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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입은 청소부는 집에 가면 귀한 아내, 귀한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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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유니폼 입은 청소부는 집에 가면 귀한 아내, 귀한 엄마입니다"

[LG트윈타워를 쓸고 닦은 사람들 ③]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김정순 씨 인터뷰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이 2021년 새해 첫날부터 집단해고되었다. 차별 속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일해 왔지만 '청소노동'에 대한 선입견, 동정적인 시선 속에 그 삶과 노동은 종종 단순화되고는 한다. 깨끗한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청소노동자의 삶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이들의 목소리가 온전히 세상에 전해지도록 인권활동가들의 인터뷰 기사를 싣는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연대자로

엘지트윈타워 청소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날은 유달리 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조합원들은 어쩌고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 당장은 내 코가 석 자다. 막상 인터뷰를 하려니 내심 떨리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다. 부모 세대 분들이 성소수자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알 수 없어서 잔뜩 긴장이 되었다.

"근데 사람이 여자 남자도 마찬가지고 억지로는 뭐든지 안되는 거잖아요. 그런 세계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나는.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하는 걸 어떻게 거스를 수가 있는가요."

연륜이 잔뜩 묻어나는 김정순(65세) 조합원의 말에 비로소 움츠렸던 어깨를 편다. 누가 누구에 대한 편견이 있던 것일까. 김 조합원은 시작부터 연대해주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고 나는 틈을 타 성소수자에게 하는 다정한 말 한 마디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도 있다는 당부를 했다. 서로가 서로에 대한 연대자로 마주 앉아 연대의 힘에 대해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도 신촌로터리로 불매운동을 갔다 왔습니다. 젊은 청년들이 각 학교에서 11명이나 나왔더라고요. 여사님들이 꼭 이겨주셔야 앞으로 청년들이 희망이 있다 꼭 이겨주세요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 아휴, 짠 하기도 하고 그 추운데 장갑도 안 낀 손으로 피켓 들고 나눠주고 하고 다니는데…. 에효…."

김 조합원의 글썽이는 눈이 반짝반짝 빛난다. 한남동 엘지 회장 집에 찾아가 피켓팅을 할 때 지나가던 행인이 음료수를 사 준 일, 또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투쟁 사업장에 찾아와 조금씩 조금씩 사 모았다면서 가방 한가득 마스크를 꺼내 주신 일도 있었다. 김 조합원은 그런 작은 마음, 조그만 관심이 너무나 고맙다. 지나가다 투쟁 열심히 하라고, 힘내라고 말해주는 사람들, 가다가 돌아서서 피켓을 읽어보고 가는 사람들, 전단지 한 장 받아주는 것도 왜그리 고마운지 그는 지금 사람이 주는 감동을 배우는 중이다.

김 조합원에게 이 투쟁은 무엇보다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고 '약자들이 힘을 모아 세상을 바꿔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김 조합원은 투쟁하는 사람들을 보면 음료수 한 박스라도 사다 주고 싶고 만약에 빈손일지라도 "투쟁!!!"하고 외쳐주고 가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들의 입장이 나의 입장이겠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끝까지 싸울 거란 말을 추임새처럼 넣곤 한 김 조합원이지만 그가 처음부터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믿었던 엘지로부터 뒤통수를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주간 근무자들이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소식이 들려 온 얼마 후에 한 번도 찾아온 적 없던 본사 직원이 사무실에 와 야간 업무에 개선할 점이 무엇인지 조사를 했다. 사무실에 공기청정기 놓아줄 것, 금요일 격주근무 대신 주5일 근무로 변경해줄 것, 무엇보다 몸만 건강하다면 정년 없이 원할 때까지 일해도 좋다는 구두 승인을 받았다.

이거면 됐다 했을 때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다. 15일쯤 지났을 때 동료 한 명이 엘지트윈타워에서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본사에 따져 묻자 그때서야 미안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때가 12월 15일이었다. 본사에서는 노동조합을 가입하지 못하도록 구슬려 놓은 후 12월 31일 자로 야간 근무자들을 해고하려 했던 것이다.

얼마나 사람을 하찮게 여겼으면 그런 거짓말을 할까. '청소 해 먹고 살면서 나라에서 내라는 세금 떼먹지 않고 내고 나쁜 짓은 안 하고' 살았다. '유니폼 입고 일할 때는 청소부여도 집에 가면 귀한 아내, 귀한 엄마'였다. 정년을 지나는 나이, 고작 2~3년이라도 더 일하고 싶은 마음에 별 희한한 갑질을 다 견디면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산 세월이 속절없이 무너졌다. 더는 이대로 당할 수 없었다. 15일 남겨놓고 본사의 수작을 알게 된 야간 근무자 13명은 그대로 노동조합에 가입해버렸다.

▲ 연대자와 함께 무지개기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LG트윈타워 청소노동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하찮은 노동은 없다

김 조합원은 2012년 입사해 8년 동안 야간 업무를 담당해왔다. 청소기를 끌고 올라가 하루종일 직원들이 어질러놓은 것들을 밤새도록 치워냈다. 김 조합원에게 청소는 당신에겐 내 뒤가 깨끗해지는 일이었고 전체로는 하나의 유기적인 시스템이었다.

"청소를 처음에 시작할 때는 내가 벌어 먹을라고 나왔지만 해놓고 나면 뿌듯하고 청소기 끄고 돌아서서 불 끄고 나올 때 얼마나 깨끗해요 뒤가. 내 뒤가 깨끗하고 직원분들이 나와서 내일 또 열심히 일하고 서로 그렇게 그분들도 열심히 일하면서 어질러지고 우리가 또 청소를 해야되고 그런 게 너무 살아가는 세상이구나 느껴지죠."

그건 김 조합원만의 생각이었을까. 청소는 티가 나지 않는 노동이었다. 그들이 노동한 자리는 항상 깨끗하고, 항상 깨끗한 상태는 당연한 것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노동을 지웠다. 노동자들은 수고했다는 말 대신 눈에 띄지 말라는 요구를 받았다. 김 조합원은 그 까닭을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태초부터 하찮은 것은 없다. 하찮게 여기도록 만들어지는 것이다. 청소노동자는 왜 사람들의 눈에 띄어선 안 될까. 청소는 왜 보이지 않아야 할까. 드러나지 않으면 존재를 잊는다. 드러나지 말라는 요구는 이 노동을 하찮게 만들기 위한, 노동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한 술수다. 하찮은 노동일수록 부리기가 더 쉽기 때문에, 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서 임금을 깎고 자신의 편의대로 썼다 버리기가 더 쉽기 때문에. 반대로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김으로 권리를 말하기가 너무나 어렵다.

그 업신여김에 청소노동자들은 반기를 들었다. 지금의 투쟁이 한편 신이 나는 까닭이 여기 있다. 그들 자신이 이 빌딩에 함께 있는 노동자라는 것을 드러내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나마 을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도 같았다.

"그러니까 지금 그게 우리가 너무 통쾌한 거에요. 너무 통쾌하고 어떨 때는 막 일부러 누워있어요. 그냥 깔아놓고 누워있어요 보라고. 그리고 여기 1월 1일 날 밥을 안 넣어줬잖아요. 밥을 안 넣어주고 작년 12월 31일 이후로는 우리는 자기들이 니들은 우리랑 상관없다 해고됐으니까 나가라는 식으로. 그때는 여기를 못 들어오게 해가지고 한 번 나가면 여기 다시 들어와야 되는데 못 들어오는 스트레스가 엄청 컸어요. 우리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가지고 저기 본관 들어오는 입구에다가 줄을 쳤어요. 빨랫줄을 쳤어요. 그래가지고 팬티 브라를 다 널어버렸어요. 보라고. 황당했겠죠."

▲ LG트윈타워 1층 로비에서 농성 중인 청소노동자.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정당한 투쟁에 대한 자부심으로

노동조합을 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더는 언론이 보도하는 대로 곧이 믿지 않는다. 강성노조니 연봉이 얼만데 욕심이 과하다느니 몰아세우지만 그것이 비단 제 욕심만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이렇게 싸우듯이 여러 단체, 나만 못한 비정규직들, 부당하게 당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같이 싸워주는' 일이었다는 것, 그리고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의하기까지 얼마나 '부당한 일을 많이 겪었'고, 기업이 '나쁜 짓을 해왔는지' 알게 되었다.

"청소노동자들은 물건을 만들어서 돈 남기는 그런 업종이 아니에요. 그 10년 동안에 고모들이 207억을 벌어갔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기가 막혀요."

모르고 산 세월이 안타깝고 미안해서 그는 '세상이 바뀐 만큼 이제 노동조합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소리를 높인다. 할 만큼 하지 않았냐는 가족들의 만류를 설득한다.

"우리는 진짜 너무나 약한 사람들이고 그나마 객지에서, 조합에서 받쳐주고 이렇게 소리를 낼 수 있고 연대해주시는 분들 많고 이렇게라도 우리들이 노동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더라. 니들도 그런 걸 알아야 돼. 니들은 엄마 하는 대로 따라오면 돼."

"그렇잖아요. 엄마가 나쁜 일 하는 거 아니고 그동안 부당한 일 그렇게 많이 겪고 지금 싸우는 것도 만약에 엘지가 정당하다면은 우리를 이렇게 못 두죠 진작 쫓아냈죠. 우리는 이제사 그걸 알겠어요. 니들이 그동안 그만큼 나쁜 짓을 했구나 라는 걸.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싸울 때까지는 같이 싸우겠다는 거지요."

그에게서 정당한 투쟁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이 투쟁이 어떻게 끝날지는 모른다. 마냥 해피엔딩일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미 알게 된 것들을 모른 척 할 수는 없다. 주간 근무자들의 얼굴을 투쟁하면서 처음 보았다. 그 얼굴들을 두고 나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한 명 한 명 빠진 사람 있는지 머릿수를 세며 탈퇴하라고 꼬드기는 엘지의 치졸함에 먼저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 거듭 다짐한다.

"투쟁의 끝이요? 물론 고용승계 되면 좋겠죠. 좋겠고 우리가 투쟁을 성공함으로써 다른 사업장도 용기를 얻어서 더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고 지금 투쟁하는 사업장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이 투쟁을 꼭 이겨야 성공해야 그런 사업장도 더 용기를 낼 것 같고 그래서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꼭 성공해야 된다. 잘 싸우겠습니다."

드러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현장에는 흔히 생각하는 투쟁현장 같지 않은 흥과 연민이 있다. 스스로를 발산하는 긍지는 응원과 지지를 모으고 차별받아온 자로서 나의 처지와 당신의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연민의 정은 위로를 건넨다. 지금 청소노동자들은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고령의, 여성의, 비정규직의, 이들 노동을 수식하는 말들은 무수하다. 나와 내 주변 누구의 삶에라도 연결되지 않는 곳이 없다. 나의 경우에는 가려진 노동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는 데서 성소수자들의 삶을 포개어 놓는다. 그렇게 이 투쟁은 가려진 노동, 성소수자와 같은 없는 존재, 지워지고 숨겨지는 약자들과 무엇보다 나로 살기로 한 여성들을 연결하며 영감과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중이다.

고령의 여성들이 대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이 투쟁에 연대가 멈추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침묵하지 않겠다, 차별받지 않겠다, 인간으로 살겠다 선언하며 스스로 껍질을 깨고 나와 다른 이들의 삶을 연결하는 청소노동자들은 정당한 투쟁에 대한 자부심과 연대, 바로 그 힘으로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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