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흥식(60) 5.18 구속부상자회 회장이 지난 9일 17명의 시민들이 죽고 다친 광주광역시 학동 4구역 재개발 건물 붕괴 참사와 관련 핵심인물로 지목되자, 경찰 수사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해 세간에 많은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지난 3년 내내 광주에서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신양OB파'라는 폭력 조직의 우두머리급으로 폭력전과 4범인 문흥식은 인우보증, 다시 말해 어떤 문서적 증거 없이, 주변의 증언을 통해5.18 유공자로 인정됐다. 2004년 그리고 2006년 두 차례 탈락한 후 2015년의 일이다. 그리고 불과 4년 후인 2019년, 문흥식은 그가 현역 조폭이라는 논란 속에서 5.18 구속부상자 회장에 당선됐다.
문흥식이 회장에 당선된 시기는 미묘했다. 5.18 단체들은 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공법단체화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5.18 보상의 일환으로 이들 단체의 수익 사업이 현실화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 전환기가 조폭에게는 탐나는 먹거리로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회장에 당선된 지, 불과 1년 넘긴 2021년 1월 일부 5.18 단체가 문흥식이 수익사업 이양을 명목으로 3억 원을 업자로부터 받았다고 YTN이 단독보도했고, 일부 유공자가 그를 검찰에 고발했다. 문흥식은 맞고소로 맞섰다. 그후 일부 유공자들은 그의 퇴진을 요구하며 천막 농성을 시작했고, 그 농성은 100일 넘도록 계속되고 있다.
내가 문흥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던 것은 5.18 당시 광주 근무 보안사 요원이었던 허장환 덕이었다. 2019년 허장환은 김용장이라는 인물을 518 당시 광주 근무 미군 군사정보관이라며 한국에 데리고 왔다. JTBC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은 이 과정을 독점 보도했다. 나는 두차례 <경향신문> 기고문에서 미국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입수한 자료와 관계인사와의 인터뷰를 인용하며, 김씨가 군사정보관이 아닌 민간인 통역에 불과했다는 것과 허 씨와 김 씨의 주장 대부분이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후 몇몇 언론보도가 나의 주장을 뒷받침했고, 한 JTBC의 기자는 나의 주장을 “내부에서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내게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허 씨와 함께 김 씨의 주장을 보도한 B기자는 정정보도와 사과를 요구하는 내게 막말 퍼붓고, 나와 내 글을 실은 언론사를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한편, 전두환이 광주까지 와서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한 김용장은 광주에 와서 검찰과 면담까지 하고도 전두환 명예훼손 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와 자신이 쓴 정보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하고 출국한 김용장은 그후 대중으로부터 완전히 사라졌다.
그런데, 같은 해 7월 허장환과 문흥식은 함께 피지의 김용장 집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들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 할 수 있다. 허장환과 문흥식은 '광주 5.18 혁신위원회'라는 별도의 5월 단체 출범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흥식의 직책은 최고위원. 허장환이 페이스북에 올린 격문을 보면 무엇을 혁신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후 이 단체는 5.18구속부상자중앙회 혁신위원회로 탈바꿈하고, 문흥식은 이를 발판 삼아 518구속부상자회를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허장환과 김용장의 근거를 제시하지 못한 주장이 5.18 진상규명에 가져온 혼란이 적지 않다. 광주에서는 이들의 주장에 기반한 뮤지컬도 나왔다. 공동체에 구체적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면, 허장환과 김용장의 주장도 어지간하게 표현의 자유에 걸쳐 있을 수도 있었다. 따라서 그동안 온갖 협박과 모욕을 감내했지만, 나는 어떠한 처벌이나 정부 조사도 지금까지는 원치 않는다.
그러나 허장환이 문흥식과 연결점을 갖고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5월 단체들이 공법단체화 되는 시기에 이 두 사람이 조직을 결성해서 얻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가? 최근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문흥식에게 귀국을 종용하고 있다고 한다. 문흥식은 세상이 조용해질 때까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겠다는 뜻을 언론에 전했다.
문흥식이 도피한 미국과 한국 사이에는 범죄자인도조약이 1999년부터 발효 중이다. 게다가 그가 도주한 곳으로 여겨지는 시애틀이나 시카고에는 한국 공관도 있다. 의지만 있다면, 그의 행방은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흥식이 자진 귀국을 계속 거부한다면, 사법당국은 영장집행 등의 합법적인 강제를 통해 그를 한국으로 속히 데리고 와야 한다. 17명이나 사상자가 발생한 건물 붕괴 관련 문흥식의 여죄를 밝혀야 한다. 또 5.18 부상자회 회장 재임 중 그의 행각과 그가 허장환과 함께 무슨 의도로 단체를 결성하려 했는지, 김용장과 허장환이 빚은 증언 소동 전말에 역할을 했는지, 했다면 무슨 역할을 했는지, 위법성은 없었는지 명명백백히 규명해 줄 것을 간곡히 희망한다.
그래야만 광주 건물 붕괴의 피해자와 가족들이 진정한 위로가 될 것이고, 무엇보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순간인 5.18항쟁의 유산을 사유화하려는 일부 세력들을 초기에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뉴욕에 살고 있는 설갑수는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Gwangju Diary의 번역편집자이다. 미국에서 그의 글은 Jacobin, Labor Notes, Business Insider 그리고 Progressive Magazine 등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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