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진보 운동의 거목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별세했다. 향년 89세.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백 선생은 13살 때 남쪽으로 내려와 한국전쟁의 참상을 목격하며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다. 이후 그는 농민 운동, 빈민 운동, 노동 운동, 통일 운동,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부조리에 저항했다. 1974년 2월 박정희 정권의 긴급조치 1호 첫 위반자로 옥고를 치렀다.
1979년 11월24일 서울 중구 명동 YWCA 강당에서 열린 위장결혼식을 주도했다는 이유로 다시 옥고를 치른 백 소장은 이때 후일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로 쓰이게 되는 장편시 묏비나리를 썼다.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소설과 황석영이 묏비나리의 구절을 일부 빌어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를 썼다.
백 소장은 70년대, 80년대 박정희, 전두환 정권에 대항한 반독재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1987년 대선에서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고 양 김(김영삼, 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촉구하며 사퇴했다. 1992년 대선에서 다시 민중후보로 대선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백 소장은 최근까지도 자본주의의 부조리와, 통일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백 소장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벼랑을 거머쥔 솔뿌리여>, <우리 모두가 함께하는 백기완의 통일이야기>,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두 어른>, 시집 <젊은 날>, <이제 때는 왔다>, <백두산 천지>, <아, 나에게도> 등의 작품을 남겼다. 최근에는 2019년 <버선발 이야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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