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을 겪어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체결됐다. 핵심적인 내용은 올해 분담금은 지난해보다 13.9% 인상된 1조 1833억 원을 지급하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 분담금 인상률은 전년도 한국의 국방예산 증가율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청와대는 "합리적인 분담금"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가 갈수록 미국의 현금자동지급기(ATM)로 전락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황당한 요구를 "갈취"라고 표현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점잖게 갈취를 계속하고 있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현재 우리 국민 세금으로 미국에 준 방위비 분담금 가운데 9700억 원 가량의 '현금'이 남아 있다. 국가재정법이 따르면, 이는 국고로 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돈은 미국 은행에 예치되어 있다. 국고 귀속이 어렵다면 새롭게 방위비 분담금을 정할 때 이 액수를 감안해 차감하는 게 상식적일 게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올해 방위비 분담금을 13.9%나 올렸다. 돈을 줄 때에는 용처를 정확히 따져보고 주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뭉칫돈을 먼저 주고 어디에 쓸지는 나중에 따져보는 식이다. 미국이 용처에 맞지 않게 다른 곳에 써도 그만이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률을 우리 국방비 인상률과 연동시킨 것도 큰 우려를 자아낸다. 우선 미국은 한국의 국방비 인상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방위비 분담금도 더 많이 받아내고 미국산 무기와 장비도 더 많이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1일(현지 시각) 미국 방송 <CNN>이 미국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 국방예산의 의무적인 확대와 한국이 일부 군사장비를 구매할 것임을 양측이 이해한다는 내용이 포함될 수 있다"고 보도한 것도 이러한 분석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으로선 돈도 많이 받고 무기도 더 파는 '일석이조'의 이익을 얻게 되는 셈이지만 우리로선 '설상가상'이 될 수 있다. 국방비를 인상할수록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할 소중한 예산은 줄어들게 된다.
또 대규모 군비증강을 지속할수록 수렁에 빠진 남북관계를 복원하기도 어려워진다. 더구나 그 적용기간을 2025년까지 정한 것은 차기 정부의 선택의 폭을 크게 좁히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청와대의 자화자찬이 거북하게 들리는 까닭이다.
인건비, 군사건설비, 군수지원비로 구성된 방위비 분담금은 9000억 원 정도로도 충분히 충당할 수 있다. 10조 원 이상 소요된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이 완료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미국이 남는 돈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주일미군 등 한반도 밖의 미군 지원용으로 사용되어왔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바이다.
복병은 또 있다. 바로 경북 성주의 사드 기지이다. 현재 임시배치 상태에 있는 사드는 일반환경영향평가가 마무리되면 정식 배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동맹 강화"를 다짐하고 있고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의 핵심으로 미사일 방어체제(MD) 강화를 삼고 있다는 점에서 정식 배치의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미국은 정식 배치와 운용에 필요한 경비를 방위비 분담금을 전용해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사드 배치 결정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이었던 빈센트 브룩스가 2017년 4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사드 기지 향상과 같은 점증하는 요구를 충족시킬 비용 전용을 가능케 한다"고 밝힌 것도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해준다.
그는 또 방위비 분담금이 "변화하는 안보 환경에 대응하는 데에 필요한 유연성을 제공"해줄 것이라고 말했었다. 알쏭달쏭했던 이 말은 최근 미군 정찰기인 U-2기의 행보를 보면 그 뜻을 알 수 있다. 오산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있는 U-2기의 대중 감시·정찰 비행이 잦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한미 갈등의 주요 원인들 가운데 하나였던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가시화되고 있는 셈이다. 그것도 한국이 준 방위비 분담금으로 정비를 받으면서 말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국회마저 이와 같은 '비합리적인' 방위비 분담금 합의에 거수기 역할을 한다면, 한미동맹의 퇴행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길은 더더욱 요원해진다. 국회가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결기를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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