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무실에 퍼지는 전화벨 소리는 그날따라 요란했다. 스마트폰 화면에 이전 직장 상사의 이름이 떴다.
'김새미가 누구더라…' 선배의 전화를 받은 강희민(가명) 하나고등학교 교사는 잠시 생각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잘 봐달라는 전화였다. 학생 1인당 연간 학비(2019년 기준)가 1500만 원에 달해, '귀족학교'로 통하는 하나고에서 일하는 동안 이런 전화를 수없이 받았다. 강 교사는 형식적으로 "알겠다"고 대답한 후 전화를 끊었다. 2015년의 일이다.
그 상사가 며칠 후 또 전화를 했다. 그는 "김새미 학생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강 교사도 다시 "알겠다"고 답했다.
상대는 집요했다. 그는 며칠 후 다시 강 교사에게 전화해 따지듯이 말했다.
같은 내용의 전화를 세 번씩이나 하고, ‘김새미를 만났는지’ 확인까지 하는 상사의 태도에 이번엔 강 교사가 물었다.
김새미는 김재호 <동아일보> 사장 딸이자, 이한동 전 국무총리 외손녀였다. 그제서야 강희민은 동료 교사들 사이에서 돌던 소문과, '2014년 8월 전·편입학 전형'을 떠올랐다.
말도 많고 탈은 더 많아, 훗날 교육청 고발과 검찰 수사에 재수사까지 진행된 그 입시. 논란의 주인공이 바로 김재호 <동아> 사장 딸 김새미다.
당시 하나고 전·편입학 과정은 1차는 서류전형, 2차는 심층면접로 진행됐다. 총점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내신(교과영역) 50점, 비교과 10점, 서류 20점이 1차 서류전형 평가 기준이었다. 2차 심층면접은 면접 15점과 소전형위원회 5점으로 평가 기준이 나눠졌다.
당시 편입학 전형에는 하나고 입학홍보부서에서 홍보부장으로 근무하던 이OO 교사와 기획 담당 조OO 교사가 1, 2차 전형 평가자로 참여했다.
김새미는 서류전형에서 76.8점을 맞아 1차 전형을 합격했다. 김 씨는 내신 50점 만점 중 49점을 받았다.
또다른 지원자 박순희(가명)도 서류전형에서 72.95점을 받고 1차 전형에 붙었다. 박 씨의 내신은 46점이었다.
정량평가인 내신에서 김새미가 박순희를 3점 차이로 앞서나간 상황. 하지만 면접 전형에 올라가자, 내신에 대한 이 둘의 평가가 다르게 이뤄졌다.
김새미는 면접 중 전문성 영역에서 두 면접관 모두에게 B를 받았다. 면접관 이 부장교사는 평가 메모에 "내신 활동 무난"이라고 기입했다.
박순희는 면접 중 전문성 영역에서 두 면접 모두에게 A를 받았다. 이 부장교사는 평가 메모에 "내신 위주이지만 매우 우수하다"고 적었다.
정리하자면, 면접에서 "내신활동 무난"을 이유로 B를 받은 김새미가 내신에선 거의 최고점에 가까운 49점을 받은 반면, "내신이 매우 우수하다"면서 면접에서 A를 받은 박순희는 막상 내신에서 46점을 받았다.
뭔가 이상하다. 김새미는 내신에서 최고점을 받았는데, 면접관은 "내신활동 무난"이라 적었다. 김새미는 2017년 2월, 하나고 졸업할 당시 이런 회고의 글을 썻다.
김새미 스스로도 고등학교 1학기 내신이 다른 친구들에 비해 좋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그는 이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김 씨가 감사 인사를 하며 지목한 조OO 교사. '하나고 부정 편입학 의혹' 핵심은 바로 조 교사의 <면접 평가표>다.
조 교사는 면접 전형 당시 김새미에게 총점 12점을 부여했다. 그런데 돌연 이 점수가 14점으로 상향 조정되어 전산에 입력됐다.
면접 점수가 상향 조정된 지원자 김새미는 2014년 8월 하나고 전·편입학 전형에서 최종합격했다. 그는 일반전형에서 유일한 최종 합격자다.
김새미의 면접 점수는 왜 상향 조정됐을까? 하나고는 서울시교육청에 이런 취지로 해명했다.
하나고등학교는 그 근거로 ‘점수 환산표‘를 제시했다. 원래 평가 점수 9점 이하는 11점으로, 10점은 12점으로, 11점~12점은 13점으로, 13점은 14점으로, 14~15점은 15점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하나고등학교의 주장은 사실일까? <셜록>은 김새미와 동일한 면접 점수를 받은 지원자들의 전산 기록을 살폈다.
김 씨와 동일하게 면접 점수를 12점으로 받았던 지원자 K는 전산에선 13점으로 환산됐다. 면접 점수 12점을 받았던 또 다른 지원자 P 역시 13점으로 바꼈다.
오직 딱 한 명, 김새미의 점수만 12점에서 14점으로 상향 조정됐다. 게다가 이는 '점수 환산표' 기준에도 초과한 점수다.
김새미 면접 점수 상향 조정, 단순 실수일까?
당시 하나고 이사장은 하나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김승유가 이사장이었다. 김승유는 고려대를 운영하는 고려중앙학원 이사를 2012년 5월 1일부터 겸직했다. 김새미 부친 김재호 <동아> 사장이 바로 고려중앙학원 이사장이다.
2015년, 김새미 부정 편입학 의혹과 함께 하나고 입시비리 논란이 일었다. 서울시교육청은 하나고 전편입학전형 등에 대한 특별 감사를 진행했다.
서울시교육청은 "하나고의 전편입학전형 성적 관리가 부당하게 처리되었다"는 감사 결과를 같은 해 11월 발표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이태준 당시 하나고 교장에게 경징계(감봉)를, 정철화 당시 하나고 교감에게 중징계(파면) 등의 조치를 권고했다.
동시에 서울시교육청은 감사 내용을 근거로 김승유 이사장, 이태준 교장, 정철화 교감 등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우연인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인지, 2016년 11월 1일 하나고 이사장은 김승유에서 검찰총장 출신 김각영으로 바뀐다. 김각영은 제32대 검찰총장을 지낸 인물이다. 김 전 검찰총장은 김승유 전 이사장과 고려대학교 동문이자, 하나금융그룹 사외이사 출신이다.
서부지검은 얼마 뒤인 2016년 11월 30일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하나고 불법 편입학 의혹‘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결정했다. 검찰의 논리는 이렇다.
검찰의 불기소로 '동아일보 사장 딸의 편입학 의혹'은 가라앉았다.
반전은 2019년 벌어진다. 개인정보를 이유로 비공개됐던 하나고 '서류 및 면접 평가표' 원본이 강희민 교사와 국회의 노력으로 공개됐다. 거기엔 이상한 필체가, 면접 평가위원이 아닌 제3, 제4의 인물이 쓴 글자가 담겨 있었다.
면접 평가위원은 이OO 교사와 조OO 교사 단 둘인데, 평가표에서는 총 4명의 글씨가 발견됐다. 이로써 전·편입생 평가에 제3자의 개입 가능성도 살펴봐야하는 상황이 됐다.
검찰이 부실 수사로 못 봤거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만 유독 검찰 눈에만 안 보이던 새 증거로 등장한 셈이다.
검찰은 2016년 하나고 수사 때 왜 이걸 못 봤을까? 강희민은 검찰의 수사 의지를 지적했다.
전교조는 하나고의 '서류 및 면접 평가표' 등을 입수해 김승유 전 하나고 이사장, 김재호 <동아> 사장, 이태준 전 교장, 정철화 전 교감을 2019년 10월 24일 검찰에 재고발했다. 검찰 수사는 1년이 훨씬 지난 2021년 4월 현재까지도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5년 당시 서울시교육청의 감사와 검찰 수사까지 진행됐음에도 또 다른 필체가 있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는 건 부실 감사와 수사를 했다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라며 "교육청의 적극적인 감사와 검찰의 신속한 수사만이 하나고에 제기되고 있는 의혹을 명명백백히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기자는 반론을 듣기 위해 김승유 당시 하나고 이사장의 자택을 지난 3월 24일 찾아갔다. 하지만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김 전 이사장에게 전화와 문자를 남겼지만, 그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김새미의 서류와 면접을 담당했던 이 부장교사와 조 교사에게 수차례 전화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을 수 없었다.
기자가 "당시 면접 현장에 이 부장, 조 교사 외에 또다른 평가자가 있었는지", "동아일보 사장 딸의 면접 점수만 왜 14점으로 상향 조정됐는지", "면접위원으로서 김 씨의 면접 점수가 상향조작된 의혹에 책임을 느끼는지" 등을 문자로 물었지만, 이 부장교사와 조 교사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태준 전 교장, 정철화 전 교감, 조계성 현 하나고 교장 모두 <셜록>의 인터뷰를 거절했다.
김각영 하나고 이사장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는 학교를 대표해 해명을 요청하는 기자에게 이렇게 답하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동아>는 김재호 사장을 대신해 지난 3월 22일 서면으로 답변을 보내왔다. <동아>는 "김재호 사장이 하나고 편입 과정에 영향을 미친 사실이 전혀 없고 당락이 뒤바뀌는 부정입학이 없었다는 사실은 (2016년) 당시 검찰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면서 "김 사장은 이 사안 관련 어떤 청탁도 한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작년 공채를 통해 <동아일보>에 입사한 김새미에게도 지난 지난 3월 15일, 29일 전화를 했다.
김새미의 말대로, 서울시교육청은 감사만 하고 하나고 의혹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닐까?
4화에선 서울시교육청의 부실감사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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