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의 신도시 땅투기 의혹과 관련, 문재인 대통령 이하 정부 고위공직자들이 연일 메시지를 내놓으며 위기감을 표하고 있다. 9일 열린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여야 모두로부터 집중포화를 맞았다. 변 장관은 거듭 고개를 숙이며 한껏 자세를 낮췄다.
변 장관은 이날 국토위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어느 때보다 무거운 마음"이라며 "주무부처 장관이자 전 기관장으로 매우 참담한 심정"이라고 했다. "불미스런 일에 진심으로 통감하고 국민 여러분과 의원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진심으로 가슴아프고 송구하다"고도 했다.
변 장관은 엄정한 조사와 투기행위에 대한 '무관용 처벌'을 강조하고, 근본적 재발방지 대책으로 국토부 등 부동산 개발 관련 부처·기관의 경우 공직자 본인과 직계가족 전원의 토지거래를 제한·등록하게 하는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해당 투기 의혹에 대해 "공직자가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본연의 자세를 완전히 상실했다", "업무상 얻은 지식으로 국민 혈세를 탕진하는 행위를 했다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고 강한 비난도 했다.
그러나 변 장관의 사과에도 여야 국토위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심지어 여당 위원들조차 간접적으로 변 장관의 거취에 대해 물을 정도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LH 임직원의 땅투기 의혹에 대해 전임 사장이자 현직 장관으로 포괄적·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느냐"고 했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민심도 헤아리지 못하고 투기에 둔감한 장관에게 뭘 더 기대하겠느냐며 국민들이 당장 사퇴하라고 한다. 저도 같은 생각"이라며 "어떻게 하겠느냐"고 압박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도 "분노한 국민은 그래서 요구하고 있다. (변 장관이) 물러나라는 얘기가 들린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변 장관은 거취 관련 질문에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책임감을 통감하고 있다"는 답을 되풀이하며 "앞으로 부동산 시장 정상화와 국민에게 신뢰받는 정책을 만드는 데 노력을 다하겠다"고 답변했다.
변 장관이 지난 4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직원들은 신도시 개발이 안 될 줄 알고 샀을 것", "전면 수용되는 신도시에 땅을 사는 건 바보짓" 따위의 설화성 발언을 한 데 대해서도 여야 위원들의 질책이 쏟아졌다.
민주당 박상혁 의원은 "국민 불안과 감정을 건드리는 발언"이라며 "경위와 관계없이 저 발언은 국민에게 큰 분노와 허탈감을 안겼다"고 비판했다. 같은 당 박영순 의원도 "장관의 안이한 인식과 가벼운 언사가 국민 분노를 부채질하고 정부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호되게 질책하며 "신중히 의사표명을 해야지, 어떻게 언론에 이런 표현이 나갈 수 있나. 설사 오해나 와전이 있었다 해도 이렇게 돼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심상정 의원도 "장관은 (그 발언을 하기 전) 사전에 알았나? 조사를 했나?"라고 따져 물으며 변 장관이 '아니다'로 답하자 "조사도 안 하고 사정을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개발 정보를 미리 안 게 아니다'라고 하느냐. 그러니까 국민이 분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변 장관은 "투기 이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마치 두둔하는 것처럼 비친 것은 전적으로 제 불찰"이라며 "국민들 감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말씀드리게 된 점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다시 머리를 숙였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충격적인 소식에 실망감과 배신감마저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정부는 모든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행태를 발본색원하기 위해 범정부적으로 모든 역량을 모아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정부합동조사단 조사 결과 등에 대한 신속한 수사를 위해 국가수사본부 내에 국세청과 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정부합동특별수사본부(특수본)를 설치하도록 했다"며 "이번 조사와 수사를 통해 확인된 위법행위에 대해 일말의 관용도 허용치 않겠다. 투기와 연관된 다른 탈법 사례가 드러나면 그 또한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강조했다.
변창흠 "신도시 땅투기, 징역 7년까지 가능"…與 "특수본에 검사 파견받자"
국토위 전체회의에서는 변 장관과 여야 위원들 간에 투기행위 수사 및 부당이득 환수 방안에 대한 문답도 오갔다. 국민의힘 김희국 의원은 "여당 원내대표나 국무총리 등이 (투기행위자는) '패가망신시키겠다'고 하는데, 현행법으로 국민 정서에 부합하게 '패가망신'을 시킬 수 있느냐"며 "검토도 없이 국정 책임자들이 허무개그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변 장관은 이와 관련해 "가장 (처벌)가능성이 높은 것은 부패방지법"이라며 "입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지만 비밀 범위를 넓게 해석한다면 부패방지법으로 (부당이득) 몰수와 징역 7년까지 가능하지 않을까"라고 했다.
또한 LH 내부 규칙 등을 활용하면 부당이득 환수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내부 비밀정보를 활용한 경우 엄격한 처벌 규정이 있고, LH 내부 규정 등을 총동원해 (부당이익) 환수 방안을 검토하겠다"며 "업무상 비밀을 얼마나 넓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데, 간접적으로 얻은 것(정보)도 비밀로 간주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환수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 위원들이 아직 보상이나 매도 등 이익 실현이 이뤄지지 않아 부패방지법으로 의율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고 지적하며 보완 입법 방안에 대해 묻자 변 장관은 "부진정 소급입법을 통해 아직 이익실현이 안 된 경우도 (환수가) 가능한지 검토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수사 진행과 관련,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그동안 검찰이 이런 대형 사건에는 수사력을 발휘해 왔는데 검경 수사권이 조정돼서 검찰은 (수사를) 할 수가 없다"며 "대통령 말씀은 검찰도 수사(협력)하라는 것이니, 장관이 정부합수단에 검찰 인력을 파견받아 수사에 동참하게 햐달라고 총리에게 건의하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전날 문재인 대통령은 이 사건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의 유기적 협력"을 주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법무부·행정안전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아직 개인 일탈인지 구조적 문제인지 예단하기 어렵지만, 검경의 유기적 협력으로 발본색원해야 한다"며 "검찰은 수사 노하우 및 기법 공유, 수사 방향을 잡기 위한 논의 등에서 경찰과 보다 긴밀히 협의해 달라"고 했었다.
반면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은 "셀프 조사는 한계가 뻔하다. 검찰·감사원에도 조사를 의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 장관은 박 의원에게 답변하면서 "특별수사본부에서 검찰과 협력해서 하면 투명·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야 기싸움…"2010년부터 조사" vs. "김의겸 국회 입성, LH 직원들 무슨 생각 하겠나"
이날 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왜 문제가 불거진 지난 주에 바로 상임위를 열지 않고 1주일 넘게 시간을 끌었느냐며 여당에 공세를 펴기도 했다. 여당에서 "내가 야당이라면 아까운 시간에 의사진행 발언이나 하면 시간을 보내지 않을 것이다. 정치공세 그만하라"(조응천 간사)라고 맞받으면서 야당 의원들이 소리높여 항의하는 등 신경전도 벌어졌다.
또 국민의힘 위원들이 모니터 뒷면에 붙인 비판구호 팻말 가운데 '반사회적 범죄행위, 민주당도 조사하라'는 내용이 "모욕적"이라며 팻말을 당장 철거하라고 민주당 의원들이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있었다.
민주당 조오섭 의원은 "조사 기간을 5년이 아니라 '2010년부터 지금까지'로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변 장관에게 묻기도 했다.
송석준 의원은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분이 투기로 지탄받다가 사퇴했는데 이번에 그 분이 국회에 들어온다고 한다"며 "투기 일삼던 분, 그래서 사퇴한 분이 민의의 전당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는 국민과 공기업 직원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비꼬았다. 변 장관은 송 의원의 이 질문에는 침묵만 지키고 답을 하지 않았다.
심상정 의원은 차기 LH 사장으로 김세용 SH 사장 내정설이 있는 데 대해 "이 분은 굉장한 부동산 부자다. 본인 배우자 공동명의로 서빙고동에 아파트가 2채 있고 마포에 본인 단독으로 1채, 제주·담양 등지에 땅도 소유하고 있다"면서 "투기 문제를 해결해야 할 분인데 땅부자 집부자가 사장을 맡아서 되겠나"고 따졌다. 변 장관은 이 질문에도 묵묵부답이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