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데, 며칠 전 가방에서 콘돔을 발견했습니다. 저도 당황하다 보니 아들에게 '여자친구와 성관계를 했느냐? 그러다가 걔가 덜컥 임신이라도 하게 되면 어떻게 할 거냐? 대학은 안 갈 거냐?' 등 야단을 쳤습니다. 아들은 반성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고, 부모가 자기 허락 없이 가방을 뒤졌다고 화를 내며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등을 묻는 것에는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에게 화가 나면서도 걱정이 되고, 학교에 말을 해야 할지 아들이 사귀는 여자친구의 부모에게 연락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폭력을 둘러싼 법적 다툼을 많이 다루다 보니,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상담도 잦다. 주로 아이들의 성폭력이나 학교폭력 같은 문제들 때문에 연락이 오지만, 간간히 아이들의 성 문제 자체 때문에 고민하는 연락도 받게 된다. 부모 눈엔 아직 한없이 어리게만 보이는 청소년 자녀들의 가방이나 지갑에서 콘돔 같은 피임도구라도 발견하면 당황하고 걱정이 앞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자녀가 소지하고 있던 콘돔을 발견한 경우, 자녀가 아들일 때보다는 딸일 때 더 많이 걱정한다. 거기에 사회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들, 혼전 임신을 둘러싼 편견과 터부가 한몫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한참 성에 대한 관심이 폭발하는 아이들에게 그저 안 된다고 말하는 게 통할 리 없고,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것보단 피임이 현명한 선택이다. 하지만 그런 고민을 하는 부모님들을 향해 저런 말들을 건네기 쉽지 않고, 설령 건넨다 한들 탁상공론처럼 들리기 십상이다. 어쩌면 부모님들도 변호사를 찾아와 고민거리를 늘어놓는 이유가 부모 입장에서 바라는 것을 이루어줄 신묘한 방법을 찾고자 하기보다는, 소위 '어린 것들이 발랑 까져서', '커서 뭐가 되려고'와 같은 뻔하고 나쁜 시선을 느끼지 않고 토로할 곳이 필요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조희용 전 스웨덴 대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한국에서라면 어땠을까? 중학교 학생들의 화장실에 콘돔 자판기가 설치되었다면 그것이 화제가 되고 부모들의 항의가 빗발쳤을 것이다. 그러나 발상의 전환은, 사회의 문화를 바꾸고, 개인의 삶을 바꾼다. 미성년자들의 자발적인 성관계가 범죄나 불법 행위가 전혀 아니지만, 한국에서는 중학생 자녀가 또래의 이성친구와 성관계는 전제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나 당위가 아니라 실체 없는 믿음과 바람이다. 그러니 실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가장 현명한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실제 일어나는 일들이 없는 것인 양 덮어버리고 그런 일들에 대해서는 무방비 상태가 된다. 그리고 그 믿음과 바램을 저버린 개인에 대한 비난만 남는다. 이것은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이를 통해 아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
사회는 급속도로 변해가고 있고, 과거에도 문제가 되었던 불합리는 현재에 이르러는 더 문제가 될지언정 사라지지 않는다. 없는 척 한다고 없는 일이 되는 것도 아니다. 청소년의 성을 보호하는 길, 남녀가 평등한 세상으로 한발자국 더 다가가는 길은 아이들의 실제하는 성을 외면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교육과 담론으로 알아가야 할 일을 인터넷과 유튜브 같은 곳으로 미뤄두는 것은 방법이 아니다. 미성년자들에 대한 건강한 성교육과 현실적인 피임교육을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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