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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금지법보다 분별 교육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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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뉴스 금지법보다 분별 교육이 먼저다

[김귀옥의 평화문화만들기] 가짜뉴스는 왜 만들어지는가

동네 70대 남자어르신이 화가 나서 단톡방(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카카오톡의 그룹대화방)을 빠져나갔다. 나와의 몇 번에 걸친 허위정보(가짜뉴스)와의 싸움 때문이었다. 5년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마음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시작한 동 주민센터 새벽 운동모임에서 만난 회원 중 한 사람이었다.

모임의 운동 성격 상 60대 이상이 대부분이라 나는 자연히 막내가 되었다. 막내인 나는 운동 단톡방도 만들어야 했다. 그는 평소에 권위주의적인 모습이 보이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모임 창립 회원이었기에 나는 그를 선배로 예의를 갖춰 대했다.

세대갈등을 낳은 허위정보

그런데 지난해 2월부터 코로나 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로 운동을 못하게 되자 운동시간이 되면 단톡방에서 회원들이 하루 인사를 하는 게 관례처럼 되었다. 2월 하순 신천지 신자들의 코로나 19 확진 이후 소위 '가짜뉴스'가 단톡방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남자 어르신이 '가짜뉴스'를 처음 올렸을 때는 그냥 지나쳤다. 며칠 후 다시 그는 그런 정보를 올렸다. 나는 다른 수 십명 되는 회원들 중에 몇 명이라도 그런 허위정보에 영향을 받을까봐 조심스럽게 그 정보는 '사실'이 아니라, 조작된 허위정보라는 것을 구체적인 사실을 입증하면서 알려 주었다. 물론 그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얼마가 지났다. 그가 다시 허위정보를 올리면서 빨갱이 탓, 대통령 탓을 했다. 의도적으로 허위정보를 올린 것으로 짐작하게 되었다. 또 팩트체크를 해서 왜 허위정보인가를 알려줬다. 그 결과 그는 내 나이가 몇 살인데, 젊은 사람에게 무시당했다면서 방을 빠져 나갔다.

이후 다른 창립멤버 여자 어르신이 그를 단톡방으로 다시 불렀다. 아마도 내게 사과하라는 뜻이었던 듯하다. 나도 더욱 예의를 차려 불쾌하게 할 의도는 전혀 없었고, 다만 허위정보를 진실로 받아들여 다른 곳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을까봐 걱정되어서 그랬다고 하며, 노여움을 푸시라고 말했다. 그 후 나는 단톡방을 빠져나오지는 않되, 클릭하지 않는 것으로 끝났다.

이와 유사한 일은 친척들과의 단톡방에서도 일어났다. 70대 이상의 친척 중에는 예의 반문(反文) 입장인 사람들이 다수였다. 간헐적으로 그들도 허위정보를 올리면서, 정부 비판가를 자처했다. 이들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촛불시위를 비난했던 사람들이었다.

정치적 입장의 차이에도 나름 흉금을 터놓는 사이였기에 몇 번 팩트체크를 해주면서 제발 '정체 불명확한 가짜뉴스를 퍼나르지 말라'고 부탁했다. 그들은 '(노인인) 내가 이게 가짜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 허위정보라는 것이 나름 유명한 수구 정치인 등의 발언을 인용하고, 간혹 외신뉴스를 인용한 일반 뉴스로 포장되어 있고, 기자 이름도 있는데, 무슨 '가짜뉴스'냐는 거였다.

더군다나 그들이 검색한 뉴스도 아니고, 친구들이 퍼 날라준 정보나 동영상이 아닌가. 정말 그들이 의도와 무관하게 허위정보를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알 기회는 없었다.

법으로 허위정보를 막을 수 있을까?

소위 가짜뉴스(fake news)라고 불리는 허위정보(disinformation)는 2016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당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유행시킨 소위 인포데믹(infodemic)이다.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인지라 허위정보가 차고 넘쳤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전후로 허위정보는 가짜뉴스로 명명되며 학교폭력으로부터 사회폭력, 정치폭력의 양상으로 심화됐다. 그 한 가운데에는 대중매체, 유튜브, 각종 SNS 등이 있었다.

돌아보면 가짜뉴스, 허위정보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근본적으로 성찰해보면 인간의 상상력과 불안, 호기심이 만들어낸 정보는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다. 지배권력자들의 지배이념이나 피지배세력의 저항이념도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 있다. 그러한 인식의 발견이 '탈진실'(Post-Truth)에도 담겨 있다. 기회가 되면 더 논의해보도록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을 폭도들의 반란쯤으로 간주했던 전두환 정부의 공식 입장과 정부의 보도지침에 갇혀 있던 관변 언론, 북한이나 진보 세력 등을 둘러싼 각종 유언비어, 루머, 언론사들의 오보 등을 둘러싼 진실 인정 투쟁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물론 자본주의적 이익을 추구해온 사이비과학으로 포장된 수많은 종류의 허위정보도 소비자들을 괴롭히거나 희생을 강요하기도 했다. 허위정보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까지 생기자, 정치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시민사회에서도 가짜뉴스, 허위정보를 엄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20대 국회에서 시작한 허위정보 금지법안이 21대 민주당이 다수의석이 되면서 '정보통신망개정법안'으로 나왔다. 시민사회의 여론 수렴을 거쳐 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영찬 의원의 대표발의(2020년 7월 22일)에 이어 박광온 의원 법안(2021년 1월 22일)에는 '불법정보에 대한 임시차단 등 요청 범위 확대,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불법정보 유통방지 책임자 배치, 불법정보와 관련된 당사자 간 분쟁의 조정을 위한 온라인분쟁조정위원회 설치, 불법정보의 처리에 관한 투명성 보고서 제출 등 불법정보로 인한 이용자의 피해를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한 제도적 절차를 마련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의 관리책임을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한편 쟁점이 되고 있는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거리를 남겨두고 있다.

허위정보 근절을 위한 민주시민 평화교육

그러나 과연 그러한 법이 시행되기만 하면, 허위정보는 사라질까? 노인세대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생들 역시 허위정보, 가짜뉴스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지 되묻고 있다. 심지어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폭 문화의 도구로 되어 있는 허위정보는 폭력이 아니라, '쾌락'의 원천으로 일상적인 놀이와 같이 문화화되고 있기도 하다.

수많은 가상현실의 공간에서 그러한 정보는 사실과 허위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상황에서 법 하나 만들었다고 허위정보를 근절시킬 수 있을까? 예로부터 '가짜'는 없어본 적이 없고, 모든 '가짜'라고 명명된 것들이 '악'인 것만도 아니었다. 권력에 따라 진짜와 가짜가 전복되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나 독재 정권에서 가짜로 규정되었던 사실들이 민주 정권이 되자, 진짜로 바뀌는 일들이 현재 한국 사회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만이 아니라, 부마민주항쟁을 포함한 수많은 민주화운동, 심지어 1970, 80년대 넘쳐났던 간첩(단)사건이 정부에 의한 조작이었던 것도 진짜와 가짜가 바뀌는 과정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학의 시비를 가리는 교육처럼 허위정보를 분별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좁은 의미에서 이러한 교육을 '비판적 매체 리터러시'(critical media literacy) 교육이라고 한다. 허위정보가 개인이나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심지어 그것에 의해 조장되는 폭력적인 상황으로 인해 어떤 희생을 당하게 되는지는 청소년, 청년, 노인층은 말할 것도 없고 일반시민들에게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

또한 우리는 흔히 언론은 공명정대, 정론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대단히 비현실적이며, 그러한 인식 자체가 허위정보를 사실로서 수용하게 만들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대중매체가 어떤 입장을 가지고 팩트, 뉴스, 정보를 생산하고 있는가를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또한 구체적으로 팩트체크를 할 뿐만 아니라, 사실의 역사적, 사회적, 정치경제적 맥락을 알려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때때로 팩트체크만으로는 진실이 드러나지 않는다. 팩트체크는 새로운 쟁점을 낳기도 하므로 더 넓은 교육이 필요하다.

물론 그러한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부터 재교육되어야 한다. 대중매체에 담긴 사실의 문제, 더 많은 정보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이나 정보가 어떤 의미이고, 왜 진실한 정보가 만들어져야 하는가, 사실과 상상력(허구)의 관계를 이해시킬 수 있는 교육이 가능해야 한다.

또한 누가, 왜 이러한 정보를 만드는가 등에 대한 이해 교육이 필요하다. 나아가 개인의 정서, 지향, 관심에 따라 사실이 왜곡되게 해석되고 수용되어서는 안되는 것도 교육되어야 한다. 상대가 밉고 싫다고 진실을 조작하여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폭력과 다름 아님을 알려줘야 한다.

이러한 교육이 바로 광의의 민주시민교육 또는 평화교육이다. 우선은 청소년, 청년들에게 비판적 리터리시 교육, 민주시민교육, 평화교육이 가능할 때 전체 사회적으로도 허위정보, 가짜뉴스가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사라질 수 있다.

그러한 교육과 환경이 자리잡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법으로만 해결하려 하면, 억압과 규제, 금지는 문화적 반동을 조장하게 될 터이고, 급기야 법을 무력화할 수도 있다. 비판적 리터러시가 가능한 민주시민교육을 시작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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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옥

김귀옥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월남민의 생활세계와 정체성: 속초'아바이마을'과 김제 '용지농원'을 중심으로>(1999)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성대 교양학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로 구술사 방법과 현지조사를 통해 분단과 전쟁, 여성과 민중, 이산가족과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로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구술사연구: 방법과 실천>, <그곳에 한국군'위안부'가 있었다>, <이산가족>(한국과 일본에 소개), <우리가 큰 바위얼굴이다>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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