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한국 입양아동이 입었던 '꽃한복'
지금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휴관 중이지만, 워싱턴 D.C의 미국 국립 역사박물관(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에는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 출신 여아가 입었던 한복이 전시돼 있다. 미국의 다양한 이민자들의 역사를 다룬 '다양한 목소리, 하나의 국가(Many Voices, One Nation)' 기획 전시물 중 하나다. 지난 2004년 한국에서 미국으로 국제입양된 아동이 미국으로 처음 입국할 때 입었던 한복이라고 한다. 이 한복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붙어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미국 국립 박물관에서 마주한 꽃이 수놓아진 분홍색 '꼬까옷'. 미국 이주민들의 역사 중 하나로 전시된 이 한복을 바라보는 마음 한켠에 찬바람이 일었다.
미국은 다양한 국적과 민족의 이민이 국가 역사 그 자체다. 미국 사회의 다수이자 주류인 백인들도 그 뿌리는 유럽에서 이주한 이민자들이다. 이 전시에서 한국(한국계 미국인)은 '후발 이주민' 중 하나로 소개됐고, 몇 안 되는 전시물 중 이 한복은 매우 상징적이었다. 20만 명이라는 숫자는 한국이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하지 못할 '역사'다. 동시에 이들 대다수가 이주를 통해 미국 시민이 됐다는 점에서 미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양부모의 나라로 이주한 아동에게 '국제입양'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뿐 아니라 태어난 국가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입양'의 과정에서 정작 이동의 주체인 입양아동의 '의지'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친생 부모와 입양 부모, 또 이를 중개하는 입양기관 종사자들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입양아동의 '삶'이 좌우 된다.
# 2017년 자살한 필립과 2019년 대한민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아담
필자는 2017년 하반기에 6개월이 넘게 한국의 국제입양 역사와 법적,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 심층 보도했다. 이 심층 취재를 시작한 계기는 그해 5월 미국에서 한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필립 클레이 씨가 경기도 일산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시민권을 얻지 못한 필립은 2011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그는 한국말도 전혀 모르고 한국에 아는 사람도 없었지만 '본국'이라는 이유로 한국에 보내졌고, 한국에서 노숙인 보호소, 교도소, 정신병원 등을 오가며 5년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생을 마감했다.
만 3세에 누나와 함께 미국으로 입양됐지만 시민권을 따지 못하고 38년 만에 한국으로 추방된 또다른 입양인 아담 크랩서 씨는 2019년 대한민국 정부와 입양기관 홀트아동복지회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이는 해외입양인이 제기한 첫번째 소송이다. 아담은 미국에서 세번 파양됐고, 양부모들로부터의 끔찍한 학대와 폭행을 견뎌야 했고, 결국 열여섯살에 양부모에게 내쫓겨 노숙자로 전락했다. 아담은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시민권 문제에 대해 내가 혼란스러운 것은 미국 정부, 한국 정부, 홀트 모두 현재의 문제가 내 책임인 것처럼 만든다는 것이다. '너는 그때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렇게 해야 했다'는 식의 태도다. 나는 그때 세살 반이었다"고 말했다.
필자도 추방 입양인들의 사례를 처음 접하고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런 비극이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한국과 미국의 허술한 입양법제 때문이었다. 1953년 첫 국제입양을 보내고 7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국제입양은 한국에서 '지워진 역사'였다.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이승만 정부는 '일민일국(一民一國)'을 내세워 혼혈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며 국제입양을 보냈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때는 한해 태어난 전체 아동 중 1%가 넘는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면서 수천만 달러의 돈을 벌어들였다. 전체 출생아동의 1%를 국제입양 보낸 나라는 과테말라를 제외하고는 한국이 유일하다. 과테말라에서 국제입양이 집중되던 시기는 국가경제가 몰락하던 때였다면 전두환 정권 당시는 한국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더욱 할말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한국은 이들에게 '최소한의 안전'도 담보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해외로 내보냈다.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 양부모의 나라로 가는 아동에게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이주하는 나라의 '국적(시민권)'이다. 한국은 입양특례법이 개정돼 적용되기 시작한 2013년 이전에는 '대리입양'을 허용했다. 양부모가 아닌 입양기관이 한국에서 모든 법적인 절차를 대리하는 제도다. 과거 김성이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경험을 고백했던 것처럼, 해외 유학생들이 입양아동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 양부모에게 전달해주는 아르바이트가 존재했던 것도 이런 '대리입양' 제도 때문이었다. 당시 한국 아동들은 엄밀히 말하면 입양을 간 게 아니었다. 입양기관이 보건복지부를 통해 입양 대상 아동의 이주 허가를 받고 한국 밖으로 내보낸 것이다. 때문에 이주한 국가의 입양법 내지는 국적법 때문에 입양을 간 뒤 국적을 받지 못한 입양인들이 다수 발생하게 됐다.
한국에서 20만 명이나 입양을 보낸 미국에서 가장 많은 '국적 미취득자'가 발생했다. 2013년 전까지 한국 출신 입양아동은 한국 여권에 미국 비자(IR-4 비자)를 받고 이주했다. '미국 시민에 의해 미국에서 입양될 예정인 고아'를 의미하는 IR-4 비자를 받고 입국한 아동의 입양부모에게는 2년동안 후견권이 주어진다. 양부모가 이 기간 안에 주법원에서 입양 재판을 별도로 해야 법적인 양부모가 되며, 입양이 완료되며 미국 시민권이 주어진다.
# 미국 하원에 네번째 발의된 '입양인 시민권법'
미국에 입양된 국제입양인 중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입양인들은 최대 4만9000여 명으로 추산되며, 이중 한국 출신 입양인들은 절반 정도인 약 2만 명이라고 한다.
미국 의회는 지난 2000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을 통과시켜 미국 시민에게 입양된 아동들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을 부여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 법은 제정일(2001년 2월 27일) 기준 만 18세 미만의 입양 아동들에게만 적용이 되는 법이다. 때문에 '아동시민권법'이 통과가 되기 전 이미 성인이 된 입양인들 뿐 아니라 1999년부터 2016년까지 입양된 아동들 중 최대 1만4643명이 성인이 돼도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여전히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이들을 위한 법이 '입양인시민권법(Adoptee Citizenship Act)'이다. 미국 민주당 애덤 스미스(워싱턴) 의원과 공화당 존 커티스(유타) 의원은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에 입양됐지만 시민권이 없는 이들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입양인시민권법'을 공동 발의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09년부터 세 차례나 하원에 발의됐지만 2년 회기 안에 통과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지난 2019년부터 미주한인유권자연대(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김동석 대표), 입양인권익운동(Adoptee Rights Campaign, 조이 김 알레시 대표), 홀트인터내셔널(수잔 콕스 부회장) 등 25개 단체가 '입양인 평등권 연대'를 꾸려 이 법안 통과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 이 단체 결성으로 법 통과 기대가 어느 때보다 컸지만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사태로 의회 활동에 제약이 커지면서 통과되지 못했다.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입양인들의 '이주'는 전혀 이들의 의지가 아니었다. 또 이들의 '국적 미취득'은 한국과 미국, 또 친생부모와 양부모, 입양기관의 잘못으로 발생한 일인데, 아무 잘못과 책임이 없는 입양인들이 고통을 감내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에는 미 의회에서 '입양인시민권법'이 반드시 통과될 수 있기를 바란다. 미국 역사박물관에도 전시된 것처럼 국제입양은 미국 이주 역사의 한 페이지이며, 잘못된 역사는 한시라도 빨리 바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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