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정부의 발표로 읽힐 수 있지만, 영국의 도미닉 라브 외무장관이 한 말이다. 보리스 존슨 정부는 최근 <경쟁 시대의 글로벌 영국>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트라이던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에 장착되는 핵탄두 수를 현재 180개에서 260개로 늘리겠다는 내용도 담았다. 라브의 발언은 이에 대한 비판에 대한 답변이다.
영국은 당초 2020년대 중반까지 핵무기 보유량을 10% 가량 줄인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를 뒤집고 40% 정도 증강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심지어 적대국의 화학무기·생물무기 사용이나 사이버 공격 시에도 핵무기로 보복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영국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녹색당의 한 의원은 "도발적이고 불법적이며 자원의 심각한 낭비"라고 지적했고, 스코틀랜드 국민당은 "아동 빈곤 해결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자원의 낭비"라고 비판했다고 미국의 <워싱턴포스트>가 3월 16일에 보도했다.
핵실험에 대한 프랑스 당국의 은폐도 도마 위에 올랐다. 3월 9일 영국 <BBC>에 따르면, 프랑스가 196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 태평양에서 실시한 핵실험으로 인해 현지 주민 약 11만 명이 피폭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2006년에 프랑스 원자력위원회가 발표한 것보다 최대 10배 많은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피폭자 가운데 보상을 받은 사람은 63명에 불과하다고 <BBC>는 전했다.
이들 나라를 비롯한 5대 핵보유국들의 '내로남불'식 행태는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1995년 유엔 안보리 결의를 들 수 있다. 당시 핵확산금지조약(NPT)의 무기한 연장 여부 결정을 앞두고 핵보유국들은 안보리 결의를 통해 핵군축과 비핵국가에 대한 핵무기 불사용 및 불위협을 약속했다. 비핵국가들을 설득해 NPT를 무기한 연장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그 이후 핵보유국들은 자신들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핵무기 현대화와 핵무기 사용 문턱을 낮추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분명 자신들이 만든 안보리 결의를 스스로 위반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인 영국과 프랑스는 최근 북한의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면서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구했다. 이에 따라 3월 30일 비공개로 안보리 회의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하고 있다. 그러자 북한 외무성은 안보리의 '이중기준'을 문제삼으면서 강력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한반도 정세의 악화가 우려되는 까닭이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가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는 것이기에 안보리 회의 소집을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적·도덕적 권위를 가지려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앞서 소개한 영국과 프랑스의 행태는 이와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
또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자신들이 만든 결의는 지키지 않으면서 안보리 대북 결의를 "배격"해온 북한을 안보리에 회부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의문도 갖게 된다.
북한의 언행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강대국들의 '내로남불'이 북한의 우려스러운 행태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더 중요하게는 안보리 이사국들이 그토록 우려하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해야 할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던져보자는 것이다.
안보리는 북한이 탄도미사일을 시험발사하거나 핵실험을 할 때마다 습관적으로 안보리를 소집해 규탄하고 제재를 부과해왔다. 그런데 그 결과는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증강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험악한 표정으로 북한에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자신들은 스스로 만든 안보리 결의를 얼마나 준수해왔는지 자문해봐야 하지 않을까? 핵무기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는 '내로남불'이야말로 핵비확산의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지적을 한 번쯤은 곱씹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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