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8일 취임 첫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선언했다. 취임하며 “미국이 돌아왔다”고 천명했던 바이든 대통령의 후속 발언이다. 임기 첫 100일 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많이 움직였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미국의 이익을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없는 미국우선주의’를 제창한 바이든 정부는 그동안 구체적으로 어디로 움직이고 있었던 것일까? (졸고, 미국이 돌아왔다, 하지만… : 바이든 정부의 국가안보전략과 미래) 바이든 정부의 대외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가? 최근 검토를 마쳤다고 하는 대북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전임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을 신속하게 뒤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세계보건기구에 복귀하여 밀린 회원비 2억 달러를 납부하겠다고 했다.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 기후변화협약에는 복귀했을 뿐만 아니라 40개국 정상을 초청해 기후정상회의를 주도하기도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우며 추구하던 일방적 외교노선에서 180도 선회했다. 동맹국과의 대화와 협력에 공을 들이고, 외교와 협상을 중시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는 많이 다르게 움직이고 있다.
국내정책에서는 더 과감하게 움직이고 있다. 사회기반시설 재건에 2조3천억 달러를 투자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1조8천억 달러가 투여될 ‘미국 가족 계획’은 이에 못지 않게 야심차다. 3~4세 아동 모두에게 무료 교육을 제공하는 등 교육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보통 미국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다고 한다. 그간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던 경찰의 폭력, 인종 및 성차별, 이민 문제 등에서도 대폭적인 개혁을 추진하며 평등한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어렵다는 총기 규제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민주주의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겠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공화당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고, 민주당 안에서 조차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도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움직이고 있지만 미국 정부가 움직일지는 불투명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움직이지 않고 있는 부분도 있다. 트럼프 정부가 탈퇴했던 이란 핵합의 (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는 아직 복귀하지 않았다. 물론 이를 위한 협상이 시작되기는 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가 탈퇴 후 되살린 경제 제재는 물론 새로 추가한 경제 제재조차 풀지 않고 있다. 실질적 행동은 변하지 않은 채 이란이 먼저 핵합의로 돌아올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연히 이란은 이런 ‘외교’에 응하지 않고 있다. 합의에서 먼저 탈퇴했고 합의에 위배되는 조치들을 취한 미국이 먼저 이런 조치들을 되돌려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한편 끝나지 않는 ‘영구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선거 공약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철군 계획은 오히려 트럼프 행정부의 합의에서조차 후퇴했다. 중동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 아랍에미리트 연합국 등에 무기 수출을 계속하고 있다. 이 틈을 이용한 강경파들은 이란과의 협상을 좌절시키려 획책하고, 아프가니스탄 철군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바쁘다. 바이든 행정부가 움직이지 않으면 다른 세력이 움직인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악화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러시아의 2020년 미 대선 개입 의혹을 제기하며 응징을 경고하자마자 러시아 외무부는 아나톨리 안토니프 주미 러시아 대사를 소환하며 강경하게 대응했다. 여기에 바이든 대통령이 미 TV방송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살인자’라고 비난하자 러시아는 “우리나라에 대한 공격”이라며 분노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렇게 관계가 악화하는 가운데 존 설리번 주러시아 미국 대사도 미국으로 귀환,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대사가 동시에 부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와중에 최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국경에 10만 명에 달하는 군대를 집결시키고 미국은 흑해를 향해 구축함을 파견하는 등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심각하게 악화하고 있는 미(서방)·러 관계가 우크라이나에서 대리전으로 비화할 뻔했던 것이다.
중국과의 관계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했던 무역전쟁은 현재 그대로 진행형이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제창했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계속해서 되풀이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유통항권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자유통항권’이라고 명명한 군사작전도 계속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거기에 더해서 홍콩이나 신장성 등에서의 인권탄압 문제를 공개적으로 제기하고, '타이완 카드'를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다. 인도태평양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한 협의체로 트럼프 행정부가 2017년 출범시킨 쿼드는 지난 3월 12일 사상 최초의 정상회의를 갖는 등 강화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3월 18일 알래스카에서 개최된 중미 고위급 전략 대화는 ‘고위급 말싸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바이든 정부는 중국을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러시아는 그 보다는 덜하지만 엄중한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 미 정보기관들의 집단지성이라고 할 2021년 <연례 위협 평가>는 중국이 '거의 대등한 경쟁국'으로서 경제, 군사 및 기술 등 여러 분야에서 미국에 도전하고 있으며 국제적 규범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 평가의 내용은 트럼프 정부가 중국을 '수정주의 국가'라고 명명한 것과 대동소이하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2020년에 중국 공산당을 지목하며 ‘반공주의’를 내세웠다면 바이든 정부도 중국 공산당을 지목하며 ‘반 전체주의’를 내세우고 있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 대응수단에 있어서는 전체적으로 ‘협력·경쟁·갈등’의 세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하지만 갈등이 보다 본질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도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정부보다 훨씬 더 엄중해졌을 뿐더러 그 대응수단도 강경해졌다. 트럼프 정부와 눈에 띄게 다른 점이라면 동맹국들을 대중 및 대러시아 전선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이란과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 다음의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은 그의 의회 연설에서 이 두 나라를 한 묶음으로 처리했다. 우선 “이란과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미국과 세계의 안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성격 규정했다. 한반도에서 미국과 북한은 전쟁상태이며 미국과 북한의 무기 프로그램은 상대방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인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위협 규정에 기반해 “동맹국들과 긴밀히 협력해 외교와 엄중한 억제를 통해 이 두 나라가 제기하는 위협에 대처할 것”이라고 대응 방식을 정리했다. 한반도에서는 한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유엔사령부 참가국까지 포함한 ‘동맹국들’을 대북 전선에 동원하는 한편 '외교와 엄중한 억제'를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로써 미국의 핵군사력 사용 위협으로 잠재적 적국의 공격을 사전에 막는다는 '억제'를 북한에도 적용하겠다는 점도 명확히 했다.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적에 상충되기 때문인지 바이든 대통령은 한반도 비핵화는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여기에 '엄중한' 이란 수식어가 붙은 것은 미사일 방어와 비핵 군사력 강화를 핵군사력에 추가한다는 의미일 수 있다. ‘외교’는 북한과의 협상을 추구하겠다는 것 뿐만 아니라 대북 경제제재 집행을 위한 외교활동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대 이란 외교를 볼 때 ‘외교’로 복귀는 하지만 제재 완화 등의 조치들을 유인책으로 사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의 설명도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는 우선 “우리의 목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이 말한 “엄중한 억제”가 대북 핵위협임을 얼버무렸다. 대통령과 대변인의 발언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병렬적인 것이 아니라 위계적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는 또 “지난 네 행정부의 노력은 그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다는 점을 명확히 이해”한다는 단서도 붙였다. 바이든 행정부는 그러한 이해 아래 “실용적인 접근”을 취할 것이며 미국와 동맹국의 안보를 증진시키는 “실용적인 진전”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한반도 비핵화는 어차피 어려우니 미국 핵군사력에 의지하는 안보에 초점을 맞추는 실용노선을 추구한다는 것일까?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 검토가 완료됐음을 가장 먼저 알린 워싱턴포스트지가 인용한 익명의 미 관리도 비슷한 논리를 전개했다. 그는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한다는 목표를 두고 북과의 외교에 조정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이라고 밝혔다. 우선 실용외교의 목표를 ‘미국에 대한 위협 제거’로 국한시킨 점이 눈에 띈다. 그러면서도 그 정책을 스스로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우리가 고려하고 있는 정책이 북한의 도발을 방지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 이유는 그 스스로도 알고 있다. “우리는 경제 제재 압력을 유지할 의지가 완전하다.” “우리의 접근법은 싱가포르 및 그 이전의 합의들에 기반할 것”이라고 하지만 싱가포르 합의를 포함해 과거의 모든 노력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명확히 이해’하고 있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싱가포르 합의의 실패에 기반하여 실용적으로 접근한다는 논리구조다. 역시, 이 익명의 관리나 사키 대변인, 바이든 대통령은 북·미 “새로운 관계” 수립이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은 말하지 않고 있다. 북을 여전히 ‘위협’으로 규정하며, 적대적 관계 자체를 전환시킨다는 목적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민주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가치외교’를 추구하고 이를 실용적으로 달성한다는 ‘실용외교’를 구사한다고 한다. 대화와 외교를 앞세워 협력할 부분이 있는 곳에서는 누구와도 협력하겠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중국·러시아·이란·북한에 대한 갈등이 두드러지고 있다. 동맹국들과 친미적 국가들을 그 대치선에 집결시키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한반도에서 어떤 모습으로 구체화될 것인가? 한국과 북의 냉철한 분석과 치열한 실천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
이 글은 <한겨레>에 실린 '서재정 칼럼', "바이든 정부, 한반도 위기로 향하는가"(바로가기)를 보완한 것입니다. 필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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