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에 대응하려면 도로, 항공 등에 비해 친환경적 교통수단인 철도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제4차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철도계획)에 포함돼야 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와 코레일의 통합, 관료 중심 철도 정책 결정을 바꾸기 위한 국가철도위원회 구성 등도 한국 철도산업의 미래를 위해 해야 할 일로 제시됐다.
'대륙철도시대 철도공공성 강화를 위한 의원 모임'과 전국철도노동조합이 지난 2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한 '제4차 철도계획 대안 연구용역 발표회'에서 연구자들은 위와 같이 입을 모았다.
철도계획은 철도산업발전기본법에 따라 국토교통부가 5년에 한 번씩 수립하는 철도산업 로드맵이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처음 수립됐다. 4차 철도계획은 원래 올해부터 시행되어야 하나 이를 위한 국토교통부의 연구용역 발주가 늦어 올 연말 혹은 내년 초 수립이 예상된다.
이날 발표회에 참가한 연구자들은 지난 1년간 4차 철도계획에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하는지에 대해 국토부와는 별도로 대안적 합동연구를 수행했다.
"철도, 기후위기 시대 가장 가치 있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연구자들은 철도의 친환경성을 강조하며 철도가 "기후위기 시대에 가장 가치 있는 사회간접자본 투자"라고 주장했다.
연구를 총괄한 김태승 인하대 물류전문대학원 교수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온실가스 감축이 인류의 과제가 됐는데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4% 정도를 차지하는 교통 부문의 전환 없이 탄소중립(이산화탄소 배출량만큼 이를 흡수하는 대책을 세워 이산화탄소의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철도는 세계 승객 이동의 8%, 화물 운송의 7%를 차지하지만 세계 교통 에너지의 2%만을 사용하는 에너지 효율적 교통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 전기철도의 에너지 소모량이 전기차 대비 1/3 수준이라는 점 △ 철도 건설 탄소 배출량은 도로에 비해 10배 정도 많지만 차량 생산 탄소배출량은 도로의 1/20 수준이고 운행 단계 탄소 배출량은 현격히 적다는 점 등 다양한 근거를 들어 철도의 에너지 효율성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교통수단의 생애주기 전체를 감안하면 철도가 도로나 항공에 비해 온실가스 저감에 가장 유리하다"고 단언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철도산업'을 발제한 김현우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도 "철도는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교통수단"이라며 "교통 부문이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줄이려면 승용차에 의존하는 여객과 화물을 도시철도와 경전철 등으로 대체하고, 단거리 비행의 대체재로 고속철을 활용하는 등 모달 시프트(Modal Shift, 기존 운송수단을 효율 높은 운송수단으로 변경하는 것)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은 스위스, 스페인,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등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재생에너지로 운용되는 철도를 확충하려는 해외 국가의 노력을 소개했다. 그 중에서도 2040년까지 모든 전기열차를 풍력 에너지로 운행하려는 네덜란드를 대표적 모범 사례로 꼽았다.
김 위원은 "한국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13% 정도에서 정체된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2050년까지 30% 수준으로 높여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단위 철도망 구축이 필요하다"며 "한국판 그린뉴딜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봐도 철도는 가장 가치 있는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라고 주장했다.
"철도 이용률 높이려면 철도망 확충 필요, 재원은 탄소세 도입으로"
철도가 온실가스 감축에 가장 효과적인 교통수단이라는 점은 여러 연구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렇다면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이기 위해 한국 철도는 어느 정도로 확충되어야 할까. 여기에는 얼마만큼의 재정이 소요될까.
'철도망 구성 및 운용'을 발제한 전현우 서울시립대 자연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철도 수송분담률을 높이려면 사람들이 예측가능한 시간표에 따라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며 "전국 주요 도시가 철도망으로 연결되어 있고 행정수도인 베른에서 전국 주요 도시로 최소 한 시간에 한 편의 열차가 출발하는 스위스의 철도망 구축 사례를 참조할 만하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한국의 KTX망은 서울 중심으로 보면 완성도가 있지만 지방 도시를 보면 부산과 광주를 잇는 고속철도도 없다"며 "이런 빈틈을 채우기 위한 전국 규모의 철도망 구축이 필요하고 현재 불규칙한 열차 시간표도 주요 도시 간 열차 시간표도 30분에 한 편이 출발하는 것을 목표로 다시 짜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 연구원은 또 "철도 이용률을 높이려면 시내 연결도 중요하다"며 "시내에서는 트램으로 운영되고 시외 철도 본선에서는 트레인으로 운영되는 '트램 트레인'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 연구원의 작업에 맞춰 철도망 구축에 드는 재정을 추정한 한상용 동서대 국제물류학과 교수는 "68개 철도 노선을 만드는데 드는 사업비는 KDI의 기존 철도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에 비춰보면 128조 3000억 원 정도가 들 것으로 예상된다"며 "2050년을 철도망 구축 완성연도로 잡으면 1년에 4조 원 정도가 드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정 마련 대책으로 한 교수는 △ 온실가스 저감에 가중치를 부여해 정부의 교통시설 예산에서 철도 예산 비율 상향 △ 재정자립도가 높은 지방자치단체의 철도 시설 예산 분담비율 상향 △ 역세권 개발 이익을 나누는 방식으로 민간 투자 유인 △ 유류세를 주행세로 전환해 교통시설 투자 비용 확보 △ 탄소세 도입 및 교통 부문 탄소세를 철도에 투자 등을 제안했다.
"고속철 통합, 국가철도위 신설, 안전관리체계 노동자 참여 보장 필요"
이날 연구자들은 한국 철도산업의 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SR)와 코레일의 통합을 꼽았다. 한국철도 네트워크의 확장성과 규모의 경제 달성을 통한 효율성 제고를 가로막는 고속철도 분리 정책은 하루빨리 폐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승 교수는 한국철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이같은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한해 코레일 영업 손실의 절반에 달하는 560억여 원 정도가 매년 코레일과 SR 간 거래비용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이 비용만 없애도 철도 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또 전문가, 산업관계자, 정부 노동조합 등이 참여하는 국가철도위원회를 만들어 소수 관료에 의한 일방적인 철도 정책 결정 체계를 극복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철도 운용, 남북을 연결하고 대륙으로 향하는 한반도 철도의 건설과 같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변화가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철도 안전관리체계에 노동자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도 4차 철도계획에 포함되어야 할 내용으로 제시됐다.
이날 발표회에서 대략적인 내용이 소개된 '4차 철도계획 대안 연구 보고서'는 더 자세한 내용을 담아 오는 4월 중순경 책자 형태로도 발간될 예정이다.
한편, 이날 발표회에는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심상정 정의당 의원, 박인호 철도노조 위원장 등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