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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는 기업의 책임 경영 아닌 마케팅일 뿐

[인권으로 읽는 세상] 세상 망쳐온 기업에 제대로 책임 묻기

1964년 창사 후 57년 만에 남양유업의 주인이 바뀌었다. 자사 유산균 음료에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있다는 허위 광고 파문 이후 홍원식 전 회장의 사퇴에도 여론이 가라앉지 않자, 급하게 오너 일가가 보유한 주식을 사모펀드에 매각한 것이다. 소위 불가리스 사태가 주요한 계기였지만 이전부터 남양유업은 건설사 리베이트 사건, 대리점 갑질 사건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해 책임 전가나 면피성 사과문 발표로 일관해온 바 있었다. 굳건했던 오너 일가의 지배체계가 무너진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소비자들의 '가치 중심 소비' 경향과 더불어 'ESG 경영'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보도를 연이어 내놓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별 기업-자본은 더 큰 이윤을 추구하며 움직이며, 기업이 이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에 대한 수탈, 노동안전사고나 갑질과 같이 누군가의 생명과 존엄을 해치는 일 또한 반복되어왔다. 그러나 이토록 당연하게만 보이는 명제에 의문을 가진 사람들, 기업의 이윤보다 사회적 책임이, 경영권보다 인간의 존엄이 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소비자 운동의 일환인 친환경 소비, 착한 소비에 더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ESG 경영이 주목받는 배경이다.

ESG, '책임지겠다는 선언'과 '책임지는 실천'의 간극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Environment), 사회(Social), 기업 내 지배구조(Governance)의 약어이다. 기업의 재무적 성과만을 판단하던 전통적 방식과 달리 친환경, 사회적 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철학을 담고 있다. ESG라는 단어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회적 가치(Social Value),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operate Social Responsibility), 공유가치 창출(Creating Shared Value)처럼 '기업의 윤리적 경영'을 강조하는 말들은 넘쳐났지만 최근 회자되는 ESG의 가장 큰 특징은 행위 주체를 기업이 아니라 투자자에 둔다는 것이다. 투자운용사나 연기금은 ESG 지표에 따라 기업들을 평가해 스스로 투자를 결정하거나 고객들에게 투자처를 추천한다. 국제 금융투자업계에서 ESG가 주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으며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ESG 열풍'이 불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사내에 ESG 관련 부서를 신설하고, 해당 사실을 홍보하며 투자를 유치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 기업들의 ESG 평가 결과를 보면 평가 주체와 방식의 적절성에 의문이 생긴다. 대표적으로 포스코 그룹 계열사는 현재 삼척에 새로운 석탄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중이고, 시위대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미얀마 군부에 무기를 공급했으며, 지난 3년간 20여명이 노동안전사고로 사망했음에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ESG 평가에서 A+ 등급을 받았다. 하나금융은 'ESG 부회장'이라는 직함까지 신설하고 자사 3대 전략을 ESG·플랫폼·글로벌로 설정하는 등 ESG 경영에 힘을 쏟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지만, 정작 ESG 부회장 자리에는 채용비리 혐의와 부실 파생상품 판매 혐의를 받는 인물을 기용한 바 있다. 오랫동안 이어져온 오너 일가 중심의 폐쇄적 경영과 갑질, 허위광고 등 사회적 논란 끝에 매각된 남양유업의 경우에도 회장 사퇴로부터 한 달 전에 ESG 추진위원회를 출범한 상태였다. 위 기업들 모두 ESG와 관련된 위원회를 사내에 설치했거나 사회공헌 활동을 진행했다는 이유로 ESG 평가 등급이 상향되었다. ESG 등급 평가는 기업이 스스로 제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진행된다. 기업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자료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언론 보도를 참고하며 평가한다고는 하지만, 개별 기업에서 일어나는 노동안전사고나 내부 지배구조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ESG 열풍'에 쏟아지는 관심 비해서 평가 결과의 신뢰도는 초라하다.

ESG 평가 결과가 곧 해당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있음을 증명해주지 않는다. 이는 언뜻 모순적이지만 한편 당연하기도 하다. 기업에서 먼저 기후위기, 사회 문제, 기업 내 지배구조 개선에 관심과 의지를 가진 게 아니라, 국내외 투자기관에서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할 때 ESG를 주요한 지표로 삼기 시작하자 기업들이 하나둘 ESG 경영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에서 국내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ESG 경영에 관심이 있다고 답했는데, ESG 경영이 필요한 이유로는 브랜드 이미지 제고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일단 ESG를 선언해두기만 하면서 정작 긴요한 실천은 외면하니, 기업이 제대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게 될 리가 만무하다. 현재 기업들의 행보는 ESG 열풍이 아니라 겉으로만 ESG를 내세우며 마케팅 수단으로 삼는 'ESG 워싱'에 가깝다.

기업에게 어떤 책임을 어떻게 물릴 것인가

그렇다면 개별 기업들이 'ESG 워싱'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ESG 경영을 실천하면 세상은 더 나아질 수 있을까? ESG 지표를 개발하고 기업 평가를 진행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자신들의 목표를 '자본시장의 발전과 활성화'라고 말한다. 국제 투자금융업계에서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지속가능한 경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며 다시 ESG 경영을 강조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보장되어야 개별 기업은 투자를 받을 수 있으며 자본 시장도 발전할 수 있다는, 경영학적 관점이다. 전 세계의 투자운용사와 기업이 ESG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기업은 지속가능한 경영과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사회적 책임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뿐, 자신들의 구체적 행위에 따른 결과이자 책무로서 사회적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자본이 더 큰 이윤을 위해 스스로를 움직이도록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 '착한 기업과 윤리적 경영 원칙'은 성립 불가능한 명제이다. 그렇기에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중요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산 수단의 소유자가 생산물에 대한 권한을 지닌다. 그렇기에 개별 기업은 소유주의 사유재산으로, 기업의 경영 활동은 소유주의 권한으로만 이야기된다. 하지만 현실에서 기업의 경영 활동과 그로 인한 결과는 단 한 번도 온전히 소유주에게만 속했던 적이 없다. 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 시간 같은 생활 여건부터 일터에서의 안전과 생명권에 이르기까지, 이 사회를 살아가는 대다수 구성원은 기업에 종속된 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자연을 수탈하여 기후위기를 심화시켰다는 환경적 측면에서도, 채용 과정에서 성차별과 학력차별을 자행하면서 전 사회의 차별적 구조를 강화했다는 사회적 측면에서도, 기업의 경영 활동은 사회 전체에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기업이 져야하는 사회적 책임은 추상적 차원의 사회 환원이나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그치지 않는다. 기업의 경영과 이윤 추구 활동이 망쳐놓은 세계를 직시하며, 이 사회를 더욱 나아지게 만들 명확한 책무를 기업에게 물려야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책임질 리 만무하니, 고민은 책임을 물릴 주체와 방식으로 나아간다.

ESG 경영을 넘어

당연한 것으로만 여겨졌던 기업의 이윤 추구에 대한 문제의식이 사회에 싹트고 퍼져온 것은 사회 구성원들이 존엄과 평등에 대한 감각을 공유해온 과정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식이 윤리적 소비나 ESG 경영 요구만으로 수렴될 수는 없다. 기후위기 대응, 노동안전 보장과 사회문제 해결, 기업 내 민주주의 확립은 기업이 돈 더 벌기 위한 조건이거나 투자 유치를 위한 기업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기업이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이자 구체적 책무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업에게 책임을 물릴 주체는, 이윤만을 추구하는 기업의 경영 방식에 문제의식을 가진 동시에 존엄과 평등에 대한 감각을 공유하는 사회 구성원일 것이다.

기업의 ESG 경영이나 사회 공헌을 선택해 세상을 바꿔놓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사회 구성원이 변혁의 주체로 서서 기업 경영 활동의 기준을 세우고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이제는 새로운 길을 찾자. 기업의 경영 활동이 사회 전체에 미쳐온 영향을 떠올려보면 더욱 명확해지듯이, 기업은 이미-언제나 사회적 구성체였다. 기업의 경영 활동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의 경영 활동이 한 편에서 세상을 망쳐왔다는 말은 곧 기후위기나 노동안전사고 피해자의 경우처럼 사회 구성원의 존엄을 해쳐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목표를 분명히 하자. 우리가 지속가능하게 만들어야 할 것은 기업의 영업 활동인 '경영'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존엄이다. 개별 기업에 ESG 경영을 촉구하는 일을 넘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사회화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하자.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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