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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기후위기에는 '위기답게' 대응하라

[초록發光] 기후위기 못 본 채하는 한국 정부

"국회는 인간의 과도한 화석연료 사용과 온실가스 배출 증가에 따른 기후변화로 가뭄, 홍수, 폭염, 한파, 태풍, 대형 산불 등 기후재난이 증가하고 불균등한 피해가 발생하는 현재의 상황을 '기후위기'로 엄중히 인식하고, 기후위기의 적극적 해결을 위하여 현 상황이 '기후위기 비상상황' 임을 선언한다."

다른 나라 국회가 아니라, 놀랍게도 한국 국회의 선언이다. 지난 해 9월 24일, 국회는 재적 의원 258명 가운데 252명의 찬성으로 '기후위기 비상 대응 촉구 결의문'을 통과시켰다. 전국 수백 개의 단체들이 연대한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2019년 9월부터 이를 요구하고, 작년 6월 226개 모든 기초지자체 모여 '기후위기 비상선언'을 한 이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영향인지 문재인 대통령도 작년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 탄소중립―이 개념이 가진 여러 ‘함정’들은 일단 논의로 하자―을 천명하였고, 11월 국무회의에서 그 의미에 대해 "기후위기를 엄중히 인식하고 필요한 대응과 행동에 나서겠다는 선언"이라고 직접 설명하였다.

이런 선언과 설명을 듣고 있으면, 한국이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탄소중립'을 향해 어려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것이라 믿고 싶어진다. 그러나 정부가 탄소중립을 위한 전환을 위해서 제대로 움직여 나가고 있을까? 최근 정부는 <2050년 탄소중립 추진전략> 이행을 위한 신규 과제를 제시했는데, 법무무의 "형사사법절차 완전 전자화"와 여성가족부의 "성범죄자 신상정보 모바일고지 확산"도 포함되어 있다. 대체 '탄소중립'이 뭐라 생각하기에 이러나, 정신이 아득하다. 주무부처가 아닌 곳에서, 새로운 길을 가려다 보니 겪는 시행착오라고 해두자.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주무부처들이 내는 어처구니없고 치명적인 엇박자들이 너무 많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다른 나라들은 어떻게 수치를 내놨을까 싶다"고 발언하며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고 해 구설수에 올랐다. 여기서 '수치'라는 것은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 신임 미국 대통령 바이든의 초청으로 개최된 기후정상회의에서 미국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들이 내놓은 온실가스 감축목표 수치를 말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과거에 약속한 것보다 강화된 수치를 내놓았다. 미국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50-52% 감축, 유럽연합은 1990년 대비 55% 감축, 영국은 1990년 대비 68% 감축하기로 했다. 일본도 2013년 대비 46% 감축을 약속했다. 선진국들의 새로운 목표가 1.5도 목표 준수를 위해 충분한지 자신할 수 없지만, 과거보다 진전된 것은 분명하다. 이런 노력을 두고 한정애 장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기후정상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다른 나라 정상들과 달리 상향된 NDC를 내놓지 못했다. 임기말까지 제시하겠다는 목표를 연말까지 앞당겨 제시하겠다는 어색한 약속으로 어물쩍 넘어갔다. 국제 사회가 한국의 기존 NDC가 너무나 무책임한 목표라고 반복해서 지적해왔기에, 그 자리에서 강화된 목표치를 내놓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납득하기 어려운 연설과 그 해명은 아찔하다. 감축 목표량은 동일하지만 과거 부적절한 감축 기준을 바로잡은 것만으로 "1차 상향"했다고 거짓말을 하며, 주요 국가 정상이 참여하는 외교 무대 위에 섰다. 쉬쉬하며 넘어갔지만, 외교참사라 불러야 할 일이다. 레임덕 대통령이라더니, 청와대 참모진이나 정부 관료들이 모두 손을 놓았다고 해석하지 않으면 이해가 되질 않는다.

한정애 장관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변명하려다 빚어진 말이다. 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새로운 수치를 약속하지 못한 것은 얼마나 감축할 수 있을지 '계산'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목표치를 마련하지 못하여 죄송하다고 해야 할 순간에 다른 국가를 탓하거나 의구심을 표하는 주무부처 장관이라니. 최근 독일 헌법재판소가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부족하다는 취지의 위헌 판결을 내놓았고, 독일 연방정부는 일주일 만에 목표를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표하였다. 이미 선진적인 목표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그마저도 "미래세대의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판단에 즉각 반응하여 강화된 목표를 내놓았다. 이 같은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 과한 기대일까.

2019년부터 기후운동이 2050년 ’탄소중립‘을 주장했을 때, 실현불가능하다며 정부는 듣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천명하고 나서자 마지못해 수용했지만, 온갖 기술관료적 장애물을 가져다 놓고는 어떻게 하면 못한다고 답할까 궁리하는 듯이 보인다. 특히, 정부는 당장 10년 뒤인 2030년 감축목표를 탄소중립 실현 경로 위에 올려놓는 것마저 거부하고 있다. 이미 여러 전문가, 단체 그리고 정당들이 기후위기 해결과 기후정의 원칙에 부합하는 2030년 목표―최소한 2010년 대비 50% 감축, 기후정의 원칙을 따를 경우 2017년 대비 70% 감축―를 제시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현가능성을 따지고 기업의 피해를 걱정하며 뭉개고 있다.

정부는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서 필요한 목표를 설정하고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일만을 하겠다는 보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지금까지 하던 것은 그대로 한다. 건설을 시작한 민간기업들의 석탄발전소는 그대로 짓도록 놔두고, 이미 결정한 해외 석탄발전소의 공적 금융 지원도 지속하기로 한 정부가 절박하게 탄소중립을 추진한다고 믿을 수 있을까. 그저 해야 하면 좋은 것, 언젠가 해야 할 일 정도로 여기는 것, 혹은 기업들의 새로운 마케팅 포인트로 간주하는 정도가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인가.

심지어 '기후위기'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공항을 짓겠다는 결정 앞에 '기후위기'는 그냥 말일 뿐이다. 기후위기 결의문을 채택한 그 국회가 몇 달되지 않아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그 법 통과를 독려하기 위해서 가덕도까지 방문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2시간 30분 이내의 국내선 비행 운항을 금지하기로 한 프랑스 의회의 대응과 극단적으로 비교된다. '기후위기'는 공적인 정책결정의 기준이 되지 못함을 실감한다. 대통령, 국회의원, 장관들에게는 경제성장, 기업의 이익, 그리고 선거정치가 기후위기보다 훨씬 절박하고, 기업들의 불만을 달래고 그린뉴딜이라는 허구적인 이름 아래 자금을 지원하는 것이 노동자와 시민들의 삶과 정의로운 전환을 보살피는 것도 더 중요한 과제다.

이번 달 말에 P4G(녹색성장과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 회의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이명박 정권의 '녹색성장'을 이름에 달고 개최하는 국제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연설을 하게 될까. 장담컨대 강화된 2030년 감축목표 수치 제시는 없을 것이다. 대신 연설에 한 줄 넣기 위해서 정부는 100명 규모의 탄소중립위원회를 구성하고, 민주당은 국회에 계류된 기후위기대응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한다. 대규모로 꾸리는 탄소중립위원회에는 이번에도 노동자 대표는 초청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 위원회에 참가하는 이들이 어떻게 시민사회를 대표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는지 알 길이 없다. 또한 민주당이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기후위기대응법안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녹색성장법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며, 기후위기 비상행동이 제안한 '기후정의법'과 얼마나 가까운 지도 파악하기 힘들다. 그래도 P4G 정상회의에서 대통령 연설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뭐 어떤가? 달리 P4G가 그린워싱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비상사태를 비상사태처럼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에너지를 행동에 쏟아 부을 수 있다."

북미의 작가이자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인이 최근 번역된 저서 <미래가 불타고 있다: 기후재앙 대 그린뉴딜>에서 한 말을 기억하자. 기후위기의 진실을 인정하고, 공적 결정과정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껏 해오던 대로 할 수는 없다. 대통령이 눈감고, 정부가 귀를 닫으며, 국회가 딴 소리를 하니, 시민들이 기후위기 진실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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