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 토크빌은 근대 민주주의에 대해 무정부 상태와 무질서 등 종종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요소보다 합법성을 가장한 전제정치(despotism)를 더 우려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교활한 전제정치는 다수의 횡포(tyranny of the majority)다.
그에 의하면 다수의 횡포는 여론이라는 조용한 수단을 이용해 서서히 작동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결주의에 따른 전제 정치는 권력구조로도 막을 수 없다. 현대민주주의가 많은 문제를 노출하고 있지만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지는 다수결 정치가 남용된다면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분립의 사실상의 폐기가 가능해진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국회의 의사결정은 최종적으로 시민의 의사를 대신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입법권을 가졌다고 해서 자의적으로 권한을 남용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대의명분에 어긋나는 행위이다. 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해서 정당성을 100% 담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민적 관심과 쟁점이 첨예한 법률의 제·개정은 시민사회의 여론과 공청회, 찬반에 대한 숙의를 거쳐 쟁점에 대한 양보와 타협의 사회적 합의의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시민을 대표한다는 대의제의 정신에 부합한다. 표결의 주체는 헌법기관으로서의 국회의원이지만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이므로 선출권력은 국민의 공복에 불과하다.
요즘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법률 개폐는 지나치게 자의적이다. 유권자에 의해 선택됐다는 것을 마치 시민일반의 의사와 동떨어져도 다수결에만 위배되지 않으면 모든 사안을 처리해도 된다는 생각과 등치시키는 뒤틀린 의식이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적법한 의사진행 과정을 거쳤다고 절차적 정의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합법을 빙자한 사실상의 전제정치다. 토크빌이 우려한 민주주의의 문제 그대로다. 이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가덕도신공항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되고,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마저 박탈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중대범죄수사청 법안도 밀어붙일 태세다. 정치집단이 원하는 일에 관하여 시민사회의 의견이 갈라지고, 지역적으로 이해관계가 일치하지 않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과 숙의 과정을 생략하고 법을 만들어서 목적을 달성하는 법률만능주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사실상의 정치농단이다. 박근혜의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을 익히 경험했지만 지금 국회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는 또 하나의 농단이다. 농단의 사전적 의미는 이익이나 권리를 교묘한 수단으로 독점하는 것이다. 가덕도 공항의 경제성이라든지 재정적 타당성 등을 위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도록 한 것이 그 대표적 예다.
급기야 법무부 장관은 스스로를 "장관이기 이전에 여당의 국회의원이다"라는 말까지 했다. 이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사실상 위반한 발언이다. 여권이 다수의 힘을 믿고 중대범죄수사청을 밀어붙이려 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수사권 개혁 안착'과 '범죄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수사 역량' 등이 후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대해 여권 강경 세력이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아니라고 한 발언에 대해 생각을 같이 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여권의 강경 친문세력과 검찰개혁을 명분으로 무리하게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키려 하는 집단이 대통령의 의사도 암묵적으로 무시하는 행태까지 보이는 상황까지 왔다. 검찰개혁은 강성여권을 지탱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다른 개혁은 관심 영역에서 밀려나 있다. 지난 총선 때 비례위성정당을 만들어서 야당과 공히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형해화시켰던 것을 선거 후에는 바로잡는 데 힘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개혁과 여타의 개혁 의제들은 검찰개혁이란 그들의 이익에 사활적인 의제 앞에서 속수무책이다. 결국 여전히 약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제1야당 때문에 견고한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보편과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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