 나는 물어 본 것이다.

“야 아바이, 거 ‘곧은목지 와장창’이란 무슨 소리가.”

“뿌러진 목이 붙어 온몸까지 뻗뻗이 굳어버렸으니 오죽 약이 오르니? 그러니까 이놈의 세상 와장창 부시자는 것이지.”

“그러면 와~싹 왔싹 왔싹 왔싹 그러면서 어디를 가자는 것이가? 엄마이가 있는 집엔 안 (사진설명) 오고.”

“야 임마, 온몸이 뻗뻗이 굳어있는 곧은목지는 집으로 가면 죽어, 그렇게 만든 것들을 와~싹 왔싹 밟으러 가야지. 그게 진짜 탈춤이라니깐.”

그래서 그때부터 일흔이 넘은 입때껏 살기가 힘들고 그리하여 온몸이 욱죄어 올 것이면 나는 나도 모르게 외치며 살아오고 있다. “곧은목지 와장창” (2002년)

백기완 선생의 '곧은 목지 이야기' 를 듣고 창작탈 제작자 이석금 선생이 종이를 짓이겨 새로 산출해낸 곧은목지 탈.ⓒ채희완
▲백기완 선생이 작고하기 2년전인 제4회 한국민족춤제전에서 백기완 선생과 최희완 부산대명예교수(왼쪽) 2019년 7월 1일. 동양예술극장에서 춤 관람을 하기 전 "죽음의 춤"에 관해 젊은춤꾼들에게 일갈을 하셨다. ⓒ장성하
▲춤에 관한 백기완 선생의 마지막 대중강연. 2019년 7월 1일 제4회 한국민족춤제전에서. ⓒ장성하

[탈춤과 나] 원고 청탁서

새로운 언론문화를 주도해가는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http://pressian.com)이 <사)민족미학연구소>와 <창작탈춤패 지기금지>와 함께 탈춤에 관한 “이야기마당”(칼럼 연재)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 탈춤이 좋아서, 쏟은 열정이 오롯이 담긴 회고담이거나 증언, 활동일지여도 좋고 아니면 현금 문화현상에 대한 어기찬 비판과 제언 형식의 글이어도 좋습니다.

과거 탈춤반 출신의 세대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신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전통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글 내용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한 때나마 문화패로서 탈꾼으로서 개성넘치는 숨결을 담아내면 참 좋겠지요.

글 말미에는 대학탈춤패 출신임을 밝혀주십시오(대학, 학번, 탈춤반 이름 및 현직)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사진(1-5매)이나 시청각 자료도 곁들여 캡션을 달아 보내주시면, 지난 기억이 되살아나 더욱 생생한 느낌을 전달해줄 것입니다.

알뜰살뜰한 글과 사진제공에 대한 원고사례비는 제공되지 않고, 다만 원고가 묶여져 책으로 발간될 때 책 두 권 발송으로 사례를 대신합니다.

제 목 : [탈춤과 나] (부제로 각자 글 나름의 자의적인 제목을 달아도 좋음)

원고 매수 : 200자 원고지 15-30매(A4 3-5장)

원고 마감 : 2021년 9월 30일

(사진 등 시청각 관련 자료 캡션 달아 첨부하면 더욱 좋음)

보낼 곳 :

(사) 민족미학연구소 (namihak@hanmail.net) 채 희 완 (bullim204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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