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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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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는 정치

탈시설장애인당은 처음부터 정당 창당을 하지 않고 스스로 시한부 가짜 정당임을 표방하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가짜 정당’임을 선언한 정당(?)이 있다. 지난 1월 13일 출범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탈시설장애인당’은 정식 정당이 아닌 장애정책의제를 주장하기 위한 가짜정당임을 밝히며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총 11명의 ‘가짜 후보’도 냈다.

선관위에 후보등록도 하지 않은 11명의 장애인 후보자들은 탈시설권리 보장, 장애인노동권과 이동권 보장, 재난시대 장애인 지원정책 마련, 장애인자립생활 지원 확대, 장애인 평생교육 권리 보장, 의사소통· 보조기기 권리보장 및 배리어프리, 장애인 문화예술 권리와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장애여성 인권과 장애인건강권 보장 등 총 11개의 정책의제를 내걸었다.

그러나 탈시설장애인당이 공식 선거기간 전까진 자진해산할 것이라 밝혔음에도 선관위는 정당이 아님에도 정당 명칭을 사용하며 정당과 후보자 성명을 명시한 현수막 등을 거는 행위가 정당법과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공문을 보냈다. 이에 탈시설장애인당은 코로나 시국에 거리에서 시위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비난받는 상황에서 선거를 앞두고 캠페인 하는 것을 막는 것은 장애인의 발언권을 빼앗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탈시설장애인당은 처음부터 정당 창당을 하지 않고 스스로 시한부 가짜 정당임을 표방하게 된 것일까?

현대 민주정치는 대의정치(代議政治)를 특징으로 하는데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수렴하고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하는 중요한 매개 역할을 정당이 수행한다. 국민의 다층적인 요구와 이해관계를 효율적으로 담아내기 위해서는 정당의 다양성 역시 담보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당을 만드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전국조직을 갖춰야 하고 물적 기반도 필요하다. 탈시설장애인당의 경우 정당을 만드는데 필요한 5000명이라는 숫자를 채우지 못했다. 탈시설장애인 당사자들이 나중이 아닌 당장 투쟁, 지금 당장 중증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는 정치를 갈구하고 있지만 현실에선 탈시설 장애인 자체가 5000명이 안되기 때문이다.

문재인정부 국정과제 42번이 탈시설 정책 추진이었지만 탈시설 정책 추진 상황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특히 코로나 19 사태 속에서 수용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실은 더욱 암담하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장애인거주시설 신아재활원의 경우 서울시가 긴급 분산조치한 지 사흘 만에 시설 거주 장애인들은 다시 복귀했다. 임시거주 공간 마련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긴급분산조치를 위한 매뉴얼이나 임시거주 공간 등 인프라도 없이 임시방편적 대책을 편 결과이다. 여전히 많은 장애인들이 지역이 아닌 시설에서 격리된 채 살고 있다.

최근 탈시설 장애인이 활동보조사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의 빈틈을 노려 탈시설을 가장한 가운데 중증장애인들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인권침해가 벌어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무조건 ‘탈시설’이 아니라 ‘제대로 된 탈시설 정책’이다.

인간다운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장애인 이동권의 확대 역시 갈 길이 멀다. 아직도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은 30%가 되지 않는다. 서울시 저상버스 도입률은 2020년 기준으로 58%인데 ‘제3차 서울시 교통약자편의증진계획’에 의하면 올해까지 서울 시내버스의 75%를 저상버스로 바꿔야 한다. 하지만 올해 서울시 장애인 이동권 예산은 오히려 대폭 삭감되었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서울 시내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예산은 책정하지 않았다. 당장 이동권에 심한 제약을 받고 있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자신들이 절박한 문제에 대해 정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장애인 이동권이나 건강권은 생존권과 연결되어 있다. 시설 거주 중증 장애인은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시설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상황이며 만 65세가 되어 활동보조 서비스가 중단되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장애인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정책의제는 선거철에만 반짝 동원되거나 혹은 시혜성 생색내기용으로 점철될 뿐 정작 중요한 이슈로 다루어지지 않고 후순위로 밀려나곤 했다. 장애인정책의제를 절박한 장애인 당사자들이 직접 소리 내어 요구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는 옛말이 있다. 하지만 정치의 존재이유는 목마른 사람들의 갈증에 공감하며 함께 우물을 파주는데 있지 않을까?

지금은 비록 가짜 정당이지만 앞으로 지역사회에 안정적으로 정착한 탈시설 장애인들이 더욱 많아져 진짜 정당으로 출범할 수 있기를, 그래서 이 정당이 장애인 이동권이나 건강권에 대한 현실적인 정책들을 내고 장애인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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