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동아시아의 부상과 중국의 굴기는 새로운 문명 전환으로 이어질까. 그렇다면 새로운 세계문명은 어떤 모습일까.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근대 세계사 500년을 살피며 이 같은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한 책이 나왔다. 김상준 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가 쓴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아카넷)다. 김 교수는 이 책에서 16세기 이후 외부 정복에 의한 유럽의 팽창 근대가 끝나고 앞으로는 내부 확장과 공존에 의한 동아시아형 내장(內張) 문명이 세계문명의 대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김 교수는 지난 500년 동아시아와 서구의 만남이 형(形)-류(流)-세(勢)-형(形)'(형 다시)의 순환적 상승구조를 그리며 이뤄졌다면서 20세기 전반까지 서구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으로 동아시아를 압도했다면 20세기 후반부터는 동아시아의 내장 근대가 힘을 얻어가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형의 시기, 동아시아는 세계경제에서 서구에 준하는 혹은 그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수평적 협력을 통한 생활력과 생산력의 확장으로 특징지어지는 동아시아 특유의 내장 근대를 이룩하기도 했다. 생산력과 인구의 증가는 물론 신분제 폐지 등 근대적 현상이 이미 이 시기 동아시아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만 근대가 시작된 것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도 나름의 특징을 지닌 근대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류와 세는 서양이 15세기 시작된 대항해에 이어 17세기 유럽의 내전이라 할 수 있는 종교전쟁을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내고 아메리카, 아프리카, 동아시아 등으로의 팽창을 본격화한 시기다. 이 시기 우월한 힘을 통한 지배의 확장으로 특징지어지는 서양의 팽창 근대는 동양의 내장 근대를 압도하고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김 교수는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마지막 5부에서 냉전이 끝난 뒤 내장 근대가 힘을 얻으면서 동아시아가 새로운 세계문명을 주도할 수 있는 형'(형 다시)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21세기에도 팽창과 내장은 여전히 길항 중이나 결국 내장 문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거대한 추세가 읽힌다는 것이다.
한겨레 전 기자이자 도서평론가인 한승동 씨가 지난 6일 서울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김상준 교수를 만나 그의 책 <붕새의 날개, 문명의 진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프레시안>은 이를 두 편에 나눠 싣는다.
한승동 : 1000쪽 가까운 두꺼운 책을 열심히 본 건 오랜만이다. 재미있었다. 한국인의 국민교과서로 삼아 웬만한 사람은 다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사람에 따라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점까지도 포함해 여러 가지 폭넓은 사고를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했다.
저는 책의 핵심을 이렇게 봤다. 우리가 이제까지 알고 있던 인류사에 대한 인식이 잘못돼 있다는 거다.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근대 이후 세계사는 유럽과 미국에 일본을 더한 서구가 주도적으로 이끌어왔고 그게 곧 발전, 문명화, 진보라고 여겨져 왔다. 앞으로의 역사도 그런 방향으로 갈 거라고 인식돼왔다. 동아시아를 비롯한 비서구는 그 뒤를 따라가거나, 서구가 간 길을 그대로 밟아 추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게 아니라고 한다. 이런 시도는 종종 있어 왔지만 이를 서구의 팽창(膨脹) 근대와 동아시아의 내장(內張) 근대로 개념화해 사고를 끝까지 밀어붙인 점이 놀라웠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제목과 책의 서두에 나오는 '붕새'에 대해 묻고 싶다. 장자의 붕새를 동아시아의 몬순기후와 연결해 설명했다. 몸길이가 몇 천리나 되고 한 번 날면 9만리 장공을 6개월이나 날아간다는 붕새가 북명(北溟, 시베리아)에서 남명(南冥, 동남아시아 적도 부근 더운 바다) 사이를 주기적으로 오가며 계절풍을 만들어내고 비를 뿌려 이 지역을 풍부한 강수량이라는 하나의 기후적 현상을 지닌 지역으로 묶어준다고 썼다. 이 같은 기후적 토대 위에서 유교적 자립형 소농체제를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의 내장 근대가 가능했다고 했다.
일종의 비유인 셈인데, 붕새를 이렇게 해석하는 건 처음 봤는데 참신하고 그럴 법했다. 읽으면서 말이 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고민해서 안출한 것인가? 아니면 힌트를 얻은 곳이 따로 있었나?
김상준 : 혼자 끙끙대다 불쑥 나왔다. 꽤 오래전 갑자기 어떤 이미지와 메시지가 눈앞에 쏟아졌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처음 이 책 서두의 종합발제를 쓴 게 2013년이다. 동아시아의 시각에서 볼 때 근대세계의 글로벌한 변화 형상이 동영상 돌아가듯 선명하게 보이는 경험을 그때 했다.
그게 형(形)-류(流)-세(勢)-형(形)'의 변화가 꿈틀대며 움직이는 거대한 형상이었다. 거대한 변화의 단계를 거쳐 형에서 더 높은 형′(형 다시)로 상승한다. 이 순환적 상승구조를 보여주는 시각의 주체가 뭘까 생각했다. 무슨 눈, 누구의 눈이 나에게 이러한 스펙터클을 보여주는 것일까.
그때 떠오른 게 붕새다. 2000년 이상 된 장자의 붕새 이야기에 대한 수많았던 해석을 다 읽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사이 물과 바람의 순환운동, 아시아의 몬순 기후를 붕새와 연결 짓는 이야기는 지금까지 못 봤다. 당시 자연과학 책을 많이 읽는데 그 영향도 있었던 것 같다.
국민교과서로 만들자고 하시니 힘이 좀 난다. 과거 박근혜 정부가 강압적으로 만들려 했던 '국정교과서'에는 절대 반대지만, 일반시민들이 밑으로부터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국민교과서' 아이디어는 절대 찬성이다. 그런 제대로 된 국민교과서가 정말 필요하다.
동아시아의 내장(內張) 근대와 서구의 팽창 근대
한승동 : 스스로 생각해내셨다는 말이다. 이해하기도 쉽고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본격적으로 책의 주요 내용에 대해 묻겠다. 주요 개념 중 하나가 '팽창'과 '내장(內張)'이다. 서구의 근대는 팽창적인 반면, 동아시아의 근대는 내장적이라고 했다. 팽창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서구의 서세동점(西勢東漸)을 팽창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내장은 바로 이해되지 않는다. 내장의 의미를 팽창과 대비해 설명해 달라.
김상준 : 그동안의 근대 역사 서술은 '근대(modern), 근대성(modernity)은 오직 서구에서 출현해 빛처럼 서구 밖의 어둠 속으로 뻗어 나갔다'는 식이었다. 이건 도무지 난센스(nonsense)라는 이야기를 2011년 <맹자의 땀, 성왕의 피>(김상준 지음, 아카넷)에서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잘 안 믿는 것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근대가 오직 유럽에서만 시작됐다고 믿으니까. 그렇게 배워왔으니까. 그러니까 어릴 때 듣고 배운 게 무섭다.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내가 아는 실제의 세계근대사는 '서구와 동아시아에서 시작된 각기 다른 두 근대가 만나서 상호작용하고 길항'했던 것이니, 이 '두 개의 근대'의 특징을 잘 풀어 설명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유럽이 대항해 이후 밟은 과정은 분명히 팽창이다. 바다 넘어 아메리카로, 아프리카로 가서 (자원, 땅과 노동력을) 독차지했다. 그걸 아시아로도 확장했다. 불평등한 낙차의 창출이고, 식민지의 창출이었다.
한승동 : 다른 말로는 침략이고 수탈이다.
김상준 : 물론이다. 군사적 침략이고, 경제적 수탈이고, 정치적 지배다.
동아시아 근대는 성격이 다르다. 동아시아는 대항해 시기 유럽에 준하는 혹은 그보다 높은 인구 증가율과 생산성을 보인다는 면에서 근대였지만 외부로 나가서 확장하는 방식의 근대는 아니었다. 내부에서의 생활적인 결합도, 생산력 결합도, 즉 내부 밀도를 높여가며 생산성 증가를 이뤘다. 이러한 시스템이 동아시아에서 출현한 또 하나의 근대체제였다. 이걸 '펼칠 장(張)' 자를 써 안으로 펼친다고 해 내장이라고 썼다. 외부로 나가는 팽창에 대비되는 말이다.
여기까지는 쉬웠는데 영어로 표현할 말을 못 찾았다. 팽창은 익스팬드(expand)라고 하는데 내장에 해당하는 영어가 없다. 그래서 안(in)으로 확장(pand)한다는 뜻에서 인팬드(inpand)라는 말을 만들었다. 옥스퍼드 영어사전도 찾아봤는데, 이런 말이 영어에 없다는 것이 재미있었다.
내장에서 '장(張)' 자에 대해서는 노자 도덕경 77장에 훌륭한 풀이가 있다. '하늘의 도는 활을 당기는 것과 같다(천지도 기유장궁여, 天之道 其猶張弓與)'고 할 때 '당긴다'는 뜻으로 장(張)을 쓴다. 이를 '높은 것은 누르고, 낮은 것은 올리며,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보충한다'고 풀이한다. 장(張)은 활을 당기는 동적인 현상, 에너지가 가득 찬 현상을 뜻하지만 수평적 균형을 맞춘다는 뜻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제 생각에도 장(張)은 수평적 균형을 맞추는 성격을 갖는다. 노자의 '장(張)' 자 풀이는 절묘하다. 동아시아 내장 문명은 내부의 수평적 균형을 맞추며 내적 밀도를 높여 에너지를 증강했다. 교역도 원거리 교역보다는 내부 장시(場市)가 거미줄망처럼 연결되며 이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뤄졌다. 즉 정복이나 착취가 아닌 내적 밀도를 높이는 방식이다.
반면, 팽창은 폭력적으로 낙차를 만들어내 에너지를 창출한다. 서구는 아메리카, 아프리카에 들어가 식민지를 만들면서 자원과 땅, 인간을 공짜로 차지하고 어마어마한 부를 접수했다. 낙차를 만든 거다. 유럽 내부의 인클로저(enclosure) 현상을 봐도 그렇다. 멀쩡하게 농사짓고 있던 사람들을 폭력으로 몰아내고, 뿌리 뽑힌 사람들 위에 절대적인 지배권을 구축한다. 식민지화란 더욱 폭력적인 인클로저 현상, '글로벌 인클로저'였을 뿐이다.
한승동 : 책의 또 다른 주요 개념은 '근대(近代)'다. 성균관대 대학원에서도 강의한 일본 교토학파 역사학자 미야지마 히로시는 10-11세기 무렵의 송(宋)나라가 군현제, 중앙집권, 혁명적 생산성을 이룩했다며 송을 근대로 봤다. 송의 과거제 시행도 근대적 징후로 봤다. 식자계층의 형성, 인쇄산업의 성장, 합당한 지식체계 등이 갖춰져야 가능한 일이라는 거였다. 그런 점에서 근대는 서구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동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됐다는 얘기였다.
김 교수도 동아시아의 지난 500년을 동아시아형 근대로 보고,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내장 근대와 팽창 근대라는 말을 썼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근대'는 르네상스, 종교개혁, 개인의 탄생, 계몽주의, 탈주술 등과 더불어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김 교수가 생각하는 근대란 무엇인지 정리해 달라.
김상준 : '근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에는 여전히 일본의 메이지유신은 대단한 신화, 영웅담이고 일본이 성공적으로 근대화를 이룩해 조선을 식민지화한 게 축복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근대세계사의 전체 흐름에서 보면 이런 생각은 우물 밑에서 하늘을 보면서 이것이 천하(天下)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다.
근대란 그런 방식의 침략적이고 팽창적인 근대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근대에는 여러 표징이 있다. 총생산, 총인구가 증가하고 봉건적 신분이 사라져간다. 세습적으로 권위와 권력, 작위를 갖는 일이 사라지기 시작한 건 중국에서는 당송(唐宋) 무렵이다. 이후 원명(元明)대를 지나면서 분명히 사라졌다. 유럽보다 훨씬 앞선 현상이다. 그러면서 총생산과 인구도 크게 증가했다.
한반도도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 한반도에서 신분제는 고려 말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선명한 현상이 된다. 반면 일본은 특이하게 전국시대(戰國時代)가 굉장히 늦게까지(16세기 말) 지속됐고, 에도 막부에 들어와서도 신분제가 존재했다. 하지만 근대의 한 표징으로 유교적 관료제가 들어온 건 사실이다.
이처럼 이미 송대에 시작되어 16세기부터 동아시아 전역에서 진행되었던 신분제 동요, 생산과 인구 증가라는 거대한 근대적 사회변화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근대는 그저 서양에서 들어왔을 뿐이라니 얼마나 한심한가. 중·고등학교에서 그렇게 가르쳐왔다. 그러면서 동아시아 근대는 중국의 아편전쟁, 일본의 메이지 유신, 조선의 강화도 조약부터 시작한다고 가르친다. 그저 서양만 쳐다본다. 서양이 들어와 문을 두드려줘야 비로소 근대가 시작된다고 했다. 자기 역사에 대해서 말하면서 자기는 없고, 남만 있다. 나는 무엇이었는가가 없다. 우리 역사 교육이 이래서 될까. 그래도 지금은 우리 역사 교육에도 상당한 변화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중국의 송나라를 최초의 초기 근대로 보는 시각은 국제적으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암시되어 왔다. 그러나 기존의 서구 중심 근대성 이론의 틀 자체를 비판하면서 대안적인 근대성 이론을 제시하고, 여기에 송대 기원설을 장착했던 건 2007년 <한국사회학>에 실린 제 논문 '중층근대성론'이 최초였다. 그 논문은 근대성을 지구 전체 차원에서 봐야 하고, 그런 시야에서 볼 때 동아시아 초기근대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제시한 첫 번째 이론적 작업이다. 그 이전의 근대 송대기원설은 서구중심의 근대성 이론 프레임을 수용하고 있었다.
아무튼 이런 형태로 일본에서 근대를 논하면서 송에 주목한 건 미야지마 교수 훨씬 이전에 1930년대 나이토 코난 등 교토학파 일본학자들이 시작한 일이다. 그러나 교토학파의 주장은 중국의 근대는 오래됐으나 오래된 만큼 정체했다는 이야기였을 뿐이다. '정체론', 그것이 제국대학 교토학파의 포인트였다. 결국 일본의 침략전쟁,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논리였을 뿐이다. 또 하나의 거대한 왜곡이다. 그러나 비록 발상 자체는 단편적이어도 동양에서 근대의 시작을 보았던 점은 정곡을 찔렀던 바 있다. 그런 건 인정해줘야 한다.
서구 팽창의 원동력은 기독교의 종말론적 세계관
한승동 : 또 인상적인 게 종교전쟁과 대항해시대가 얽혀 유럽의 팽창이 시작됐다며 종교를 굉장히 중시했다.
1517년 마르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 시작된 종교개혁이 한 세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종교전쟁, 즉 30년 전쟁(1618-48년)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유럽 내부에서는 '종말의 시기에 사탄을 다 죽여야 한다'는 종말론적 상상이 퍼졌으며, 신구교도 간에 피비린내 나는 학살극이 이어졌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30년 전쟁이 끝나고 국민국가체제가 성립된 뒤 이 같은 유럽 내부의 적대가 유럽 외부로 전이됐다고 해석했다.
서구가 끊임없이 외부를 침략하고 영화 <미션>에서처럼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말살하고 '심판의 날을 위해 비유럽 미개인들은 죽여도 괜찮다, 신의 뜻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게 기독교적 종말론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인 셈이다.
김상준 : 유럽 대항해 500년을 유럽 종교 내전에서 시작된 유럽 내전의 3단계 확장 과정이라 했다. 그 시발점에 기독교 종교개혁과 신구교 종교전쟁이 있다. 마르틴 루터부터 1648년 베스트팔렌조약까지 100년 넘게 했으니 지독한 전쟁, 유럽내전이었다.
종교적 내전은 정치적 내전보다도 무섭다. 원천적으로 타협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기와 다른 믿음을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이 세상 전쟁이기도 하고 저 세상 전쟁이기도 하다.
책에서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여러 번 언급했다. <리바이어던>의 비극적 인간관과 공포의식은 어디에서 오는가. 유럽의 종교 내전 상황에서 왔다. 홉스 자신이 종말론에 깊이 몰두한 사람, 종말이 와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리바이어던> 2권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당시 유럽인들은 '지금은 종말이다. 사탄을 깨끗이 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적그리스도를 절멸해야 진정한 신적 정의의 시간, 종말이 온다'고 믿었다. 그런 종말론적 대결의식과 적대감이 이후 유럽 민족국가의 국가권력을 성립하게 한 배경이었다.
그런 적대적 종말론이 유럽 밖으로 확장된 것이, '대항해'와 '세계 식민화'다. 세계 전체를 기독교화해야 진정한 종말이 온다고 믿었다. 서구의 근대사 500년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그것은 '전 지구적 충격(impact)을 만들어낸 유럽의 대항해를 통한 대외 팽창'이다. 종교전쟁을 통한 유럽 내부 팽창이 대항해와 얽혀 아메리카, 아시아의 식민지화로까지 이어졌다.
한승동 : 기독교 종말론이야말로 서구의 500년 팽창을 끈질기게 밀어붙인 근원적 힘이라는 해석이다.
김상준 : 그 에너지가 미소 냉전으로까지 이어졌다. 책에서 첫째, 유럽 종교전쟁, 둘째, 대항해와 세계식민지화, 양차 세계대전, 마지막 미소 냉전으로 3단계에 걸쳐 확장된 유럽 내전이 냉전의 종식으로 끝났다고 썼다. 기독교 종말론의 심리적 에너지가 이 과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세계팽창 동력의 중요한 일부였다.
그렇지만 기독교 종말론을 한 가지 흐름으로만 보는 것은 아니다. 종말론적 에너지를 적대적인 낙차 에너지가 아닌 우애와 협동의 수평적 에너지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유럽에서도 계속 있었다. 유럽 내부의 내장 근대적 세력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2차 대전 때까지는 내장적 흐름이 유럽문명의 진로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지 못했다는 점이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상당히 달라졌다. 내장적 저력이 상당히 강해졌다.
한승동 : 결국 부르주아 등 적대적인 낙차 에너지를 강조하는 세력과 기독교가 손을 잡은 거 아닌가. 어떤 면에선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화한 이후 제도화된 기독교야말로 침략의 뒷 배경에 있는 원흉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된다.
김상준 : 대항해 초기부터 팽창의 폭력성을 자기비판했던 흐름이 있었다. 이 점을 아울러 봐야 한다.
16세기 남미와 스페인에서의 '라스카사스-세풀베다 논쟁'도 그렇다. 영화 <미션>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비유럽인, 비기독교인을 유럽인과 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는가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대항해 초기부터 있었다.
'미개한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입장의 사람들이 주류가 된 건 맞다. 하지만 내부에 주류 기독교를 비판하는 흐름은 초기부터 있었다. 예수의 이야기부터가 폭력과 차별, 지배를 반대하는 가르침이다.
기독교의 종말론적 에너지가 우애와 협동의 수평론적 에너지로 될 것이냐. 아니면 대립과 적대의 낙차 에너지로 더욱 커질 것이냐. 이후 인류의 향방에 있어 중요한 문제다. 고뇌하는 기독교인이 많다. 참된 기독교인의 역할 역시 크다.
※ 라스카사스-세풀베다 논쟁
1550년 도미니코회 수사인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와 학자인 후안 히네스 데 세풀베다가 스페인의 잔혹한 식민통치를 두고 열린 신학토론회인 '바야돌리드 회의'에서 벌인 논쟁이다. 회의의 이름을 따 바야돌리드 논쟁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세풀베다는 '인디언들은 우상숭배라는 중죄를 저질렀고, '천성적으로 조야하고 열등한 존재'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 개념에 들어맞는 타고난 노예'라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스페인의 군사적 정복과 이를 통한 기독교 전도를 옹호했다.
라스카사스는 이에 대해 '인디언도 이성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 개념에 들어맞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무력이 아닌 설득과 교육을 통한 전도를 주장했다.
내장(內張) 근대의 동아시아가 서구에 무너진 이유
한승동 : 동아시아에서는 17-19세기 200년 간 전쟁 없는 시대에, 즉 내부의 전쟁도 외부에 대한 정복도 없으면서 내장 근대가 착실히 진행됐고 그때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동아시아의 비중이 서구와 대등하거나 그 이상이라고 썼다. 미야지마뿐만 아니라 조반니 아리기나 예전에 유명했던 종속이론가 안드레 군더 프랑크 같은 사람도 그랬다. 이런 주장을 입증할 만한 근거가 있나?
김상준 : 앵거스 매디슨이라는 네덜란드 경제사학자가 그 문제에 대해 중요한 통계적 분석을 했다. 매디슨은 과거 시대의 GDP를 추정할 수 있는 방법을 오래 연구한 경제사학자다. 특정한 이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데이터가 나오면 데이터대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 연구가 유네스코 공식 연구로 인정받고 있다. 매디슨의 통계를 보면, 과거에도 동아시아의 경제규모가 컸다고 나온다. 매디슨의 연구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근본적인 이의 제기는 없는 걸로 안다. 미세한 데이터 해석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있을 뿐이다. 형-류-세-형'의 상승적 순환구조 이야기를 자신 있게 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매디슨의 연구가 상당히 중요한 근거가 됐다.
한승동 : 상식적으로 보면, 서구의 팽창을 생산력이나 앞선 근대화가 아닌 군사기술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의 조선 침략, 몽골의 중국 침공도 문명의 발전 정도가 높고 생산력이 높아서가 아니라 군사기술, 군사적 힘이 우월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서구가 동아시아를 침략할 때를 보면, 아편전쟁 때 중국이 손도 못 쓰고 무너졌다. 여기에 대해서도 앞선 근대화가 아닌 우수한 군사기술 때문이라는 해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상준 : 각각의 문명권에서 전국시대(戰國時代)가 언제까지 지속됐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춘추전국시대에 진나라가 중원을 통일하며 동아시아 내장 문명은 굉장히 일찍 전국시대를 졸업했다. 그 후 칼보다 붓을 중시하는 문명이 되었다.
한승동 : 무(武)로 특징지어지는 전국 문명에서 문치(文治)를 중시하는 문명으로 갔다는 얘기다.
김상준 : 그렇다 보니 전쟁만 계속해 온 서세(西勢)에 밀렸다. 그러나 그게 동과 서의 군사 관계에서 무슨 고정된 사실 같은 것은 전혀 아니다. 옛적 진시황과 알렉산더대왕의 군대가 전쟁했으면 어느 쪽이 이겼을까. 당연히 진시황 쪽에 걸겠다. 병력, 무기, 병참 모두에서 그렇다.
그런데 동아시아에서도 일본에서는 전국시대가 늦게까지 갔다. 그러니 일본의 무력이 상대적으로 더 강한 때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문명사적으로 보면 단연코 후진성임을 알아야 한다.
유럽도 전국(戰國)적 성격의 봉건제가 오래 유지됐다. 동아시아가 전국시대를 졸업한 이후에도 유럽은 전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다 대항해를 계기로 해양 군사력도 개선됐다. 이후 아메리카, 아프리카에서 형성한 교역망으로 얻은 엄청난 자원이 군사력으로 모아졌다.
나중에는 화석연료가 동원되며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 이야기하는 총과 쇠가 등장해 팽창 근대에 날개를 달아줬다. 총과 쇠는 정말 파급력이 컸다. 기관총을 활과 창으로 어떻게 이기나. 이런 점이 아편전쟁 이후 서세동점으로 나타났다. 후진성이 선진성으로 역전된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낙차 에너지에 기초를 둔 팽창이 지속되기 어렵게 되었다. 100년 전과 비교해보면 군사적 낙차는 과거와 같이 현격하지 않다. 군사적 수평화가 두드러진다. 낙차 끝에 수평 현상이 온다. 팽창 끝에 내장이 온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다.
이제 전쟁으로 누구를 쉽게 제압하기 어렵다. 미국이 이라크, 아프간에서 엄청 헤맸지 않나. 전쟁을 정당화하기도 과거보다 훨씬 어렵게 됐다. 이 책 전체에서 일관되게 논증한 점이다.
인간성의 핵심은 협력하는 존재
한승동 : 책에서 서구 팽창 근대의 완성이 곧 팽창 근대의 종결이자 종식이며, 그것이 내장 근대(正)가 팽창 근대(反)의 충격을 거쳐 새롭게 태어나는, 그 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 팽창 근대까지 통합한 정(正)·반(反)·합(合)의 미래 문명 대전환의 변증법적 발전이라고 했다.
내장형 발전은 침팬지와는 다른 인류만의 특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내장형 발전에는 그것을 필연이게 만드는 생물학적, 인류학적, 문화인류학적 개념의 '거대한 뿌리'가 있다고 했다. 말하자면 결국 인류가 팽창이 아니라 내장으로 간다는 근거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설명해 달라.
김상준 : 팽창과 내장의 변증법은 팽창이 승리의 절정에 올라가는 순간 더 이상 팽창할 데가 없으니 내장화되는 걸 말한다. 중국이 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하나만 남으니 내장화됐다. 서구에서도 20세기까지는 팽창적 에너지가 압도적이었지만 이제 미국 하나가 남았고, 그 '유일패권'도 이제 사라지는 중이다. 팽창적 길이 끝나면 내장적 길로 가게 된다. 역사가 그랬고, 미래도 그럴 것이다.
이 예측에 정말 확실한 근거가 있는가. 정말 인간 본성의 차원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나. 회의, 주저, 의심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분명한 근거를 밝히고 싶었다. 쉽게 말하기 위해 가까운 데서 찾아보자. 2016년 겨울 촛불집회는 어떤가. 낮에는 그렇게 성미 급한 사람들이 밤에 집회에 나오면 왜 이렇게 경건하고 배려심이 깊은가. 석달 열흘 주말마다 그렇게 모여도 유리창 하나 안 깨졌다. 세계가 놀랐다. 이런 놀라운 광경은 왜 가능한가. 모인 사람들은 분명 천사가 아니라 '인간'이었는데 말이다.
그 촛불집회가 보여준 '평화와 우애의 정신'을 진화론 관점에서 생각해봤다. 침팬지와 인간이 같은 가지에서 나왔다. 대략 200만 년 전까지도 서로 뺏고 뜯고 알파 수컷이 자원을 독점하고 집단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칼 슈미트, 토마스 홉스 같은 사람들의 '인간본성'에 대한 비관적 인식은 이런 상태를 인간의 '원래 상태', '자연상태', '가장 깊은 본성'으로 보는 데서 비롯한다.
과연 그럴까.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떤 모습의 존재를 우리는 진화적으로 '인간'이라 부르는가. 여기서부터 인간에 대한 진화론 연구의 최근 성과들이 중요하다. 인간이 침팬지와 갈라져 '인간'이 된 것은, 침팬지와 다르게 협동을 통해 먹이를 구하고, 흥겨운 분위기에서 이를 공평히 나눈다는 점에 있다. '알파 수컷'은 '인간'이 된 인간집단에서 사라진다. 인간이 '인간'이 되는 기본적인 근거는 내적 협력의 증대를 통해 발전과 존속을 가능하게 하는 내장적 집단을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것을 '내장적 문명전환의 거대한 뿌리'라고 했다. 이 책의 총결부인 5부 4, 5론에서 집중적으로 확인했던 중요한 포인트다.
한승동 : 인류의 미래와 관련해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다. 팽창 근대는 지구라는 행성이 갖는 자원의 총량으로 볼 때 더는 감당할 수 없다. 팽창은 불가능하고 내부 밀도를 높이면서 내장 근대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다른 한편 내부 밀도를 높여 발전해도 인구와 생산이 늘어나는 건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자연자원 소모 증대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없지 않나. 환경적인 관점에서 볼 때 팽창과 내장이 차이가 있나?
김상준 : 과거 동아시아도 인구가 늘면 숲과 바다로 나가 개간을 했다. 당연히 숲과 뻘이 침해됐다. 내장사회의 농업도 이런 자연적 한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그러나 농법 차이는 존재했다. 1909년 미 연방정부 토양관리국장이었던 프랭클린 킹 박사가 중국, 조선, 일본을 차례로 방문해 농법을 살펴본 뒤 탄복한 일이 있다. 이때 중국이나 조선은 망해가는 나라였는데도 그랬다. 핵심은 미국이나 유럽의 농법은 지력을 약탈하는 반면 동아시아는 지력을 보존하는 농법을 쓴다는 사실을 발견한 데 있었다. 동아시아의 내장농법에는 환경보존적인 면이 있다. 그걸 킹 박사가 발견하고 탄복한 것이다. 이런 친환경 농법을 오늘날 신과학의 지원을 받아 되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21세기 후기근대에는 상황이 또 크게 달라졌다. 세계 인구증가율과 경제성장율이 동시에 꺾이고 있다. 근대의 핵심 징표였던 두 지표가 꺾이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인류사가 새로운 단계로 접근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무언가 새로운 문명적 전망, 비전이 열려야 한다. 자연적 한계, 자연과의 낙차 문제도 완전히 다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이럴 때 폭력적 낙차 창출이 아닌 평화적 밀도에너지의 창출이 중요해진다.
3, 4차 산업 혁명과 관련해서도 그렇다. 반도체는 좁은 공간에 칩을 얼마나 쌓을까 하는, 즉 내부 밀도를 높이는 문제다. 이와 관련한 생산력 증가가 내장 문명의 성격과 깊은 친화성을 갖는다. 화석에너지 산업보다는 분명 기후에 덜 위협적이다. 모든 시스템이 중후장대(重厚長大)가 아니라 경박단소(輕薄短小)해진다. 더 환경 친화적이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모토가 현실에 가까워진다. 3, 4차 산업혁명과 동아시아 내장성은 깊은 친화성을 갖고 있다.
코로나 정국에서, 비대면 밀도, 즉 만남이 줄어드는 가운데 밀도를 높이는 방안이 나는 것도 내장적 현상이다.
이런 내장적 동력, 에너지가 중요하다. 내장 문명이 팽창 문명에 비해 3, 4차 산업혁명이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같은 일에 훨씬 더 적합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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