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권에서 국민의 힘 30대 이준석 당대표선출보다 더 뜨겁고 좀처럼 식을 줄 모르는 정책논쟁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 이유는 내년 2022년 3월 9일에 있을 대통령선거 유력후보자들이 제시한 선거공약 가운데 단연 유일무이한 정책이고 국민적 공감이 가장 높은 정책 때문으로 추측되고,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에서 재난 지원금과 경기도 재난 기본소득에 대한 사회실험을 추진하였고, 기본소득의 그 효과와 가능성이 매우 지대하였기에 그런 것으로도 예측된다. 기본소득에 대한 공격용으로 기본소득의 사촌격인 안심 소득과 공정소득을 대변하는 마이너스 소득세를 도구로 삼아 잠깐 쎄게 들어오는 듯하다가 자신이 없는지 주춤하는 듯하다. 그 후속으로 소주성이냐 수주성이냐의 논쟁으로 이어가는 모양 세다.
이 모양새를 이어가는 분은 국민의 힘에서 최고의 경제전문가 출신 윤희숙의원이다. 윤의원은 2019년 노벨경제상을 수상한 배너지와 뒤플로가 쓴 <힘든 시대의 좋은 경제>라는 503페이지에서 513페이지까지 확실하게 읽어본 국민의 힘 현역 국회의원이고 “그 책 읽어 봤냐”의 유행어를 만들기도 했다. 그뿐인가, 503페이지부터 513페이지에서 “가난한 나라에 비해 부자나라는 보편적 기본소득이 유용하지 않았다”라는 문구를 날 것 그대로 독해하고 그 논쟁에 참여하더니, 이제는 급기야 기본소득이 “소주성이냐, 소주성 쌍둥이가 수주성이다” 식의 유행어를 또 만들어 보려는 요량인듯하다. 소주성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수주성은 수요주도성장정책, 세주성은 세금주도 성장정책 등 약어다. 가히 약어의 시대이고 약어가 대세이다. 이러한 약어를 사용하면서 “기본소득은 복지정책이 아닌 성장정책이라 모든 논의의 대상에서 탈락하셨음을 알려 드린다”고 때 이른 정책탈락선언도 마음대로 하는 중이다.
도대체 기본소득이 무슨 정책이길래? 성장정책이자 경제정책이라고 일방적이면서 이상한 탈락선언을 하기도 하고, 소득 주도성장정책의 쌍둥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포퓰리즘은 싫어” 하는 등 이상한 정의와 언어의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난무하니 국민은 그저 혼란할 수밖에 없겠다 싶다. 기본소득을 비판하는 진영들이 노리는 궁극적인 전략과 목적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기본은 뿌리, 근본, 토대로서 기본소득은 소득의 한낱 밑거름일 뿐이고,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무조건 제공하는 최소생계비일 뿐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경제적 기본권이자, 인간 살림살이의 마중물일 뿐이다.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고 베풂이 아니라 정의다. 기본소득은 선심 쓰는 선거공약이 아니라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이고, 포퓰리즘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다. 따라서 기본소득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세련된 복지정책이나 경제정책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기 발로 독립적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발판이자 모두에게 민주적으로 실질적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정책이다.
기본소득은 경제정책과 복지정책을 아우르는 21세기 사회정책이다. 사회정책이란,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빈곤·산업재해·질병·노령·실업 등의 사회적 위험에 대비하고 각종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책이다. 그 범주로는 사회보장정책, 노동정책, 분배정책, 가족정책, 주택정책 등이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최소한 산업혁명부터 인류사회는 경제적 가치를 사회적 가치 앞에 배치 해왔다. 경제성장이 이루어지면 사회문제, 특히 빈곤 등 핵심 사회문제는 따라서 해결될 것이라 했고, 그러한 전제하에 정책들이 펼쳐져 왔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해방 이후 줄곧 그렇게 해왔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낙수효과(trickling effect) 또한 경제적 가치가 사회적 가치보다 우선하였다. 낙수효과란, 대기업, 재벌, 고소득층 등 선도 부문의 성과가 늘어나면, 연관 산업을 이용해 후발·낙후 부문에 유입되는 효과를 의미한다. 컵을 피라미드같이 층층히 쌓아 놓고 맨 꼭대기의 컵에 물을 부으면, 제일 위의 컵부터 흘러 들어간 물이 다 찬 뒤에야 넘쳐서 아래로 자연스럽게 내려간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국부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분배보다는 성장을, 형평성보다는 효율성을 우선시한다는 전제로부터 나온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도 줄곧 낙수효과에 기반한 대기업과 수출 중심의 정책을 고수해왔다. 이 낙수효과에 기반한 경제정책 결과, 사회적 양극화로 인한 공존적 삶의 해체,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집어삼키는 대기업의 약탈적 유통업, 해방 이후 부모보다 가난한 청년세대, 무자비한 개발에 따른 생태공동체파괴와 기후변화, 도덕과 규범의 비존재로 범죄증가, 생활고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과 고독사 등의 이! 끔찍한 위험사회가 더욱 가속화되었다.
기본소득이 소주성의 쌍둥이라 하는 소득주도성장과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지금까지의 일부 평가를 살펴보려 한다. 소득주도 성장론은 근로자와 서민가계의 가처분소득과 구매력을 대폭 끌어올려 현재 수출 대기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경제 구조를 가계 중심, 근로소득자 중심으로 전환 시켜 내수 경제를 발전시키고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겠다는 이론이다. 소득 주도성장론의 정책적 방법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의 고용 안정성 확대, 최저임금 인상 및 실업급여, 출산 유급 휴가 등의 소득 보전, 중소기업의 임금 상승, 공공부문 고용 창출로 좋은 일자리 늘리기, 보조금, 바우처 지급 등이다. 최근 4년(2018~2021년)간 최저임금 누적 인상률은 34.8%다. 2020년에는 법정 최저임금인 시급 8,590원을 받지 못한 근로자가 319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이는 전체 임금근로자의 15.6%다.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수준이며, 역대 최고치도 그 직전 해인 2019년으로 338만 6천 명이다.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지급하기 어려운 기업 또는 영세자영업자들이 이미 한계에 도달했음을 웅변해주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하나로 최저임금 인상을 내세웠던 것이 소규모 기업들을 계속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주장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사회적 양극화와 함께 4차산업 시대에 대비한 혁신적이면서 민주적인 해법으로 대표되는 기본소득이라는 사회정책으로 이! 끔찍한 위험한 한국 사회를 디자인하려 한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경제정책도 복지정책도 없듯이 기본소득도 그동안 추진했었던 소득주도성장정책과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의 그 한계와 문제점을 충분히 성찰하고 분석한 이후 다양하고 복합적인 차원에서 기본소득의 정책의제들이 제안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과 기본소득 재원의 필수조건인 충분성, 지속가능성, 안정성, 부담의 공평성, 국민적 공감성 등을 국민과 함께 소통하고 숙의를 통해 만들어진 정책의제들이 제안되기를 기대한다.
여기에 덧붙이면, 경제정책이냐 복지정책이냐 식의 영역 다투기와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정책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마땅하다. 쟈크 데리다가 표현하였듯이, 텅 빈 기표(이름)에 얽매이지 말고, 차라리 사람들 사이로 미끄러지라고 하지 않았는가? 고정관념과 아집의 신념을 해체하라는 뜻이다. 노자의 도덕경 제1장에서 도가도(道可道) 비상도(非常道) 명가명(名可名) 비상명(非常名)이라 하지 않았나? 도를 도라 부르면 언제나 늘 그 도가 아니고, 이름을 이름이라 부르면 언제나 늘 그 이름이 아니라 하지 않았는가? 기본소득을 비판하려 하는 진영과 이를 지지하는 진영 모두가 쟈크 데리다와 노자의 도덕경에서 제시한 문구를 언제나 항상 가슴에 간직하고 정책토론에 임했으면 한다. 제반 정치세력들은 생업의 고단함과 바이러스에 맞서 코로나 19의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려는 모든 국민과 한마음을 한뜻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 이를 극복하는데 모든 전력을 다하고, 21세기 오늘의 타는 목마름인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대동단결했으면 싶다.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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