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을 기다리지 않는 정치. 지금 당장 중증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
지난 1월 13일 출범을 발표한 가짜정당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장애인당'의 핵심 선언이다.
4.7 재보궐선거를 위해 '가짜정당'을 만들고, '가짜 서울시장 후보'를 자처한 이들이 무려 11명이나 된다. 6명과 5명의 중증장애여성·남성 서울시장 후보는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장애인 정책 공약을 하나씩 도맡았다.
핵심 표현도 있다. "K-방역을 넘어, D-방역(For the Disabled)으로 나아가자!"라던가, "탈시설이 백신이다!"라던가, "이것도 노동이다!"라던가, "모두가 평등하게 이동할 권리를 누리자!"라던가,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라는 식의 구호들이 위에 나열한 것 외에도 6가지나 더 있다.
중증장애인 당사자 후보들은 가짜정당 탈시설장애인당을 구성하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서울시를 위한' 11대 장애정책 요구안을 선거 공약 사상 처음으로 '장애중심적'으로 이해하고 호소했다. 유력한 비장애정치인이 자신의 인내와 관대함을 과시하고자 호혜를 베풀거나, 따뜻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꿈꾸며 내미는 시혜와 동정의 손길을 기다리지 않았다. 다만, 장애인 당사자로서 꼭 필요한 정책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그에 상응하는 멋진 구호도 만들었으며, 자기의 목소리까지 녹여냈다.
첫 번째로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체계 마련'을 약속하는 장애여성 이희영 후보는 (대부분이 관심조차 없을) 정견발표문을 쓰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았다.
"저는 저와 여러 장애인들의 안전을 더는 남에게 맡겨둘 수 없어 두려워도 이렇게 나왔습니다"고 말이다. 중복장애를 지닌 장애 여성은 두려움을 안고 자신을 비롯한 서울의 40만 동료 장애인을 위해 긴급탈시설과 소득보장 방안 등의 공약을 발표하고 그 의지를 말했다.
두 번째로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을 약속하는 장애남성 김진석 후보는 "탈시설이 백신"이라고 외치며, 자기의 이야기를 풀어갔다. 아래와 같이 말이다.
세 번째로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을 구호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고 외치는 조상지 후보는 정치가의 야망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의 삶을 담담히 기술하였다. 유권자의 지지를 의식한 호소문이 아니라, 비망록 같은 정견문을 작성했다.
어느 서울시장 후보가 장애인 야학 등을 다닐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환호의 정견 발표문을 쓴 적이 있었나.
네 번째로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을 공약으로 "장애인에게 교육은 생명입니다"라고 외치는 김명학 후보는 중증장애인의 평생교육 필요성을 호소했다.
초인적인 커리어 자랑을 통한 득표는 커녕,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 우수수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비상식적인 정견발표문이 이것 말고도 7개나 더 있다. 지면상의 한계로 모든 내용을 소개하지 못해서 아쉬울 뿐이다.
11명의 후보는 '가짜정당 탈시설장애인당'을 통해 열심히 일상생활에서 열악한 장애인의 현실을 알렸다. 자신의 정책 공약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고개 숙여 다시 고민하기도 하고, 혹시라도 유명정치인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기대감에 흥분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주 선거관리위원회는 공문을 통해 '가짜정당 탈시설장애인당'을 표방하여, 당명을 달고 유세를 연상케 하는 활동이 각각 정당법과 공직선거법에 위배된다며 법적인 제재를 암시하였다.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체계 마련', '장애인 탈시설 권리 보장', '최중증 장애인 노동권 보장', '장애인 이동권 보장', '장애인 자립생활 권리 보장',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 '뇌병변장애인 의사소통권리 보장 및 종합지원 체계 마련' ,'장애인 문화예술 권리 보장',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여성 권리 보장', '장애인 건강권 보장'을 한 달간 외쳐 온 11명의 가짜정당 후보들은 전과자가 될 위기에 처했다. 대다수가 기초생활수급자이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은 열망을 갖고 있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서울시'를 꿈꾸면서 활동한 가짜 정당의 후보들은, 공식선거 개시일 전까지 두 달 남짓 활동하고 스스로 사라지겠다 말했음에도, 국가는 이들의 법적 심판을 예고했다.
그들을 지켜보는 나는 서러워서 이 칼럼을 기고한다. 원통해서 이 칼럼을 기고한다. 막막해서 이 칼럼을 기고한다.
우리 사회가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았고, 바라보지 않았으며, 안아주지 않았으면서, 도리어 학교 밖으로 쫓겨나고 세상 밖으로 쫓겨나고 기초생활수급자로 근근이 살아가고, 버스비를 내는 것조차 경제적 부담을 느끼고,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매일 힘겹게 자신의 몸과 사투하는 이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범법행위로 낙인찍었을 뿐만 아니라, 단죄를 예고하는 이 사회가 너무나도 서럽고 원통하고 억울하고 막막하다.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세상에 민주주의가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한국 정치가 헌법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그 사실에 중증장애인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지 않겠는가.
곧 있으면 사라질 가짜정당을 만들어가면서까지, 중증장애인이 남기고자 한 말들을 전달하고 싶다. 내가 감히 그들의 목소리에 말을 더하거나 빼고 싶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지면이 허락하는 한, 그 목소리를 최대한 전달하고 싶다. 가짜정당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장애인당"의 선언문 중 일부라도 말이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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