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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안전 후진국'에 머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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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안전 후진국'에 머물 것인가?

[박병일의 Flash Talk]

수년 전 안식년을 갔던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연히 초등학교에 다니는 옆집 영국 아이가 부르는 노래를 듣게 되었다. "London’s burning! London’s burning! Fetch the buckets! Fetch the fire-hooks! Fire, fire! Fire, fire! Pour on water. Pour on water(런던이 불타고 있다! 런던이 불타고 있다! 양동이를 가져와! 소화갈퀴를 가져와!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물을 부어라. 물을 부어라)." 이 노래를 듣고 처음엔 '뭐 이런 노래가 다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노래의 배경을 알게 되면서 이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1666년 9월 2일 일요일 자정 무렵 런던의 한 제과점에서 불이 시작되었다. 화재는 마침 불어오던 동풍을 타고 맹렬히 번지며 런던을 덮쳤으나 당시 런던 시장경(Lord Mayor of London)이었던 토마스 블러드워스(Thomas Bloodworth)의 우유부단함으로 인해 초기 진압이 지연되면서 화마는 무려 나흘 동안 밤낮 없이 런던을 할퀴었다. 이 대(大)화재는 런던의 내부에 있는 런던 월(wall)을 대부분 태웠던 바, 이는 역사상 런던이 겪은 가장 심각한 사고(事故)들 중 하나로 기억되었다. 이 대화재는 당시 1만3200채의 가옥과 87채의 교구 교회, 세인트폴대성당, 그리고 이외에도 대부분의 건물들을 파괴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화재에 모든 것을 잃고 이재민이 되었다.

최근 광주에서 재개발 사업을 위해 철거 작업 중이던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되면서 시내버스를 덮쳐 승객 9명이 사망하고 8명이 중상을 입은 사고가 발생했다. 참사가 일어나자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의 정몽규 회장은 "이러한 사고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전사적으로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해나가겠다"고 밝혔으나, 막을 수 있었던 참사였음에도 현장 안전 관리가 허술해서 빚어진 인재(人災)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면서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더욱이 2년 전에도 서울 잠원동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해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었던 건물 붕괴 사고가 있었기에 '왜 유사 사고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안전 불감증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나라의 사건 사고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기억을 떠올리기조차 안타깝고 슬픈 일이지만, 그럼에도 일부 예를 들면, 1994년 10월 21일 한강에 위치한 성수대교의 상부 트러스 약 50m가 붕괴해 무너져 내려 17명이 다치고 32명이 사망하여 총 49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1995년 6월 29일에는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 건물이 무너지면서 1445명의 종업원과 고객들이 다치거나 사망했으며, 인근으로 파편이 튀어 주변을 지나던 행인 중에도 부상자가 속출했다. 2014년 4월 16일에는 제주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복되어 침몰함으로써 시신 미수습자 5명을 포함한 304명이 희생되었다(지금까지 밝혀진 사고 원인은 무리한 변침으로 알려져 있다).

예기치 않은 사고는 사실 어느 나라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사고 이후 재발 방지에 대한 약속과 대책이 그저 허울 좋은 말에 그치느냐, 아니면 인재(人災)의 발생을 사회적으로 통렬히 반성하고 유사 사고의 반복을 막을 실질적인 개선을 도출해 내느냐의 차이일 것이다. 앞서 언급한 영국은 후자로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경험한 우리나라는 전자의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학교에서 노래를 가르치면서까지 다시는 과거와 같은 대화재를 경험하지 않기 위해 어려서부터 국민적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자 노력하는 영국과 대비되는 우리의 자화상이 씁쓸함을 갖게 한다.

지금껏 해왔던 형식적인 '땜질식' 처방으로는 결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 향후 다시는 고질적인 후진국형 사고가 재차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재난·재해 예방 매뉴얼과 법령을 대폭 개선하고 반복되는 참사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또한 국민들 역시 안전 불감증을 타파하고자 스스로 노력할 때에만 안전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어제보다 더 나은 안전선진국으로 한 걸음 나아가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광주 건물 붕괴 사고로 인해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빌며, 가족을 잃은 유가족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마음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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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

한국외대 경영학과에서 국제경영을 가르치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경제연구소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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