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동생이 아파 병원비도 들어가는 중에 갑자기 직장까지 그만두게 되다 보니 돈이 좀 되는 일자리가 시급했어요. 그때 '고액 알바'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연락하니, 고액 알바 광고를 낸 사람 말이 '몰래 성매매 업소를 하는 포주들이 관할 지역 담당 검사들에게 뇌물을 주는데, 직접 바로 주면 추적이 되니까 포주가 전혀 연관성이 없는 제3자에게 줘서 그 제3자가 고액알바 광고를 낸 사람에게 보내주면 그 사람이 현금으로 찾아서 검사에게 전달을 한다'고 했어요. 저는 나쁜 사람들끼리 하는 나쁜 행동인 것 같긴 했지만, 힘없고 억울한 사람이 직접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아 수락했습니다. 하루에 적게는 몇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 만 원까지 벌 수 있다는 말에 끌리기도 했구요. 그래서 피해자에게 서류를 보여주고 돈을 받아 입금하는 식의 심부름을 몇 번 했는데, 갑자기 중간에 경찰에 연행돼서 유치장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범죄계의 스테디셀러다. '보이스피싱' 말이다.
보이스피싱은 새로운 장르의 범죄가 아니지만, 이상한 전화가 걸려오면 으레 '광고' 또는 '보이스피싱'이려니 하며 전화를 받지 않거나 받아도 끊어버리는 지경으로 익숙해졌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으니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법도 한데, 보이스피싱을 당해 거액의 피해를 당했다든가 반대로 선량한 이웃의 도움으로 송금 직전 피해를 막았다는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범죄 수법은 점점 더 진화해 교묘하고 대범해졌다.
보이스피싱의 죄질이 특히 나쁜 이유는, 가족과 일상을 걱정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선량한 마음을 악용해 돈을 갈취한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위 사연처럼 궁핍한 사람들까지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을 이용해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돈을 뜯는 형국이다.
법률적 시각에서 보면 피해자 외에 모두가 가해자지만, 사회적 시각에서 보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소정의 대가를 받고 범죄에 기여한 소위 '중간책'이 된 이들도 무작정 가해자라고 규정하기가 난감하다.
수사기관에 노출되기 쉬운 '중간책'이 된 이들의 경우, 자신이 하는 일이 범죄라고 인식하는 이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이도 있다. 범죄라는 인식이 없었다는 주장을 한들, 사법기관에서 그대로 인정하는 것도 아니다. 범죄이긴 하되 경한 범죄라고 판단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공문서위조, 사문서위조, 위조공문서 행사 및 사기, 사기 미수, 범죄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여러 가지의 중한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 대게 벌금이 나오기보다는 실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고, 범죄 개수와 피해액에 따라 집행이 유예되지 않는 경우도 상당하다. 또한 유사 전과가 있다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사법당국이 무조건 중간책에게도 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이 보이스피싱에 대한 응징과 예방에 부합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본의 아니게 보이스피싱 조직 중간책 역할을 하며 피해자를 양산했지만, 누군가는 특별히 궁핍한 사정으로 흐려진 판단력으로 범죄인 줄 모르고 속아서 가담한 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대게의 경우 자신이 나쁜 일에 가담하여 노동하는 것보다는 많은 수익을 얻고 있다는 것을 모르기란 쉽지 않다.
보이스피싱을 둘러싼 사법 현실이 중간책을 검거하여 중형으로 의율하고 있는 이유는, 결국 궁핍한 처지에 있더라도 손쉽게 이익을 얻는데 천착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상황을 외면함으로써 범죄에 기여하지 말라는 데 있다.
자신도 속아 보이스피싱 조직에 휘말렸을 수 있고 억울한 면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더라면 자신의 잘못으로 더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았을 것이란 점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 무작정 무죄를 주장하거나 선처를 구하기보다는 자신이 기여했을 피해를 만회하는 구체적인 노력을 기울이면서 충분한 반성의 토대 위에 자신의 상황을 전달해야 한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사건 대응만큼 뼈아프지만 귀한 교훈을 받아 안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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