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6월5일은 세계 환경의 날이었다. 앞서 지난 5월 31일 폐막한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에서 서울선언문이 채택되었는데 △녹색회복을 통한 코로나19 극복 △지구온도 상승 1.5도 이내 억제 지향 △탈석탄을 향한 에너지 전환 가속화 △해양플라스틱 대응이 핵심 키워드였다.
2050년 탄소중립 선언과 한국의 민낯
우리나라의 2030 온실가스 절감 목표치는 2017년 대비 24.4% 감축으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뒤처지고 있었다. 이미 세계 주요국들은 2013년 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 정부 간 협의체)와 2015년 파리협정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량을 2010년 대비 2030년 45%로 정했다. 우리가 자주 들어 온 '지구온도 상승 1.5도 억제와 2050년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지구촌 공동목표도 파리협정에서 의결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작년 10월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이번 P4G 회의를 통해 온실감소 절감 목표치를 조만간 상향해서 발표하기로 약속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위기 상황에서 K-방역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보이고 있는 자랑스러운 나라인데,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서는 선진국의 추세에 몇 걸음 뒤쳐지고 있다. 이번 온실가스 목표치 상향 선언도 글로벌 기준으로 본다면 지각이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에너지 다소비 국가이고,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국이며, 석탄발전의 비중이 40% 이상인 국가로, 에너지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린뉴딜의 추진과 함께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우리는 스스로 화장을 지우고 생얼, 진짜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봐야 한다.
생 얼굴을 비추는 거울로 여러 지표가 있겠지만, 기후변화와 에너지 전환에 있어서 첫 번째로 뽑을만한 것은 재생에너지 비율이다. 재생에너지는 석탄과 석유 등의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것으로 풍력, 태양광, 바이오 에너지 등이 대표적이다. 기후변화 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의 평균 재생에너지 비율은 17.5%(2018년 기준)이며, 2030년까지 목표치를 32%에서 최근 33.7%로 상향 조정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 비율이 5.6%(2018)에 불과하고, 2030 목표는 20%이다. 유럽 평균과 비교하면 현재는 물론이고 2030년 목표치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기후변화 대응 전략
유럽 국가들 중에서 재생에너지 비율이 높은 모범국은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인데, 모두 복지국가로 유명해 '노르딕 5개국'으로 불리는 나라들이다. 아이슬란드는 화산섬으로 지열발전에 특히 유리하고, 노르웨이는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수력발전이라는 자연적 환경 이용이 가능하니 논의 대상에서 제외하자. 그렇다면 순전히 정책적 노력에 의해 재생에너지 비율을 높인 나라는 스웨덴과 핀란드, 그리고 덴마크라고 할 수 있겠다. 각각의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이 54.6%, 41.2%, 36.1%(2018년 기준)이다. 유럽 평균보다 월등히 높다.
복지국가로 유명한 이들 세 나라가 전 세계 으뜸의 기후변화 대응 국가로 꼽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들 나라는 199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강력한 법·제도와 정책을 여럿 추진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세(Carbon Tax)다.
탄소세는 화석연료의 배출량에 따라 부과하는 세금이다. 석탄에 가장 무겁게, 이어 석유와 천연가스 순으로 부과한다. 탄소세는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기 마련이다. 이어 화석연료를 많이 쓰는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이 같은 강제가 결국 산업구조 전체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바꾸게 만들었다.
위의 노르딕 3개 국가만 살펴보면, 핀란드가 세계 최초로 1990년 탄소세를 도입했고, 스웨덴이 이듬해인 1991년 같은 제도를 실시했다. 핀란드는 화석연료의 탄소 함량에 기초하여 톤당 1.12유로 부과로 시작해서 점차 늘려갔고, 2011년에는 탄소세와 에너지세를 통합해 2019년 기준 탄소세로 1톤당 62유로(8만3천 원)를 부과하고 있다. 세계에서 탄소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스웨덴인데, 핀란드보다 훨씬 많은 톤당 112유로(15만 원)에 이른다. 스웨덴의 재생에너지 비율 54.6%가 강력한 탄소세와 깊게 연관되어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덴마크의 탄소세는 23유로(3만1천 원)이다. 이들 세 나라는 탄소세라는 조세 제도를 통해 산업구조를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에너지 다소비 산업구조인 독일도 2021년부터 탄소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독일은 탄소세 부과와 함께 원자력 발전소는 2022년, 석탄화력 발전소는 2038년에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이 탄소 국경세(Carbon Border Tax) 도입을 강력하게 추진 중이다. 만일 실행된다면, 국제 무역은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수출 전선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15년 파리협정에서 의결된 '지구온도 상승 1.5도 억제와 2050년 탄소중립(Net Zero)'이라는 지구촌의 공동목표는 단순한 정치적 수사나 구호가 아니다. 산업 전반에 이르며, 경제성장에 필수적인 투자 환경도 바뀌고 있다.
ESG, 그리고 세계 최고의 지속가능 기업은?
월스트리트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블랙락(BlackRock)은 약 7조8천억 달러(8700조 원)를 운용하는 세계 1위 자산운용기업이다. CEO인 래리 핑크(Larry Fink)는 매년 1월 1일 투자기업들에게 CEO letter를 보내는데, 작년에는 ESG, 즉 E(환경), S(사회적 책임), G(거버넌스) 성과가 부진한 기업들에 대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자본 회수가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고,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여 석탄발전 비중이 25%를 넘는 기업은 투자 포토폴리오에서 매각하겠다고 공언했다. 올해 1월, 8페이지 분량의 CEO letter에도 기후변화 대응을 다시 강조하며, 특히 탄소중립을 뜻하는 'zero'라는 단어를 18번이나 사용했다. 다시 말하지만 탄소 국경세, ESG와 같은 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의 산업구조를 뒤흔들 폭풍으로 다가오고 있고, 지금 이순간은 폭풍전야와 같다.
노르딕 국가들에서 탄소세와 관련하여 산업구조 및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기업을 두 곳만 소개한다. 2020년 1월 개최된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캐나다의 조사기관인 코퍼레이트 나이츠(Corporate Knights)가 매출 10억 달러(1.1조 원) 이상의 전 세계 7,395개 기업들 중에서 ESG와 수익성이 우수한 '세계 100대 지속가능 기업(The world's 100 most sustainable corporations)'을 발표했는데, 1위 기업으로 덴마크의 오스테드(Ørsted)가 선정되었다.
오스테드는 해상풍력 세계 1위의 다국적 전력기업으로 매출이 약 12조 원에 이른다. 그런데 이 회사는 처음부터 해상풍력의 강자가 아니었다, 이 회사는 1972년 북해의 석유와 천연가스 덴마크 지분을 확보하며 창업했다. 그런데 탄소세에 의해 수익성이 악화되자 풍력에너지 사업을 시작했고, 2010년에는 이 회사의 전체 생산 에너지에서 화석연료가 85%, 재생에너지가 15%를 차지했다. 하지만, 2020년 기준으로 그 비율을 역전시켜 풍력 에너지 비중이 85%에 이른다. 현재 이 회사는 세계 1위의 풍력발전 에너지 기업이다.
3위에 랭크된 핀란드 최대의 정유기업인 네스테(Neste)도 마찬가지이다. 네스테는 폐기 식용유 폐기물 등을 재활용하여 차량용과 항공용 정제유, 그리고 폐 플라스틱을 이용한 제품을 생산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큰 폐기물 활용 재생 디젤 생산 기업이다. 온실가스의 80%를 줄일 수 있는 항공유를 개발하여 전 세계 재생 정제유 생산 능력의 약 50% 시장점유율을 차지하는 세계 1등 업체가 되었다. 올해 1월에는 전 세계의 3,000개 공급 기지를 가진 미국 항공유 전문 공급 기업 Avefuel과 계약 체결에 성공했다.
탄소세는 재생에너지·일자리·재교육에 사용돼야
위와 같은 성공 스토리는 탄소세와 같은 조세 제도가 뒷받침되는 가운데 국가 차원의 투자가 성공적으로 이뤄지면서 산업구조의 혁신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진 사례다. 다시 말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정부는 탄소세를 거둬 온실가스 배출 기업들이 퇴출되도록 유도했고, 산업계가 스스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도록 했다. 그리고 거둔 세수는 과감한 연구개발과 설비투자, 그리고 재생에너지 산업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재교육을 위해 사용되었다. 이들 노르딕 국가들이 거둔 성과는 기후변화 대응에 있어 '글로벌 리더'라는 자신감을 상징한다.
핀란드에서 지난 2019년 34세의 나이로 정권을 잡은 산나 마린 총리가 공개한 정부정책을 보면, '기후변화는 노동의 세계와 직업구조에 영향을 미친다'라고 규정하고, '기후변화, 디지털화, 도시화와 같은 세계적인 메가트렌드가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고, '역동적이고 번영하는 핀란드 성공의 열쇠는 이런 변화가 제공하는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표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1990년 시작된 탄소세 등의 각종 법·제도로 에너지 전환에 성공한 산업구조를 기반으로 기후변화를 미래의 위협이 아닌 국가 번영의 원동력이자 성공의 열쇠로 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 세계 7위, 석탄발전 40% 이상, 재생에너지 5.8%로 에너지 전환이 시급한 현실에 직면해 있다. 많이 늦었지만, 최근 탄소세 도입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노르딕 국가들의 경우처럼 기후변화에 대한 능동적 대응에 쓰여야 할 탄소세수가 엉뚱한 곳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다. 한국의 정치권과 학계 일부에서 탄소세와 디지털세 등을 거둬서 국민 모두에게 월 몇 만 원씩의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기본소득은 핀란드 우파정부가 2017년부터 2년간 실험을 했지만 실패로 규정하고 중단한 정책이다. 또한 독일의 메르켈 수상에 이어 차기 총리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는 독일 사민당 소속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 연방 재정부 장관은 기본소득을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규정하고 복지국가의 성취를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탄소세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발상은 포퓰리즘
무엇보다 탄소세를 거둬서 모두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는 발상을 제안한다는 것 자체부터 놀랍다. 앞서 보았듯이 탄소세를 최초로 실시한 핀란드, 가장 높은 세율로 탄소세를 거두고 있는 스웨덴, 그리고 풍력에너지 1위 국가인 덴마크, 그 어느 나라도 탄소세를 거두어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지 않는다. 탄소세는 30년 이전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위해 산업구조의 혁신과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그리고 석탄 등 화석원료 산업에서 소멸된 일자리의 창출에 투자되었다.
국내 정치인 또는 학자들이 탄소세를 기본소득으로 나눠쓰자는 발상은 포퓰리즘에 가까운 정치적 목적 이외에 그 어떤 것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각종 변명이나 논리를 갖다 붙인다고 해도 탄소세를 기본소득에 연결하는 주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적극적 대응이라는 글로벌 트렌드,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정책과 거리가 매우 멀다. 탄소세수를 기본소득으로 나눠 쓰자는 정치인과 학자들은 거울 앞에서 화장을 지우고 자신의 진짜 얼굴, 생얼을 바라보며 정치를 하는 이유, 정책에 대한 기본 철학이 결여되어 있지 않는지를 스스로 자문해봐야 할 것이다.
※ 강충경은 1960년 부산 출생으로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생명공학 박사를 취득했다. 호서대 교수, 바이오융합연구소 소장, 충청남도 정책자문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핀란드기업 Labmaster 기술고문 및 등기이사, ㈜펩스젠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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