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망동' 김여정 불같이 화내자, 정부는 바로 움직였다."
3일자 <중앙일보> 인터넷 판 머리기사 제목이다. 이 매체의 보도를 보면, 2일 북한의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강력히 비난하는 담화를 발표하자 문재인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강력 대응 입장을 밝힌 것처럼 비춰진다.
또 <중앙일보>는 "북한 눈치보기에 급급한 태도는 바이든 행정부의 기조와도 배치된다"며, "바이든 행정부가 발표한 새 대북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단호함'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비난을 위한 비난'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우선 정부가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개정된 법의 취지에 따라 엄정히 조치하겠다"고 입장을 밝힌 것은 김여정 담화보다 앞선 시점이었다.
"김여정이 불같이 화내자" 정부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탈북민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4월 30일에 대북 전단 살포를 강행했다고 밝히자 의법 조치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는 또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저자세"로 비난하고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정책은 "단호함"이라고 주장하면서 이를 대비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전형적인 아전인수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가 "단호한(stern)"으로 수식하는 대목은 "억제(deterrence)"이다. 즉 북한의 핵 위협에는 단호한 억제로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반면 "외교"에서는 "조정되고 실용적인 접근"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2일 담화에 대한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권정근은 바이든의 대북 발언에 대해 "대단히 큰 실수", "실언"이라고 비난하면서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설리번은 이에 대해 "우리의 대북 정책은 적대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외교적 관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한의 강경 발언에 대해 맞대응하기보다는 차분한 대응을 선택한 것이다. 여기에는 '말 대 말'의 대결이 위기를 고조시키려는 북한의 의도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런데 이는 문재인 정부 역시 마찬가지이다. 정부 역시 대북 억제력 확보를 강조해왔고 실제로 문재인 정부 들어 군사력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되었던 군사력이 작년과 올해 6위로 껑충 뛰어오른 것에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동시에 정부는 외교적 해결의 필요성도 강조해왔다. 이는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기조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일치한다.
기실 대북정책 엇박자의 본질은 한미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한미가 대북정책의 양대 기조로 삼아온 '외교'와 '억제' 사이에 있다. 외교의 핵심적인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있다.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의 핵심적인 억제력인 핵무기 프로그램의 포기가 핵심이다.
외교와 억제의 엇박자는 바로 이 지점에 있어왔다. 비핵화가 가능해지려면 외교적으로는 대북 제재 해결,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북미 수교 등의 상응조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트럼프 행정부는 변죽만 울렸고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은 게 없다.
반면 한미, 혹은 한미일의 대북 억제는 지속적이고 획기적으로 강해져왔다. 이는 북한으로 하여금 자신도 억제력, 즉 "핵무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져왔다. 즉, 외교에는 너무 인색하고 억제는 과도하게 추구해온 것이 대북정책 실패의 핵심 요인이라는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졸저 <한반도 평화, 새로운 시작을 위한 조건> 참조>
억제가 불필요하다는 취지로 하는 말이 아니다. 또다시 과유불급의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호소하기 위함이다. 이미 강력한 대북 억제력을 계속 강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그리고 대북 외교에 있어서 합리적인 상응조치에 인색해질수록 어떠한 대북정책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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