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6일 조지아주 애틀랜타 총기 난사 사건으로 미국 사회의 '아시안 증오범죄'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에도 연일 크고 작은 '아시안 증오범죄'가 발생하고 보도되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의 뿌리는 미국사회의 '인종차별'에 있다는 점에서 매일매일 발생하는 '증오범죄'에 분노하고 더 강도 높은 처벌을 요구하는 것만으로는 근원적인 해결이 어렵다. 또 미국의 인종문제는 사회경제적인 문제와 겹쳐지기 때문에 더 풀기 어려운 '고차 방정식'이기도 하다. '아시아 증오범죄'가 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급증했으며, 어떤 양상을 보이며, 해결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았다. 필자 주
"모델 마이너리티, 아시안을 옥죄는 고정관념"
한국계 미국인 배우 대니얼 대 김은 지난 3월 18일 미국 하원에서 열린 아시안 증오범죄 관련 청문회에서 이렇게 증언했다. 그의 연설은 현재 아시아태평양계(AAPI)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모델 마이너리티"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에 대한 강력한 고정관념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흑인은 범죄자, 히스패닉은 불법 이민자로 여겨지는 반면 아시안은 '근면하고 성실한' 아시아적 문화 규범에 따라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유색인종으로 인식된다. 상대적으로 학력 수준이 높고 사회 경제적 지위도 높다고 생각된다. 정청세 뉴욕 빙햄턴대학 한국학 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지난 3월 27일 시민참여센터(KACE)가 주최한 온라인 강연에서 '모델 마이너리티' 관념에 대해 크게 5가지의 문제를 지적했다.
이런 문제점들은 급증하고 있는 아시안 증오범죄에서도 드러난다. 크게 두 가지 문제가 두드러진다. 첫째, 백인 우월주의 사회에서 똑같이 인종차별을 받고 있는 흑인, 히스패닉들도 아시아-태평양계를 상대로 증오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둘째, 200년 가까이 아시아-태평양계가 온몸으로 겪어온 인종차별을 비가시화시켜 현재 발생하고 있는 증오범죄를 일종의 '일탈 행위'로 이해하게 한다.
"아시안 증오범죄,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최근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아시안 증오범죄 중 가해자가 흑인인 경우가 많다. 시스템화된 인종차별로 교육, 노동시장, 문화 등 사회 곳곳에서 유색인종으로 같이 차별받고 있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왜 '인종차별 증오범죄'의 가해자가 될까? 안소현 케네소 스테이트대 교수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개인들의 인종차별적 언행은 구조적인 문제에 기인한다"며 가해자의 인종에 지나친 관심을 두는 것에 우려를 표명했다. 또 교육과 언론을 통해 백인 인종주의 담론이 재생산되는 구조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자본주의가 노동자의 적을 노동자로 만들어 착취를 극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유색인종들끼리 서로 반목하고 배척하게 하는 담론은 백인 우월주의를 더 공고하게 만든다. 언론이 유색인종들끼리의 갈등을 극대화한 대표적인 사건이 LA폭동이다. 속도위반으로 경찰에 붙잡힌 흑인 남성 로드니 킹이 경찰의 구타로 청각까지 잃었지만 1년 뒤인 1992년 가해 경찰들이 무죄로 풀려나자 흑인들은 크게 분노하게 됐다. 로드니 킹 사건 관련 판결이 나올 즈음부터 언론들은 이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던 두순자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한인 슈퍼마켓 주인이었던 두순자 씨는 흑인 소녀를 도둑으로 오인하고 싸움 끝에 총으로 소녀를 쏘아 죽였다. 또 LA 한인타운은 흑인 밀집지역과 백인 부유층 거주지 중간에 위치해 있었고, 백인 거주지에는 일찍부터 경찰이 배치됐지만 한인타운은 사실상 방치 상태에 있었다. 이런 이유들로 흑인들은 6일 동안 한인타운을 습격해 방화, 약탈, 폭력 등을 휘둘렀고 한인타운은 전쟁터가 되어 버렸다. 언론은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를 한인과 흑인들간의 갈등으로 치환시켜버렸다.
물론 아시안이 평균적으로 흑인과 히스패닉에 비해 사회경제적 수준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이는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출신국가별 쿼터가 폐지되고 전문직 이민자 선호 제도가 발효되면서 전문직 동아시아계, 인도계 이민자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애초부터 고학력의 전문직이 미국사회에 이민자로 편입됐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지 아시안이 인종차별에서 자유롭거나, 개인의 노력으로 인종차별이 충분히 극복 가능한 문제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민 자체의 형태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아시안들(특히 이민 1세대)이 미국의 백인 인종주의에 저항하기 보다는 순응해왔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흑인들이나 히스패닉들이 아시안들을 '중간자적 소수자', '명예 백인'으로 인식하는 바탕에는 이들의 '경험'이 존재하기도 한다. 일부 흑인 학자들은 동아시아 근대성 형성의 중요한 축에 '반흑인성(Antiblackness)'이 있다고 주장한다. 아시안들이 백인 주류사회에서 만든 인종적 위계질서에 적극 편승해 '중간자'로서 이득을 취하면서 흑인과 히스패닉에 대한 인종차별을 심화시키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기능했다는 비판이다. 이런 역사와 개인의 경험에 기반해 일부 흑인이나 히스패닉은 아시안들에 대해 유색인종으로 연대의식이나 공감보다는 적대적인 감정을 느낀다고 보여진다.
"연방의원들도 매일 크고 작은 인종차별 겪어...비가시화되는 아시아-태평양계들의 인종차별"
둘째, '모범적 소수'라는 고정관념은 아시아태평양계가 처한 현실을 비가시화시킨다. 장성관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사무차장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인종주의에 기반한 사회적 지위는 개인적 극복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뤘다는 평가를 받는 이들도 인종적 불평등과 차별에서 자유롭지 못한데,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 '모델 마이너리티'라는 고정관념은 오히려 고통을 가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비영리학술재단인 공공지역연구소(PRRI)가 캘리포니아주에서 2684명의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지난 1월 발표)에 따르면, 이들 중 약 4분의 1이 빈곤에 시달리고 있었다. 인종별로는 캄보디아외 베트남계 이민자들의 경우 응답자의 26%가 빈곤문제를 토로해 가장 높았으며, 중국(23%), 필리핀(22%), 일본(22%), 인도(20%) 순이었다. 또 응답자의 3분의 1이 고용주로부터 임금차별이나 임금착취 등 부당한 대우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3명은 직장내 인종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장성관 사무차장은 "최근 급증한 AAPI 대상 폭력사건을 보면 피해자는 대다수가 장년층이거나 여성이며, 대부분의 피해자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며 "AAPI 중에서도 물리적, 사회적으로 소수자이자 약자인 이들만을 타겟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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