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야당의 압도적 승리로 끝났다. 현 정부를 이끌어가는 집권 세력과 집권 여당에 대해 민심이 강력한 경고음을 냈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41.1% 득표율) 서울 득표율은 크게 3자대결(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가운데에서도 42.34%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번 재보선에서 박영선 후보가 받은 표는 양자 구도에서 39.18%. 핵심 지지층 일부가 집권여당을 떠났다는 얘기다. 여기에 문 대통령 집권 초반 ‘반 자유한국당’블록까지 아우르며 지지율 70%를 넘나들던 시절을 보정해 넣으면 이번 선거에서 집권 여당이 얻은 득표율은 초라한 수치다. 물론 정치적 요인(박원순 전 시장의 성비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상 등)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지만, 지지층과 기대층의 사회경제 개혁 요구를 외면했거나 갈팡질팡 해 왔던 현 정부의 행태에도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촛불 정부를 자임한 현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성적표는 초라한 수준이다. 지난 2018년 7월 문재인 정부 2년차를 맞아 사회경제개혁을 위한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개혁 과정의 지지부진함을 비판하며 선언문을 낸 적이 있다. 그 후 2년 반 이상이 지났다. 지금은 어떨까. 문재인 정부가 놓인 현 상황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다시 촛불이 묻는다>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책 소개 기사 바로가기 : 문재인정부는 양극화, 재벌개혁, 노동문제 등 '촛불'의 약속을 지켰나?)
2018년 7월은 문재인 정부 집권 2년차였다. 사회 개혁 정책이 전환점을 맞았던 시점으로 평가할 만 하다. 당시 문재인 정부 핵심 경제 정책인 소득주도성장의 상징이었던 홍장표 경제수석은 물러났고, 노동 시간 단축 등 사회 개혁 의제 깊숙이 재계(경총)가 침투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당시 국회 내 민주당 의석수의 상대적 열세(국회 선진화법으로 인한)를 감안하더라도, 정부가 직접 할 수 있는 일(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문제 등)을 등한시한 것을 넘어, 문재인 대통령 공약집에 담겨 있던 진보적 의제들은 속속 후퇴하기 시작했다.
<다시 촛불이 묻는다>는 수치와 실증을 통해 문재인 정부 4년차 사회경제 개혁이 ‘거의 이뤄지지 못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일부 의제에선 약간의 성과가 확인됐지만, 많은 의제에서 제자리걸음을 했거나, 심지어 ‘후퇴’한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코로나19 감염병 확산 상황이라는 악조건이 있었지만, 그 부분을 보정한다고 해도 촛불 정부 출범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나 시대적 요구에 현저히 부응하지 못했다는 게 대체적인 결론이다.
과연 문재인 정부의 사회 개혁은 왜 실패했는가. 민심은 왜 돌아섰는가. 현 정부 정책 결정권자들이 꼭 살펴야 할 화두다.
촛불 정부를 자임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 5년차에 접어드는 시점에, 반드시 짚어야 할 문제들을 논의하는 자리를 위해 <프레시안>과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좌담회를 열었다. <프레시안> 박세열 편집국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에는 <다시 촛불이 묻는다> 기획에 참여한 이병천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조돈문 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가 함께 했다. 좌담은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 전인 4월 2일 <프레시안>에서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준수하며 진행됐다. 두편에 나눠서 싣는다.편집자
"권력 기강 해이, 자기규율 실패...개혁 정부의 빛을 잃게 했다"
프레시안 : <다시 촛불이 묻는다>는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개혁 실패에 대해 돌아보는 책으로 이 시점에서 출간된 것은 매우 의미가 있다. 문재인 정부 개혁 실패는 여러 지식인들이 지적했다. 그래서 이번 좌담회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개혁이 과연 왜 실패했는지 원인을 짚어보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먼저 이 책을 기획한 이병천 교수가 개혁 실패와 관련된 원인을 짚어주셨으면 한다.
이병천 : 여권의 실정으로 국민의 힘 세력이 거의 완벽하게 부활한 상황이다. 진보세력은 주변화되어 있다. 마음이 쓰리고 국민하기 참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문재인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이 왜 실패했냐는 물음은 매우 간명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물음이다. 다각도로 파헤쳐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이런 말을 했다. “공정의 기대가 무너졌다.” 취임사에서 했던 말인데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세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번째 실패 요소는 권력 기강이 해이해지고 자기규율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LH 사태로 정권심판 민심에 불을 지른 공권력의 타락, 부패 문제다. 촛불항쟁과 박근혜탄핵으로 등장한 정부에게 부패 문제는 촛불정부 자격의 마지노선과 같은 것이다. 국가권력의 정상화에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요소인데 이게 굉장히 크게 무너졌다. 여권 인사들의 위선적 행태까지 보게 됐다. 박근혜 국정농단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지만, 공권력의 타락과 부패, 거기에 투기가 결합됐다는 건 치명적인 부분이다. 이 정부에 대한 기본적 신뢰가 크게 무너졌다.
두 번째는 정부의 준비 부족을 들 수 있다. 좋게 말해서 준비 부족이고 다르게 말하면 안이한 판단과 대처다. 무엇보다 부동산 문제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웠다. 잘못 끼운 첫단추가 끝까지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것이 ‘개혁 정부’라는 빛을 잃게 한 중대 요인이다. 기득권을 지켜주면서 현상유지하고 계속 뒷북만 치는 ‘관리 정부’로 흘러 갔다.
세 번째가 이번 좌담회에서도 우리가 많이 이야기하게 될 부분인데 정책상 약속이 깨졌다. ‘소득주도성장’, ‘사람중심경제’는 매우 의미있는 전환적 정책기조이자 새로운 정책패러다임이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걸 예상밖으로 쉽게 포기했다.
공정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다고 할 때 짚어야 할 것은 이상 세 가지다. 그리하여 ‘중도 민주당’, ‘중도성향 정부’가 점점 보수화되는 기득권 정당, 기성 관리정부로 변질되어 간 것이 눈에 뚜렷하게 보인다.
프레시안 : 정책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개혁 컨트롤타워의 문제, 즉 기구와 인사에 관한 이야기를 짚고 시작해야 한다고 이병천 교수가 지적했는데 그 부분을 살펴보자.
이병천 :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새 정부가 집권초기에 권력 새판짜기를 할때의 문제다. 쉽게 말해 너무 욕심이 많았다고 할까, 오만했다고 할까. 내가 보기에 이 정부는 ‘촛불 연합정부’의 성격을 띄어야 했다. 탄핵당한 세력을 결정적으로 무너뜨리도록 개혁세력들을 ‘뉴딜 연합’과 같은 형태로 폭넓게 묶는 모습으로 갈 수 있었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권력의 확장성을 확보하는 개혁 헤게모니 연합으로 갈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끼리끼리 판짜기’의 모습 비슷했다. 판짜기를 처음부터 너무 좁게, 옹색하게 가져갔다. 이를테면 당시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를 노동부장관으로 발탁해 범개혁진보 연합으로 가자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자기들끼리의 권력 나누기로 간 측면이 있다. 나중에는 선거제 개혁 취지를 뒤짚고 위성 정당까지 만들지 않았나.
또 하나 꼭 지적하고 싶은 것은 개혁을 총괄하는 사령탑, 즉 컨트롤타워 부분이다. 개혁정부의 컨트롤타워가 기획재정부에 주도권이 넘어갔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짚고 싶다. 기재부가 주도하고 청와대가 끌려가는 모양새가 됐다. 결국 청와대 개혁 정책 컨트롤타워는 보수적 관료집단인 기획재정부의 힘을 극복하지 못했다. 사실 한국의 기재부는 엄청난 조직이다. 경제정책 총괄기구로서 권력도 막강하고, 총론 각론 모두 매우 밝다. 청와대 개혁 컨트롤타워는 그런 기재부를 적절히 통제할 수 있어야 했는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관련하여 인물 문제를 짚을 수밖에 없는데, 청와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정책 컨트롤타워는 (청와대 정책실장을 맡았던) 장하성-김수현-김상조로 이어졌다. 명망있는 사람들이고 시민운동을 통해 본인 영역에서 훌륭한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지만 이들은 사실 거시경제 전반의 작동과 정책구사 방식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아니라고 본다. 장하성 전 실장은 원래 경영학을 하는 사람 아닌가. 김수현 전 실장은 부동산과 같은 분야는 꿰고 있겠지만 거시경제를 잘 아는 인물이 아니다. 김상조 전 실장도 공정거래위원장은 자신의 전문분야이지만 거시경제와 경제정책을 총괄하기엔 역량이 부족하다. 따라서 새 정부 개혁 총괄사령탑으로서 인물들이 제대로 짜여졌느냐 하는 부분을 지적할 수 있다. 이전에는 권위주의 정부든 민주 정부든, 예컨대 김종인씨처럼 다방면을 아우르며 청와대 사령탑 역할을 한 대표적 인물들이 있다. 이 정부에선 과연 그런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었나. 그렇기 때문에 청와대가 개혁 사령탑 역할은 고사하고 기재부의 ‘이중대’ 정도의 수준에서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김상조씨가 낙마한 이후 청와대 경제라인은 관료 출신 일색으로 채워 졌다.
프레시안 : 집권 초에 범개혁세력을 보듬고 다양한 인물들을 폭넓게 활용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결국 개혁 블록을 만드는 데 실패하고 관료를 통제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안이한 판단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조돈문 : 저희가 지식인선언네트워크 이름으로 선언문을 냈던 이유가 있다. 이 정부가 촛불정부를 자임하면서 출범했는데 촛불정부라면 당연히 해야 할 사회경제적 개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을 위해서는 ‘세력’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2016~2017년 촛불항쟁을 함께 했던 사회세력을 규합하고 그걸 정권의 정책 추진 동력으로 만들었어야 하는데, 그럴 계획 자체가 없었는지 정치적인 관료들, 자기들 정파 중심으로 정권을 만들어갔다. 폭넓은 사회세력 규합에 실패한 것이다.
이를테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과거 정부들의 ‘이윤주도성장’과 완전히 다른 방향의 좋은 정책이었다. 그렇다면 먼저 마스터플랜이 있어야 했다. 전문성과 팀워크를 갖춰 그걸 설계하는 그룹이 있어야 했지만,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 놓은 개별 정책들을 보면, 굉장히 좋은, 파격적인 것들이 많다. 그런데 이걸 제대로 실행하기 위한 것 보다는, 대선 공약에 낼 좋은 말들, 미사여구들을 모아 홍보 카피를 뽑듯이 해서 만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제대로 된 플랜이 보이지 않았다.
마스터플랜이 있었다면, 개혁 추진과정에서 일부 분야에서 다소 후퇴하더라도 모양을 추스르며 전제적 틀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텐데, 이 정부는 너무나 쉽게 포기했다. 사회 세력 규합에 실패하고 개혁적 전문가 그룹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전강수 : 이 정부의 정책 담당자들이 결과적으로 무능했다는 게 드러났다고 본다. 정권 초반에 분위기를 돌아보면, 마치 ‘사회·경제 개혁은 우리가 제일 잘 안다’는 생각이 매우 강했던 것 같다.
프레시안 : 일종의 독선적인 면모가 보였던 것인가?
전강수 : 그렇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에서 정책 만드는 사람들과 지식인들 간의 교류가 활발했다. 중요한 주제에 대해서는 여러 방면의 전문가들을 모아서 토론하고 그 결과를 정책으로 빚어내는 과정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적막하다’는 말까지 돌았다.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다는 거다. 지식인들과의 소통이 없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그럴 때 느꼈던 게 ‘우리들만큼 이론과 실전에 강한 사람들이 없다’는 식의 오만함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이 정부 초기 청와대를 지배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문재인 정부가 공약으로 내놓았던 개혁을 끈질기게 추진할 생각이었다면, 초기 정책 컨트롤타워 인사를 그렇게 하면 안 됐다. ‘누구를 세워놓아도 밑에서 얼마든지 보완해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한 것처럼 보인다. 지나친 자신감이고 오만이다.
지식인선언네트워크가 2018년 7월 지식인 선언을 발표했을 때, 청와대 쪽에서 난리가 났다고 한다. 이 정부 들어선 후 (같은 편이라 여겼던) 지식인들의 이런 비판이 사실상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정권 쪽에서 ‘만나자, 이야기를 해보자’는 요청들이 들어오더라. 그런데 이미 당시 청와대 인물 지형은 ‘개혁 추진형’ 인물들이 3선으로 밀려나 있다는 게 느껴졌다. 1선, 2선에는 부드럽고, 대통령 말 거스르지 않는 유형의 사람들이 배치돼 있었다.
함께 했던 지식인들이 정책컨트롤타워를 교체해야 한다는 건의를 한 걸로 안다. 그런데 그때까지도 정부는 기세등등했다. 그 많은 지식인들이 한목소리로 지적할 정도로 비판하면 정책을 수정하든지 경청하는 움직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온 것 아닌가.
이병천 : 한 두가지 보태면, 이 정부는 촛불항쟁의 힘으로 출현한 정부이면서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다는 측면도 있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때 중요한 개혁적 인사들이 이 정부에서는 거의 발을 붙이지 못한 것 같다. 예컨대 이정우 씨(노무현 정부 초대 청와대 정책실장) 같은 경우 무대에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가 관료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스타일이라는 평도 들은 바 있다.
전강수 : 4년간 대통령을 지켜보며 성품을 봤을 때 굉장히 착하다는 느낌이다. 착하다는 건 뒤집어 얘기하면 남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본인이 싫은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일 수 있다. 대통령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았다. 정권이 성공하려면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 사람들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개혁 블록 구축 실패, 그리고 지나친 '특정 정파' 인사...첫 단추를 잘 못 뀄다
프레시안 : 전반적으로 인사의 지나친 ‘정파성’, ‘비전문성’에 대한 지적에 공감이 있는 것 같다. 또한 ‘개혁 블록’ 구축에 실패한 부분도 정권 초반 뼈아픈 부분인 것 같다. 슬슬 정책 논의로 들어가보자. 문재인 정부 초반 가장 상징적이고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인천공항공사를 찾아간 것이었다. 당시에 의지가 높다는 인상을 줬지만, 현재 비정규직 문제는 공공분야에서 수치상의 일부 성과를 제외하고, 사회적 개혁 의제로서는 사실상 한발자국도 더 나가지 못했다.
조돈문 : 나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는 진정성이 있었다고 본다.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용으로 하는 ‘세 바퀴 경제’를 경제정책의 기조로 내걸고, 특히 소득주도성장을 중요하게 강조했다. 당시에는 진정성이 있었다고 보지만, 그게 얼마나 어렵고 무서운지 잘 몰랐던 것 같다. 과소평가를 한 것 아닌가. 소득주도성장 전략이라는 것은 전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노동소득의 비중을 높이고 노동소득분배율을 높이자는 것이다. 한국 경제성장정책은 해방이후부터 줄곧 이윤주도성장 중심이었다. 재벌 대기업의 이윤을 우선으로 놓고 낙수효과를 추구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한편으로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는 문제,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의 이윤율을 높이는 문제, 두 가지 과제를 중심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둘 다 실패했다. 중소기업의 이윤 상승이 어려워 진 것은 노동계 탓으로 돌렸고, 최저임금 인상이 어렵게 된 것은 중소기업 핑계를 댔다.
최저임금 인상률을 보면 첫해에 16.4%, 그 다음해 10.9% 이렇게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했다. 그만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이행하려고 한 것으로 평가한다. 최저임금 인상을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핵심으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후엔 2.9%, 1.5% 등 사상 최저수준 인상률을 기록했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어긋난 핵심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본다. 제가 일자리위원회 첫 해 회의 때부터 이런 이야기를 했다. “최저임금인상, 비정규직-정규직 전환, 노동시간 단축은 당연히 해야 한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긍정적인 효과는 일정 시간이 경과해야, 즉 중장기적으로 나타난다. 반면 당장 중소·영세기업은 인건비 부담이 문제가 된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으로 최저임금 인상,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되, 중소·영세기업 이윤을 높이도록 하는 정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 이건 경제학자뿐만 아니라,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뻔한 이치다.
그때 문재인 정부의 (당시) 홍장표 경제수석,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공정거래, 중소기업 이윤율 문제를 잘 알고 있었다. 한국은 다른 OECD 국가와 비교해도 중소기업 이윤율이 대기업 이윤율과 비교했을 때 격차가 엄청 크다. 이걸 정상화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선 두 사람의 역할이 중요했다.
중소기업 이윤율을 올리기 위해 해야 할 것은 분명하다. 원하청 관계에서 납품단가 후려치기를 규제하는 것이다. 이건 홍장표 수석이 전문가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기술 개발하면 대기업에게 뺏기는 문제는 공정거래질서와 관련된 것인데, 홍장표 수석뿐 아니라 김상조 위원장도 전문가다. 그리고 상가임대차보호도 중요했다. 이런 걸 해결해야 하는데 그걸 안 했다.
당시 경제부총리가 김동연 기재부장관이었다. 김 전 장관이 ‘최저임금 이렇게 하면(대폭 올리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인건비 부담 때문에 중소기업 다 죽는다’는 취지의 얘기를 들고 나왔다. 중소기업 이윤율을 높이지 못한 것은 재정경제 정책, 산업경제 정책, 공정거래질서 확립을 제대로 못한 경제 정책의 실패다. 그런데 경제 정책의 실패를 왜 최저임금인상 탓으로 돌리나. 경제 정책이 실패한 것은 경제팀이 무능한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홍장표, 김상조를 포함 장하성(초대 정책실장) 등 경제 정책을 만든 팀이 책임져야 했다.
결국 소득주도성장은 1년 만에 폐기됐다. 홍장표 수석도 결국 내보냈다. 그것이 사실 우리가 지식인 선언을 하게 된 계기였다.
저는 이렇게 평가한다. 정부 초기에는 이 정부가 진정성은 있었다. 그런데 경제 정책 실패가 먼저 왔고, 그것이 소득주도성장의 발목을 잡아 결국 폐기하게 만든 게 아닌가 싶다. 그 후로 기재부 관료들의 페이스대로 흘러갔다.
프레시안 : 결국 공정 경제가 ‘말’뿐이 됐고, 그게 소득주도성장 등 개혁적 정책의 발목을 잡았다는 것 같다. 경제팀 구성의 실패와 경제 정책 실패로 재계의 목소리를 반영한 보수 경제 관료들(기재부)의 승리로 흘러간 것 같다.
반드시 가야할 길 소득주도성장, 왜 중단해버렸을까?
이병천 : 좀 더 보태 보겠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의 실패는 이야기를 가려서 잘 해야하는 부분이 있다. 애초에 이 정책 자체가 문제라는 보수 세력의 지적에 휩쓸려 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처음 문재인정부가 이 정책을 들고 나왔을 때 보수 세력은 ‘경제학 족보에도 없다’, ‘무식하다’, ‘실패는 당연하다’는 식으로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의 개혁 실패를 보는 눈은 두 갈래(진보에서 보는 시각, 보수에서 보는 시각)인데, 소득주도성장 전략은 주류 시장경제학 교과서엔 없더라도 포스트 케인지언적 흐름 속에 있는 중요한 개혁정책의 흐름이고, 상당히 ‘족보’가 있는 이론이다. 케인즈적 사고를 좀 더 전향적으로 계승해 끌고 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촛불민심을 수용한 부분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낙수효과 경제학과 다를 뿐더러 OECD의 포용적 성장과도 다른 것이다. 포용적 성장은 복지국가의 전성기 흐름이 무너지고나서 등장한 제3의 길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것이다. 제3의 길이란 건 경제적 자유화, 노동의 유연화 방향위에서, 거기서 생기는 문제를 사후적으로 생산적 복지를 통해 수습하려는 방식이다. 포용적 성장이란 이 개념을 넘어서지 않는다.
그러나 소득주도성장은 이와 다르다. 기본적으로 재분배 이전에 시장소득의 불평등 자체를 개선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한다. 이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로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견제력을 부여하고 긍정적 타협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를 통해 거시경제 선순환과 분수효과가, 즉 모두를 위한 윈윈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이다. 포스트케인지언은 비용의 역설, 즉 미시적으로는 임금 인상(비용변수)은 기업이 손해지만 그게 안되면 거시경제가 잘 안 돌아가면서 불평등 및 수요침체 함정에 빠지는 지점을 겨냥한다. 불평등확대를 통해서 성장으로 가면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게 낙수효과 패러다임이라면, 거꾸로 불평등을 개선해야 거시 경제 선순환과 분수효과가 일어나게 된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이다. 한국 역대 경제 정책 패러다임에서 획기적 전환이라고 볼 수 있다. 제대로만 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걸 잘 풀지 못했다. 당연히 보수 언론과 재벌 대기업이 난리칠 것을 알고 단단히 준비를 잘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한 것이다.
프레시안 :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이병천 : 실패했다고 말할 때도 나누어서 접근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소득주도성장 평가보고서가 문재인 정부 3년인 2020년 8월에 나온 게 있다. 여기에서 홍장표 전 수석이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으나 동시에 갈 길이 멀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나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본다. 소득주도성장 전략이 전적으로 허무한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다. 우리가 만든 책 <다시 촛불이 묻는다>에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분석한 황선웅 부경대 경제학부 교수와 최저임금 인상 문제를 분석한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현 소득주소성장 특위 위원장)의 글을 보면 적어도 성과로서 고용률의 상승, 노동소득분배율의 증가, 임금 불평등과 저임금계층 축소, 가계 가처분소득 불평등 감소와 같은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쪽 연구에서 보더라도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는 합의가 있다.
정책효과가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데, 상당히 미약하다. 일관되게 가기에 불안정한 요소가 매우 많다. 가장 중요한 문제로는 민간부문 비정규직이 확대됐다. 가계시장소득 불평등 축소 규모가 미약했다. 이에 따라 민간 소비가 여전히 침체됐다. 이게 돼야 소득주도 성장체제가 작동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그런 모양이 됐다.
실패 요인으로 앞서 조돈문교수 지적대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문제, 공정경제 개혁 및 산업생태계 혁신의 답보문제가 대표적인데 그걸 풀지 못했다. 또 하나 꼭 지적할 게 있는데, 재정확대 문제다. 특히 1년차 굉장히 중요할 때 과감한 재정확대책을 펼쳤어야 하는데 기획재정부가 재정 정책을 굉장히 긴축적으로 운영했고 청와대도 놓쳤다. 이후 코로나19 위기로 다소 재정을 확대했지만 미국 등 다른 나라에 비해서는 형편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일정 성과가 있었다는 건 중요한 부분이다. 이걸 빼면 시장 보수 세력의 평가와 혼선이 생긴다. 원래 추구하고 기대했던 바가 있었는데, 중도에 좌초했다. 우리가 ‘정책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다.
프레시안 : 소득주도성장과 뉴딜정책은 한 패키지다. 그런데 분절돼 시행된 것 같다. 지금 뉴딜 정책이라고 하는 부분을 보면, 기재부 주도로 교묘하게 과거로 회귀한 것 같다. 성장 패러다임, 규제 완화, 의료 산업화 등의 패러다임이 잠식해 버린 것 같다.
이병천 : 말씀대로다. 이 정부의 기조적 정책 패러다임인 소득주도성장이 1년 만에 사실상 끊겼다. 그 뒤로 3년차 2020년 경제정책 방향을 보면 규제 완화와 투자 활성화가 확연히 기본기조로 나타난다.
한국판 뉴딜의 성격과 지향은 소득주도성장의 폐기와 순조롭게 연결이 된다. 원판 루즈벨트식 뉴딜에는 기본적으로 구조개혁이라는 시대정신이 들어 있다. 그런데 한국판 뉴딜에는 그게 희미하다.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가 무너진 이후에 등장했기 때문에 자연스레 한국판 뉴딜에는 뉴딜다운 진정한 개혁실질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구조개혁없는 한국판 뉴딜의 모양새가 역력하다. 1-2개월 사이에 5년짜리 계획이 만들어졌다. 정권이 바뀌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1-2개월 사이에 160조 원짜리 투자, 190만개 일자리 창출, 이런 계획이 급조되어 만들어졌다는 게 우려스럽다. 이런 게 가능한 이유는 기획재정부의 대단한 능력 덕분이다. 정책 기조가 과거로 회귀하고 주도권이 기재부로 확실히 넘어간 상황에서 익숙한 성장지향 계획이 나타난 것이다.
조돈문 : 이 정권이 출범하며 촛불정부를 자임했을 때 그것 자체가 ‘사기’는 아니었다고 본다. 해 보려고 한 것 같다. 소득주도성장이 폐기된 건 1년 정도 후다. 우리 선언문이 나왔던 그 시점이다. 그때 홍장표 경제수석이 사실상 경질됐다. 노동 문제에서 보면 소득주도성장 전략 중 중요한 축 중 하나인 노동시간 단축이 2018년 3월 주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로 법제화되었다. 우리가 성명서를 준비하던 때 일이었는데, 7월 1일 법시행을 앞두고, 경총이 6월 19일 고용노동부를 방문하고 장관을 만나 ‘노동시간 단축하면 경제에 부정적 영향 미친다’라며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요구했다. 그 다음날 바로 고위당정청회의가 열린다. 경총의 기조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나서 경제부총리도 그렇고, 민주당 원내대표도 그렇고, 이낙연 총리까지 나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를 약속한다. 실제로 그렇게 되면서 노동시간단축이 의미를 잃어버렸다.
이 시점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로서 소득주도성장과 같은 전략, 새 패러다임의 경제·사회정책을 펼치려면 기득권 세력을 꾸준히 견제했어야 했다. 촛불항쟁을 주도한 사회세력과 함께 새로운 경제사회 정책 패러다임을 끌고가야 했는데, 갑자기 적폐세력으로 몰렸던 기득권 세력인 경총(한국경영자총협회)이 살아난 것이다.
박근혜 정부까지는 재계를 대변하는 단체가 전경련이었다. 탄핵 사태를 지나면서 전경련이 사실상 와해되다시피 했고, 문재인 정부는 그걸 대한상의로 교체했다. 일자리위원회를 보면 노동계 대표가 3명, 한국노총위원장, 민주노총위원장, 비정규직대표다. 그리고 재계, 경영계 대표가 3명인데 대한상의, 경총, 중소기업협회다. 전경련이 빠졌다. 나름대로 재계의 대표성을 대한상의에 줬던 것이다. 경총은 일자리위원회에 오면 반응을 잘 못했다. 그때는 발언권이 주로 노동계 대표들에게 있었다.
그런 경총이 되살아난 게 딱 그 시점이다. 정부 여당의 노동시간 단축을 사실상 무력화한 시도가 먹히면서 2018년 7월에 되살아 났다. 이걸 정부 여당이 받아줬다는 것은 경총에 재계 대표의 ‘시민권’을 준다는 것이었고, 노동정책과 경제정책에 재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지식인선언네트워크의 성명이 나오던 시점 전후에 소득주도성장이 사실상 중단되고 ‘적폐세력’이 다시 지배블록으로 편입됐다. 촛불항쟁을 주도한 세력들이 이 정권에 온전히 규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는데, 적폐세력으로 분류됐던 경총은 결국 1년만에 복원됐다. 그때가 정권의 역학관계를 보면 전환점이었던 걸로 나는 본다.
당시 우리가 선언문을 냈을 때, 이견도 있었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정부로서 소임을 잘 못한 것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규탄 수준까지 가야 한다’는 입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비판하되 견인하는 것으로 입장을 정리했다. 그 때는 여전히 문재인 정부도 사회경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의향이 있었다고 봤다.
보수 대 개혁세력의 갈등과 긴장 같은 게 정권 내부에 있었다. 우리가 이런 선언을 하고 비판을 하면 개혁세력이 조금 더 힘을 갖게 되고 사회경제개혁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타이밍이 중요했는데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생각했다. 정부에서도 우리 선언문이 나가고 잠시 고민을 했던 거 같다. 그런데 다시 소득주도성장 전략을 포기하고 기재부(관료) 페이스 대로 정책 방향을 가져가는 길로 돌아선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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