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이라는 말을 해석하면, 뿌리요, 근본이요, 토대다. 기본소득은 한낱 소득의 밑거름인 셈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주는 최소생계비이자 경제적 기본권이고, 인간 살림살이의 마중물일 뿐이다. 기본소득은 자선이 아니라 권리이고 베풂이 아니라 정의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인가? 이것이 아니라면, 기본소득은 복지 사각지대와 낙인찍기가 없는 탈 노동 소득보장정책이자 4차산업 시대를 대비한 민주적이고 혁신적인 사회문제의 해법이다. 그리고 모두의 몫을 모두가 누리는 분배체계의 공정성이자 공공성이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이고 선심성인가? 대체 포퓰리즘과 선심성의 뜻이 무엇이기에 ‘포퓰리즘’, ‘포퓰리즘’ 하는 것인가?
캠브리지 사전에서 포퓰리즘이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사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포퓰리즘은 라틴어로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인민',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영국의 롱맨 사전은 '포퓰리스트'(Populist)를 부자나 지식인보다는 보통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가치 중립적 의미로 정의한다. 여기에 덧붙이면, 선심성(善心性)이란 남의 마음을 사려는 의도로 남에게 베푸는 후한 마음의 성질을 의미한다. 결국, 포퓰리즘이란 보통소수의 엘리트 세력 또는 여타 문화적 소수자로 이분화하여 다수의 시민에게 배타적인 결집을 요청하는 정치적 움직임이다. 동시에 기존의 사회체제 또는 기득권의 부정과 부패에 대항하여 사람 중심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적 움직임으로 일컫는다.
기본소득은 보통사람, 민중, 대중, 인민을 대변하는 정책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사회 정책인데, 기본소득을 어찌 선심성 또는 포퓰리즘이라고 하는가?. 백번 양보해서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이고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포퓰리즘이라고 하자! 포퓰리즘 정책은 필연적으로 모두 실패했다는 말인가? 브라질 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의 정부,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포퓰리즘 정책이다. 미국의 트럼프(Donald Trump) 정부, 브라질의 보우소나루(Jair Bolsonaro)정부 그리고 멕시코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정부 등도 소위 포퓰리스트로 분류된다. 사실 모든 정책은 선심성과 포퓰리즘이 전적으로 또는 부분적으로 배태(embedding: 자리매김)되어 있다.
브라질 전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의 보우사 파말리아 정책이 대표적으로 성공한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한다. 그는 빈민 출신에 저학력자로서 대통령이 되었고 그의 정책들은 재임기간(2003-2010) 동안 포퓰리즘이라는 공격을 계속 받았지만, 퇴임 시 지지율이 80%에 달했다. 룰라의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한 가구당 월 소득이 최저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면 정부가 현금을 주는 보우사 파밀리아(Bolsa Familia)정책이다. 당시 브라질은 절대 빈곤층이 5천만 명이고 5분마다 어린이 한 명이 기아로 죽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룰라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을 현실화하기 위해 인플레이션 극복, 공무원 연금제도 개편, 외화보유액 확대, 계층 간 합의 도출, 조건부 빈곤층 지원 등의 개혁 정책을 추진했다. 그의 임기 동안 브라질의 빈곤율은 34%에서 22%로 떨어졌고 경제성장률은 집권 전 3.4%에서 7.5%까지 올랐다. 룰라 재임 8년간 브라질 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연평균 5% 전후를 기록했고, 전체 GDP는 3배 이상 넘게 커졌으며, 외환보유액은 10배 가깝게 늘었다. 물가 상승률은 12.5%에서 5.6%로 낮아졌다. 브라질은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하면서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했었다. 룰라 정권은 성공한 정권이었다.
기본소득이 포퓰리즘이라고 주장하는 진영에게 묻는다. 이명박 정부의 녹색 뉴딜(4대강 사업),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일자리 정책)은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한 정책이 아니고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정책이었는가? 그래서 성공한 정책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그것이 아니면, 녹색 뉴딜, 창조경제, 소득 주도 성장 같은 국정 기조는 텅 빈 기표였다고 말하고 싶은 것인가? 이명박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중심으로 추진한 ‘녹색 뉴딜’도,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도,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정책도, 야심 차게 출발은 창대했는지는 모르지만, 끝은 미미하거나 정책실패가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2008년 8월 국가발전패러다임으로 ‘녹색성장’을 발표했고, 이듬해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녹색 뉴딜 사업’을 추진했다. 2012년까지 50조 원을 투입해 95만6000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목표를 내놓았다. 핵심 사업은 ‘4대강 살리기’였다. 녹색 뉴딜 예산 50조원 중 4대강 정비를 포함한 토목사업에 32조 원이 배정됐다. 토목공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저임금 비정규직 일자리만 많아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명박 정권 말기인 2012년 11월 “2009~2010년 SOC 분야에 과도한 투자가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의 경제성을 분석한 결과, 50년간 총비용은 31조 원인 반면 편익은 6조6000억 원으로 나타났다. 포퓰리즘을 그토록 반대하는 자들은 4대강 사업은 반 포퓰리즘 정책이었는가를 묻고 싶다. 4대강 사업은 그렇다고 하자! 그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를 보자.
박근혜 정부의 국정 기조는 ‘창조경제’로서 정보통신기술과 인프라를 산업 전반에 융합해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만들어낸다는 전략이다. ‘창조경제’라는 거창한 국정 기조에 비해 과거 정부와 차별화되는 내용은 전혀 없었다. 국민의 정부의 ‘지식기반경제’, 참여정부의 ‘혁신주도 경제’, 이명박 정부의 ‘추종자에서 선도자’로의 전환이자 기표만 패러다임의 전환일 뿐, 계획은 기의 없는 텅 빈 기표였다. ‘창업’을 독려하기 위한 온·오프라인 창조경제 타운과 센터의 구축 이외에는 일반적인 중소기업 정책, 과학기술 진흥 정책을 나열한 수준에 불과하였다. 창조경제 타운과 창조경제센터도 창조경제의 고육지책으로 만들어진 위장술이었다. 대기업이 출자한 창조경제펀드는 투자 3,487억 원, 융자 3,480억 원, 보증 260억원 등 7,227억 원에 이른다. 창업보육센터와 상호 비교하면, 2015년 기준 예산은 295억 원으로 1.3배 많은데 매출액은 창업보육센터의 9.5%, 고용인원은 7.8%에 불과했다. 이에 대해 안철수씨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국가 공인 동물원’(창업기업을 관치경제, 대기업 지배에 가둔다는 의미)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 사업을 주도한 이승철 창조경제추진단장은 스스로 창조경제혁신센터를 ‘새마을운동’에 견주어서 비유했다. 박정희의 ‘새마을운동’ 모델을 박근혜의 창조경제에 적용해 복원한 것이 창조경제혁신센터다. 전경련은 “창조경제혁신센터를 통해 ‘창조경제’라는 유령에 옷을 입혔다” 고 고해성사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는 것을 비롯하여 4개 부처를 포함한 범정부적인 일자리 정책 집중관리 등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노동시간과 비정규직, 노동시장에 성차별과 격차를 줄이며, 일자리 질을 높이는 데 있어 정부가 모범적으로 앞장서고, 기업과 노동자가 사회적 대화를 통해 양보와 분담으로 현장에서 뒷받침해 나가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기조이다. 2021년 1월 20일 통계청이 밝힌 '공공부문 일자리통계'에 따르면 2019년 기준 공공부문 일자리는 260만 2000개로 집계됐다. 1년 전과 비교해 15만1000개(6.1%) 늘었다. 그러나, 문제는 늘어난 공공일자리 대부분이 노인 일자리 위주인 데다 아르바이트 성격의 단기 일자리에 불과해 결과적으로 비정규직만 양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속기간은 3년 미만이 30.4%로 가장 많았다. 일자리 정책에 대해 미국의 노동운동 지도자인 앤디 스턴은 이 같은 주장을 한다. 그는 “온 나라의 일자리에 대해 한 줌도 안되는 정부 기관 공무원들이 나서서 범주를 정하고 구체적인 일자리 하나하나의 가치까지 결정하게 될 것이며, 개개인의 차이점과 선택의 자유는 희생당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일자리 보장프로그램은 대규모의 관료제를 필요하게 된다” 점을 지적하면서, “그냥 사람들에게 현금을 주는 편이 훨씬 더 쉽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앤디 스턴의 주장이 차라리 낫지 않은가 싶다.
끝으로, 선거 없는 정책 없고 세금 없는 정책 없다. 모든 정책은 재원 마련방안이 가장 중요한 쟁점 사항이고 세원개발은 불가피한 것이다. 안심 소득이든, 신 복지체계든, 기본소득(GDP의 1.3%)이든 재원마련 방안이 관건이다. 기본소득은 사회적 양극화에 맞선 사회 정책의 민주적 해법이자 4차산업을 대비한 미래지향적이고 혁신적인 해법이기에, 기본소득은 선심성이 아니라 ‘모두에게 실질적 자유’이고 포퓰리즘이 아니라 ‘진정한 민주주의’다. 덧붙이면, 기본소득제도와 연계한 기본일자리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기본일자리는 모든 성인에게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는 일자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사회-정치-경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며, 개인에게 기본일자리를 그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체제를 의미한다. 기본은 뿌리요! 근본이요! 토대다! 라고 거듭 강조하면서 마무리하려 한다.
김상돈 고려대 겸임교수는 기본소득 국민운동 경기본부 상임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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