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위해 국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에서 '사실'을 ‘사생활 비밀에 해당하는 사실’로만 제한하는 개정안이 발의됐다.
최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대안책으로 현행법 개정이 추진되는 분위기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의원은 지난 4일 대표발의한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 개정안'에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개정했다.
현행법상 형법 제 307조 1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최 의원은 이 법에서 '사실'을 '사생활에 관한 중대한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로 한정하는 방식으로 개정했다.
최 의원은 형법상의 명예훼손을 '친고죄'로 개정하는 내용도 법안에 담았다.
현행법 제 312조(고소와 피해자의 의사)에 따르면, '사자 명예훼손'과 '모욕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고, '명예훼손'과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은 피해자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데, 최 의원은 이 법 모두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이는 수사 기관의 자의적인 수사 착수나, 제3자의 고발에 의한 '전략적 봉쇄소송' 등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한 취지다.
사실 최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과 유사한 내용의 법안은 이미 20대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을 전면 폐지하거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사실을 적시하는 경우에 한하여 처벌하는 법률 등이 주요 법안으로 제기됐다.
하지만 법안 대부분은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대 국회 임기가 종료됨에 따라 해당 법안은 모두 폐기됐다.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헌법재판소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의견대립에 대한 절충안으로 꼽힌다. 헌재는 지난 2월 25일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에 대해 5(합헌):4(위헌)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사실적시 명예훼손 조항을 사실상 폐지하는 최 의원의 법안은 재판관 4인의 위헌 의견과 맞닿아 있다.
'일부 위헌' 의견을 낸 김기영, 문형배, 유남석, 이석태 헌법재판관은 “진실한 사실을 토대로 토론과 숙의를 통해 공동체가 자유롭게 의사와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근간이므로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를 처벌하는 건 이에 반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들 재판관은 “피해자가 명예훼손에 대한 피해를 회복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공적 인물과 공적 사안에 대한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3자의 고발에 따라 진실한 사실 적시 표현행위에 대해서도 형사절차가 개시되도록 하는 '전략적 봉쇄소송'마저 가능하게 돼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위축됐다”고 지적했다.
이들 재판관은 또 "진실한 사실이 가려진 채 형성된 허위, 과장된 명예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를 야기하면서까지 보호해야할 법익이라고 보기 어려워 법익의 균형성을 충족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관 5인의 합헌의견도 "만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 효과를 고려해 해당 조항을 전부 위헌으로 결정하면, 사람의 가치에 대한 사회적 평가인 외적 명예가 침해되는 걸 방치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사실이 진실에 부합하더라도 개인이 숨기고 싶은 병력, 성적 지향, 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이에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것과 동시에 사생활의 비밀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으로 제시된다.
최 의원은 법안 제안 이유에서 "최근 헌법재판소도 형법 제307조제1항에 대하여 ‘병력‧성적 지향‧가정사 등 사생활의 비밀’에 해당하지 아니한 사실 적시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헌법에 위반될 소지가 있어 비범죄화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 의원은 "우리나라는 허위사실은 물론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도 형사처벌하고 있어,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고, 고소․고발 남발 등 명예훼손죄를 악용하는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지난 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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