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국가에서 공통부(커먼즈: commons)의 개념이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중국에서도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지 꽤 오래전이다. 물론 최근에 사용하는 공통부 개념과는 오롯이 같을 수 없으나 뜻은 맞닿아 있다. 공자와 그 후학들이 지은 책 <예기의 예운편>에서 군주제도가 없어지고 국가는 구성원이 ‘함께 공유하는 것’이 되어 한 사람이나 한 가족의 사유물이 될 수 없다고 적시되었다. 우리나라는 좀 더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사용되어 내려왔다.
특히, 조선 중기의 가장 위험한 사상가 정여립 선생이 “천하는 공물(公物)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라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이 바로 공통부다. 천하공물설을 최근의 언어로 표현하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공통부”라는 말 아니겠는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정여립 선생을 쟝자크 루소에 견줄만한 동양 최초의 공화주의자라 칭하지 않았는가? 나는 정여립 선생은 기본소득을 주창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부르려 한다. 이 칭호가 맞다면 정여립 선생은 기본소득을 최초로 구상한 토마스 페인(1795년)보다 200년 이상이 앞선 셈이 아닌가? 천하공물설이 공통부이고 정여립 선생이 기본소득의 세계최초 구상자가 아닌가 싶다. 토마스 페인은 공통부를 한낱 개간하지 않는 토지만을 일컬었다면, 정여립 선생은 하늘 아래 모두를 칭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우리나라의 우물·선산·품앗이·공동어장 등이 전통적인 공통부가 아닌가? 이 같은 공통부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니 그것이 바로 충남 보령시 장고도의 해삼, 바지락의 공동어장이다. 장고도는 81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사는 조그마한 섬이다. 1993년부터 이! 어장으로부터 나온 수익은 섬 주민 모두에게 배당되고 있다. 2019년에는 가구당 연간 1,300만 원이 배당됐다. 이렇게 배당된 기본소득과 노동소득을 합하면 가구당 연평균 2,000만 원 이상이 된다. 장고도 해삼어장이 바로 자치공동체의 공통부이고 이로부터 나온 수익은 섬 주민 모두의 몫이다. 장고도의 주민은 80세 이상의 어르신이 다수로 구성되었으나, 노후 걱정이 없는 주민연금의 섬이다.
충남 보령시 장고도의 공동어장은 분권적인 자치공동체의 조직화와 사회화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으로 지속 되어 내려오고 있다면, 미국 알래스카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석유를 통해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으로 사용되어 오고 있다. 미국 알래스카주는 1982년부터 석유자원의 투자수익금을 재원으로 매년 영구배당기금(APF)이라는 기본소득을 알래스카에 1년 이상 거주한 모든 주민에게 지급하고 있다. 연간 약 35만 원으로 시작한 배당금은 2015년 230만 원까지 늘어나며, 알래스카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있어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알래스카 영구펀드와 비슷한 국부 펀드를 운영하는 나라는 오늘날 50개국이 넘는다. 하지만 다양한 제안들만 나왔을 뿐 알래스카의 배당금 제도가 유일무이한 예로 남아있다.
천연자원 및 자연환경, 생태환경을 위시한 토지 그 자체와 빅데이터는 공통부다. 공통부란 소유하든 하지 않든 함께 사용하는 공동자원으로 보면서 자연자원에 한정하지 않고 유형·무형의 공동자원을 모두 포괄하는 보다 폭넓은 의미에서 “공동(共同)의 것”이다. 정통적인 공통부가 토지 아닌가? 토지는 자연 아닌가? 자연이다. 자연은 만인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창조된 것이지 인간이 생산한 것이 결코 아니다.
서양 최초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구상한 토마스 페인은 경작되지 않은 자연적 상태의 토지는 과거에도 미래에도 인류의 공동재산이다. 그는 토지가 경작되면, 개인의 재산 소유가 되는 것은 토지의 개선에서 나온 가치일 뿐 토지 그 자체가 아니다. 스펜스(1797년)와 사를리에(1848년)는 기본소득의 모든 재원은 건물의 유무를 불문하고 모든 토지를 임대하여 여기에서 나오는 지대(地代)로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마련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작금의 우리나라는 불명예스러운 불로소득 1위 국가다. 불로소득 범주 가운데 단연 1위가 토지다. 국민의 공분과 분노를 산 불로소득 최근 사례가 LH직원 부동산 투기 사건이다. 국민 주거안정 업무를 담당하는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직원들이 현 정부의 3기 신도시 중 최대 규모인 광명·시흥 신도시 사업지역에 100억(58억은 대출) 원대의 토지를 투기성으로 매입했다는 의혹을 2021년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변이 제기했다. 이후 추가 폭로 및 조사 결과에 의하면, 관련 공직자들의 전방위적인 부패 및 이해충돌 행위를 넘어 기획부동산, 농지법 위반 등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부동산투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이것이 비단 LH사건 뿐이겠는가? 한국 사회가 대면한 부동산 불로소득의 실체일 것이다.
이 같은 부동산 불로소득으로부터 발생하는 모든 부는 한낱 자연인의 개인기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파급효과로 부가 창출된 것이기 때문에 일부는 모두의 몫으로 모두가 누리는 것이 마땅하다. 이것이 과세의 현실화와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으로서 그 정당성을 가진다. 토지는 공통부이고, 공통부는 우리 모두의 몫이다. 모두의 것으로 부터 나온 수익은 어느 한 사람에게 귀속될 수 없다. 어느 누구만의 기여를 따질 수 없는 몫이기에 우리 모두의 몫이다. 국토보유세를 도입하여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으로 활용할 수가 있다. 지난 2021년 3월 경기연구원의 시뮬레이션 분석결과를 톺아 보면,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도입할 경우 기존의 종부세는 폐지하고, 재산세를 차감하게 된다. 주택이나 건물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오직 토지에 대해서만 과세하는 것이다. 이들 간 분리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으며 과세체계는 간소화되고, 기본소득형 국토보유세를 비례세와 누진세로 설계하여 시험적으로 계산하고 순수혜(순부담) 세대 비율을 도출했다. 세율이 같은 비례세로 설계하면 순수혜 가구가 85.9%다. 세율을 1%로 잡으면 10억 3천만원 이상 아파트(4인가족 기준)를 소유한 세대부터 세 부담이 발생한다. 누진세율로 과세할 경우 순수혜 가구가 95.7%까지 늘어난다. 국토보유세가 성공적으로 연착륙한다면 부동산시장 안정과 기본소득 실험을 위한 재원 확보라는 효과를 동시에 얻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헝가리계 오스트리아 출신인 경제사상가 칼 폴라니는 그의 이론과 지적 견해를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한 <거대한 전환>에서 노동, 토지, 화폐는 본디 시장에 팔기 위해 생산된 것이 전혀 아니다. 이 세 가지가 마치 판매를 위해 생산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시장의 마법이 허구의 상품으로 인도한 것일 뿐이다. 토지는 단지 자연의 다른 이름일 뿐이고, 토지는 인간이 결코 만들 수 없고, 그저 삶의 터전이었고, 언제나 항상 삶의 터전일 뿐이다. 화폐는 구매력의 징표로서 상품이 아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지금으로부터 430여 년 전 정여립 선생이 말씀하신 “천하는 공물인데 어찌 일정한 주인이 있으랴”라는 천하공물설의 말씀이 귓가에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듯하다.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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