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관리소장 이경국(가명) 씨는 화를 참지 못하고 멱살을 잡았다. 그는 과거 납부한 관리비 영수증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건물 입주자 김철희(당시 50세)를 바닥에 넘어뜨렸다.
같은 건물에서 일하는 이 씨의 동생 이정국(가명) 씨도 가세했다. 그는 형처럼 김 씨의 멱살을 잡아 넘어뜨린 뒤 발로 차는 등 폭력을 휘둘렀다. 이 씨 형제는 공동 폭행으로 김 씨에게 약 3주간의 치료가 필요한 상해를 입혔다.
의정부지방법원(재판장 정재민)은 공동상해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 이경국-이정국 형제에게 각각 벌금 200만 원과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2016년 12월 19일 선고했다.
피해자 김 씨는 1심 선고결과가 나온 지 열흘 만인 2016년 12월 29일, 이 씨 형제의 폭력 가해가 담긴 판결문을 휴대폰으로 사진 찍어 입주자 28명에게 전송했다. 그는 이 씨 형제의 폭력을 입주자들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씨 형제는 곧바로 김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의정부지방검찰청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김 씨를 기소했다. 폭행 피해자 김 씨가 이번엔 '사실적시 명예훼손' 가해자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김 씨의 행동을 유죄로 판단했다.
의정부지방법원(판사 김성래)은 2018년 4월 19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받는 김 씨에게 벌금 100만 원을 선고했다. 판결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김 씨는 항소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이 씨 형제의 공동상해 판결문을 공개한 건 입주자 모두의 공익을 위한 행동이었다고 주장했다. 김 씨의 유죄는 달라지지 않았다. 의정부지방법원(재판장 박사랑)은 김 씨에게 벌금 70만 원을 2019년 5월 3일 선고했다.
두 번째 사례를 보자.
여성 A는 남성 B를 모욕죄로 고소했다. 이 남성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저속한 표현으로 A를 희롱하고 모욕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모욕죄 혐의로 약식기소된 B에게 벌금 100만 원을 2017년 2월 27일 약식명령했다.
A는 B의 유죄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로 마음먹었다. 당시에도 B는 여러 인터넷 이용자들에게 모욕과 명예훼손을 일삼았다. 그는 B의 행동이 형사처벌받을 수 있는 범죄라는 걸 인터넷 커뮤니티 이용자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A는 B에 대한 약식명령 사건처분통지서를 사진으로 찍어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월까지 세 차례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했다. 사건처분통지서에는 이런 내용의 정보가 담겼다.
A는 사건처분통지서와 함께 글도 덧붙였다.
A는 실명 외에 민감한 개인정보가 적시되지 않은 사건처분통지서를 첨부했다. 그래도 A는 끝내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찰은 인터넷 게시판에 사건처분통지서를 공개한 A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2020년 5월 21일, 벌금 150만 원 형을 A에게 선고했다. A는 모욕죄 혐의로 약식명령을 받은 B보다 더 많은 액수의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사건은 항소심까지 갔다. 2심 재판부도 A의 행동을 유죄로 판단했다. 법원은 벌금 80만 원을 A에게 2019년 5월 3일 선고했다.
정리해보자. 먼저 언급한 폭행 피해자는 가해자 이름과 범죄사실이 적힌 유죄 판결문을 주민들에게 공개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유죄를 선고 받았다. 모욕 피해자 A씨는 가해자의 사건처분통지서를 온라인에 공개했다가 범죄자가 됐다.
현행법에 따르면, 두 사례의 주인공이 무죄를 선고 받으려면 자신들의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임을 입증해야 한다. 재판부는 둘의 행위는 공익과 무관하다고 판단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판결문 등을 공개했다고 형사처벌 하는 게 합당한 일일까?
헌법 109조에는 "재판의 심리와 판결은 공개한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는 국민의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이다. 현행법상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확정된 사건의 판결문을 인터넷을 통해 열람·복사할 수 있다. 국민 알권리 확대, 사법 절차 투명화 등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물론, 피고인의 실명과 범죄 사실 등이 적시된 판결문 등을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하면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사실을 말한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건, 표현의 자유와 알권리라는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오후 2시, 형법 제307조 제1항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린다. 해당 조항은 ‘공연히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게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에 헌재의 판단을 받는 헌법소원 청구인은 동물병원 이용자 C다.
C는 2017년 8월 동물병원에서 치료받은 자신의 반려견이 실명 위기에 처하자 동물병원의 수상한 치료 행위를 폭로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실천하지 못했다.
C는 이러한 점이 헌법상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며 2017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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