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6월 민주항쟁은 대통령 직선제 등 민주헌법 쟁취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었다면,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다. 1987년 6월항쟁을 떠올리면,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따갑고 맵고 쓰라린 최루탄이 생각이 나지만, 이것보다는 너무나도 뜨거웠던 6월의 햇살과 서머타임(summer time) 시행으로 하루가 더 길어진 듯한 긴 낮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듯하다. 6월 민주항쟁은 1987년 6월 10일부터 6월 29일까지 대한민국에서 전국적으로 벌어진 독재 타도, 민주화 운동이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이후 본격화되기 시작한 민주화 투쟁은 87년 6월항쟁을 통해 그 정점에 도달했다. 전두환 정권은 1987년 4월 13일 대통령 직선제개헌을 거부하는 호헌조치를 발표했다. 비상계엄령 발동설까지 퍼트렸지만 4·13 호헌 조치와, 박종철 고문 치사, 그리고 이한열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 등이 도화선이 되어 6월 10일 이후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하였고, 부산, 호남, 지방・중소도시로 확대됐고, 투쟁이 더욱 격렬해졌다.
급기야, 전두환 정권은 6월 29일 노태우의 항복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로의 개헌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6월 항쟁이 6·29선언에 의해 종결된 직후인 7월 초부터 9월 중순까지 이루어진 해방 이후 최대의 노동자 파업투쟁이 이루어졌는데 이것이 바로 87년 7·8·9 투쟁이다. 이 기간 동안 약 두 달 반 동안 3,311건의 쟁의가 발생하였다. 87년 6월항쟁과 7·8·9 노동자 대투쟁의 결과로 나타난 체제를 87년 체제라 부른다.
87년 체제는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 이밖에 헌법재판소제도 도입, 언론・출판・집회・결사에 대한 허가제와 검열제금지, 경제의 민주화규정, 여성노인, 청소년, 신체장애자의 복지향상규정 보완 등 형식적 민주주의가 87 체제의 그 특징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선언적 문구에 그친 채 ‘실질적 경제의 민주화’에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치 경제적 부문 모두에 있어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부재가 두드러지다는 것이 공통된 견해이다.
87년 체제를 이어가나 실질적 민주주의 그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이자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다. 기본소득 국민운동은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악마의 맷돌이 되어 노동, 토지, 화폐를 상품으로 전락시켜 전방위적으로 불평등하게 구조화된 한국 사회와 맞대결하고 극복하기 위한 범국민적 사회운동이다. 인공지능(AI) 발달과 4차 산업으로 많은 일자리가 소멸 되어 그 자리에 불안정한 일자리가 지배될 것이라는 끔찍한 미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범국민적 기본소득의 사회운동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앞장서 온 다보스의 세계경제포럼이 제기한 노동 없는 미래와 그에 따른 탈 노동에 연계한 소득보장정책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위한 범국민적 사회운동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제도화와 4차산업 시대를 대비한 사회문제의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해법을 모든 국민과 함께 논의하고 공감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기본소득 국민운동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기본소득 국민운동은 적은 액수 1% 또는 연 50만 원부터 시작하여 모든 국민에게 신뢰와 공감 그리고 자신감의 전제에서 점진적 계획과 조금씩 나아가는 것이 기본소득 국민운동의 전략이다. 부분적(소액) 기본소득이 바로 대한민국이 나아갈 가장 유망한 방법이라는 것이 기본소득 국민운동이 지향하는 공통된 신념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무조건 제공하는 최소생계비이자 대한민국 국민이면 마땅히 받아야 할 경제적 기본권이며 인간 살림살이의 마중물이다. 복지 사각지대와 낙인효과가 없는 새로운 탈 노동에 연계한 소득보장정책의 거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모두의 몫을 모두가 누리는 분배체계의 공정성이자 공공성이다. 기본소득은 선거 때 선심 쓰는 선거공약이 아니라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이고, 포퓰리즘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이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이들을 대상으로 삼는 세련된 복지정책과 경제정책 하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기 발로 독립적으로 굳건히 설 수 있도록 하는 사회경제적 발판이자 모두에게 민주적으로 실질적 자유를 누리게 할 수 있는 튼튼한 사회정책인 것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그 중심엔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있었다면 2020년 6월 기본소득 국민운동의 그 중심엔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가 있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5월 27일, 민통련(민주통일민주연합)과 당시 야당인 통일민주당이 주축이 되어 각 사회운동 세력과 종교계, 학생운동 조직 등이 광범위하게 연합하여 결성한 정치-사회단체였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는 해방 이후 최대 규모의 반독재 연합전선을 구축함으로써 6월 항쟁을 주도적으로 이끌었으며 민주화 세력을 결집시켜 정치적 구심체의 역할을 하였다. 기본소득 국민운동의 그 중심엔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가 있다.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는 2020년 12월 6일 출범했고, 기본소득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모든 제 세력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기본소득의 재원 마련방안과 기본소득 재원의 필수조건인 충분성, 안정성, 지속가능성, 부담의 공평성, 국민적 수용성에 대해 국민과 함께 소통하고 범국민적 사회운동 차원에서 적극적이면서 선제적으로 행동 실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사회실험을 통해 기본소득을 검증하고, 기본소득 민주주의를 위한 대한민국의 고유한 모델을 만들어 내기 위해 민간차원에서 결성한 조직이다.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는 현재 경기본부를 포함한 17개 광역 본부가 설립되었다. 광역본부 출범을 발판으로, 2020년 6월 현재 약 60개 시군(지역)본부 출범이 완료됐다. 농어촌, 청년, 문화예술 본부와 더불어 향후 전국 226개 시군(지역)본부 완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1987년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의 구성원들이 독재 타도와 민주헌법을 쟁취하는데 그 중심이 되었듯이,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 구성원 모두는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와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기본소득의 작은 씨앗이 되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가 될 때까지 기본소득 국민운동본부 구성원 모두는 한마음 한뜻으로 기본소득의 실천가 또는 전사가 될 것이고 이미 되어 있는 것 같다.
끝으로, (중략) 오직 한 가닥 있어/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중략) 민주주의여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노래를 남몰래 불러본다. 여기에, 1987년 7월 8일 진주교도소에서 출소한 문익환 목사는 바로 이한열 열사의 분향소부터 찾아갔던 그 기억. 그 이튿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연세대)에 참석한 문익환 목사는 열사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던 그 기억이 밀려오듯이 들리는 듯하다. 문 목사가 그렇게 열사의 이름을 목놓아 불렀듯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사회문제와 사회적 양극화를 목놓아 불러본다.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 세계화여~, 불로소득 공화국이여~, 플랫폼 자본주의여~, 청년실업이여~, 경력단절 여성이여~, 베이비붐 세대여~ 생태공동체 파괴와 기후변화여~, 골목상권과 전통시장을 집어삼키는 대기업의 약탈적 유통업이여~, 생활고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이여~, 고독사여~, 산업재해로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여~ 이 같은 현대 한국 사회가 당면한 불평등과 사회문제를 기본소득으로 맞대결하고 이를 극복하여,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를 누리게 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말이다.
김상돈 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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