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 접어들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한반도 정세 악화와 미중 간의 전략 경쟁의 격화이다. 2018년 화려하게 시작되었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2019년 '하노이 노딜'과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악화로 인해 '일장춘몽'으로 끝날 위기에 처하고 있다.
이 와중에 미중 경쟁도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은 신중국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중국몽'을 공개적으로 천명했고, 미국은 이러한 중국을 상대로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양국간의 관계는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
미중관계를 신냉전, 혹은 냉전 2.0으로 규정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학자들은 부상하고 있는 신흥강국과 기존의 패권국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근거로, 미중간의 패권경쟁도 무력 충돌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미중 관계를 차분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경쟁과 대립의 심화는 한편으로는 위기를 잉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협력의 필요도 일깨워준다. 또 한반도 문제가 풀리지 않는 이유를 미중 관계 탓으로 돌리는 '알리바이성 인식'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매주 한 두 차례에 걸쳐 미중 관계를 진단하면서 우리의 선택을 짚어보고자 하는 까닭이다.
미중관계의 변천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건국 이후부터 현재까지 70여년간의 미중관계 흐름을 추적해보면 "국제사회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1949년 중국공산당이 국민당을 대륙에서 축출하고 중화인민공화국을 건설한 이후 미중관계는 크게 네 차례에 걸쳐 변화를 겪어왔다.
첫째는 대결의 시기이다. 1949년부터 헨리 키신저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중국 방문 직전인 1970년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죽의 장막(Bamboo Curtain)"이라는 표현이 잘 보여주듯 미국 내에서 중국은 공산주의 독재체제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어 봉쇄의 대상으로 간주되었다. 미국에 대한 중국의 지배적인 시각도 '반제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 시기에 두 나라는 한반도에서 열전(熱戰)을 치렀고, 대만 해협에서도 여러 차례 무력 충돌 위기를 겪은 바 있다. 중국의 핵무장이 본격화된 1960년대에 미국 내에선 대중 선제공격론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둘째는 냉전 시대의 전략적 동반자 시기이다. 1970년대 초반 키신저와 뒤 이은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으로 미중관계는 새로운 관계로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1989년 천안문 사태 이전까지 양국 관계는 대소 견제 및 봉쇄에 초점을 맞춘 '냉전 시대 동반자'가 되었다. 이 시기는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이 본격화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1989년 천안문 사태가 발생하자 양국 관계는 조정기에 들어갔고, 한동안 미국의 주된 관심사는 중국의 민주화와 인권 문제로 모아졌다. 또 1989년 미소 냉전 종식 선언 및 1991년 소련 해체를 거치면서 미중 관계의 접착제였던 '대소 봉쇄론'의 현실적 필요도 반감되었다.
셋째는 갈등과 협력이 공존하면서도 협력이 우세에 있었던 시기이다. 시기적으로는 1990년대 초반부터 2009년까지가 이에 해당된다. 양국 관계는 한편으로는 무역 확대와 고위급 인사들의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악재들로 인해 위기를 겪기도 했다.
1996년 대만 해협 위기, 1999년 중국의 미국 핵기술 절취 혐의 및 미국의 콕스 보고서 발표, 1999년 5월 미국의 중국 대사관 오폭 사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MD) 구축 박차 및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2001년 4월 미국 정찰기 사건 등이 겹치면서 미중관계는 악화되었다. 특히 이 즈음에 등장한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함으로써, 미중관계의 불안한 앞날을 예고하는 듯 했다.
그러나 2001년 발생한 9.11 테러 이후 미중관계는 협력 기조로 돌아섰다. 미국으로서는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협력이 필요했고, 중국 역시 '테러와의 전쟁'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자국 내의 분리주의 움직임을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다루고 싶어했다.
또한 부시 행정부 1기 때에는 대북정책을 둘러싼 미중간의 갈등이 컸지만, 부시 행정부 2기, 특히 2006-2007년에는 6자회담을 중심으로 양국간의 대북정책 협력이 비교적 원활하게 이뤄졌다.
끝으로 미중 전략경쟁 시대이다. 시기적으로는 2010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임기 첫해인 2009년에 중국을 봉쇄하지 않겠다며 협력관계를 추진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0년 들어서 양국 관계는 악화되기 시작했고 2011년부터는 전략적 경쟁이 확연해졌다.
이와 관련해 2011년 11월에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21세기의 지정학이 아시아 태평양에서 결정될 것"며, "미국은 반드시 그 현장에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은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아시아로의 회귀(혹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이를 자신에 대한 봉쇄전략으로 간주하고 대미 경계심을 더욱 강화해나갔다.
양국간의 전략 경쟁은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 더욱 격화되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확대해 '인도-태평양 전략'을 채택했고 트럼프 흔적 지우기에 바쁜 바이든 행정부는 유독 이 전략만은 계승·강화하고 있다. 특히 조 바이든 대통령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중국이 미국을 앞서는 꼴은 못 보겠다'는 식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 쇠퇴와 중국의 급부상의 교차
1991년 소련이 해체된 후, 미국은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려왔다.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공고해 보였고, 여러 학자들은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라는 말로 "단극체제"를 설명하곤 했었다. 그러나 21세기로 접어든 이후 미국의 패권적 지위는 위협받고 있다.
중동에서의 장기간의 전쟁 및 2008년 금융위기, 오바마 시기에 더욱 심해진 미국 정치의 양극화와 무능함,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표방한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과 일방주의의 극성 등을 거치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커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이 돌아왔다"며 리더십의 재건을 선언했지만, 그 결과는 미궁 속에 있다.
반면 중국은 급격히 부상하여 2010년 일본의 GDP를 능가해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그 이후 중국과 일본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더욱 벌어져 2020년에는 3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미중간의 경제력 격차도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2008년 중국 GDP는 미국의 31%였지만, 2020년에는 71%에 달했다.
이 와중에 터진 코로나19 팬데믹은 미중간의 경쟁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발원지인 중국은 사태 초기에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중국의 몰락"을 예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었다. 그러나 중국은 빠르게 사태를 수습하면서 다시 경제성장의 페달을 밟고 있다.
반면 사태 초기 안정세를 보였던 미국에서 2020년 2월 하순부터 확진자와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은 세계 최대의 피해국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미중 사이의 경제력 격차는 빠르게 좁혀져왔고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도 있지만, 군사력에 있어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할 가능성은 적어도 2050년 이내에는 불가능하다. 중국의 경제적 성장이 군사적 굴기를 동반한 것은 분명하다.
중국은 1990년 이래로 연평균 10% 가량 국방비를 증액해 200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군사비 지출 국가가 되었다. 군비확장은 실질적인 군사력의 증강으로도 이어져, 2020년 현재 중국은 미국과 러시아의 뒤를 잇는 세계 3번째의 군사강국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군사비는 여전히 미국 군사비의 약 30% 수준이고, 이에 더해 군사비 누계와 첨단 군사기술 수준, 그리고 광범위한 동맹 네트워크의 여부 등을 종합해볼 때, 미국의 군사력은 앞으로 상당 기간 동안 중국을 압도하게 될 것이다. 다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있어서 양국 군사력의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따라 미중관계는 기존의 지배국(dominant power)인 미국에 대한 신흥 부상국(rising power) 중국의 도전, 즉 패권경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지배국과 신흥 부상국 간의 패권경쟁은 기존 국제체제 및 질서에 대한 충격을 동반해, 필연적으로 절대 다수의 국가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에 따라 많은 나라들의 정책결정자들뿐만 아니라 언론과 전문가들도 미중 관계 및 국제질서의 변동에 대해 다양한 분석과 대응책을 내놓고 있다.
* 다음에 이어질 글 : 미중,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빠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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