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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다시 'it'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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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다시 'it'을 묻는다

[정욱식 칼럼]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가시화되나?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 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2006년 1월 한미 정부가 발표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내용이다. 당시 노무현 정부와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고 있었는데, 서로의 입장을 "존중한다"는 것으로 절충한 것이다.

그로부터 15년여가 지난 최근에 폴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가 의미심장한 입장을 내놨다. 그는 5월 18일 미 의회 인준 청문회에서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예하 사령부"라면서 "주한미군은 인도태평양사령관에게 역외(한반도 밖)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에 대응하는 데 여러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과 목적을 지원하는 인도태평양 사령부의 우발 계획과 작전 계획에 주한미군의 능력을 포함시키는 것을 옹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가 말하는 역외, 즉 한반도 밖에서의 "우발 사태나 지역적 위협은" 바로 중국과의 무력 충돌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한반도에 더불어 '동아시아의 약한 고리들'로 불려온 남중국해, 대만 해협, 동중국해가 핵심이다. 그리고 라캐머라의 발언은 이들 지역에서 중국과의 긴장 고조나 무력 충돌 발생시 주한미군도 투입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2006년 1월 합의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은 한국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 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했는데, 주한미군이 역외 분쟁, 특히 중국과의 분쟁에 동원되면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연루될 위험도 매우 커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2006 1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합의를 둘러싼 한미간의 '동상이몽'이다. 위에서 소개한 합의의 영어 원문은 "In the implementation of strategic flexibility, the U.S. respects the ROK position that it(강조 필자) shall not be involved in a regional conflict in Northeast Asia against the will of the Korean people"이다. 여기서 문장 중간에 나오는 'it'을 주한미군으로 보느냐, 한국군으로 보느냐에 따라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it'에는 주한미군도 포함된다는 입장이었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실질적 합의는 한국 정부가 동의하지 않는 한 움직이지 못한다"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었다. 미국이 한국을 발진기지로 삼아 주한미군을 중국과의 분쟁에 투입하면 한국이 휘말리게 되는 위험성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은 달랐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전략적 유연성이 논란이 되었던 2005년 5월에 미국 국방부 고위 관리를 만나 이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이에 대해 그는 기본적으로 주한미군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미국의 주권 사항이라면서, 한국 정부가 북한의 남침시 주일미군의 개입을 반대할 수 없는 것처럼, 양안 분쟁시 주한미군이 개입하는 것도 반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또한 2005년 초까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으로 근무했던 마이클 그린은 2007년 4월 한 토론회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대만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추구한 핵심적인 목적이 중국과의 무력 충돌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목들이다.

그 이후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표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한미 정부의 여러 성명에서도 이 표현은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유연성이 강화되는 방향으로 흘러왔다. 앞서 인용한 라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의 입장 표명이 대표적이다. 또 오산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미군 U-2기의 대중 감시·정찰 비행도 잦아지고 있다.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 업그레이드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미중 충돌시 주한미군도 투입할 수 있다는 미국의 입장은 한미동맹과 관련된 숱한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이 주한미군을 대중용으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기지도 무상으로 제공하고 1조원이 넘는 방위비 분담금을 지불하고 매년 올려주기로 한 게 온당한 일인가?

혹시 미군이 연합훈련을 고집하는 데에는 한국을 전지훈련장으로 삼고자 하는 의도도 깔려 있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도 주한미군을 역외 분쟁에 투입할 수 있다는 입장과 한국이 원하지 않는 분쟁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것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은 양립 가능한가? 그리고 이는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부합하는가?

미중간의 전략 경쟁에 대한 입장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노선은 원하지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는 데에 있다. 한미동맹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이 마지노선마저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수단'이 되어야 할 한미동맹이 한국의 안전과 번영이라는 '목적'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15년 전 'it'이 논란이 되었을 때, 필자는 청와대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양측의 해석상의 차이가 나중에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강한 우려를 표했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있지도 않을 일을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사안이 발생하면 그 때가서 논의하면 된다고 반박했었다.

또 청와대는 별도의 보도자료를 통해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문제제기를 "패배주의"라고 일축하면서 "조항의 해석에 매달려 문제제기를 하기보다는 앞으로 우리의 교섭력과 협상력을 높이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표현 여부와 관계없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시화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하여 문재인 정부는 라캐머라가 밝힌 입장에 대해 분명한 유감을 표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않는 분쟁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존중키로 했던 미국을 상대로 여기에는 주한미군 차출 문제도 포함된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한다.

※ 필자의 신간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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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욱식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군사·안보 전공으로 북한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9년 대학 졸업과 함께 '평화군축을 통해 한반도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평화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통일·외교·안보 분과 자문위원을 역임했으며 저서로는 <말과 칼>, <MD본색>, <핵의 세계사> 등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한겨레 평화연구소 소장을 겸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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