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신중국의 탄생 이후 중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세계 2위의 경제력의 반열에 올라섰다. 이를 두고 <포린 어페어스> 편집장인 기던 로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대한 사건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리고 중국은 세계 최강국 미국을 빠르게 추적하고 있다.
혹자들의 눈에는 이런 중국이 잘 나가도 걱정이고 못 나가도 걱정이다. 일례로 펜타곤 최고의 전략가로 손꼽혔던 앤드류 마셜(Andrew W. Marshall)은 1999년 여름 펜타곤 관리들과 학자들, 그리고 전직 관리들을 불러 모아 <2025년의 아시아>라는 보고서를 작성했다.
보고서에서는 "안정적이고 강력한 중국은 지속적으로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에 도전할 것"이고, 반대로 "중국이 불안하고 약해지더라도 중국 지도자들이 외국을 상대로 한 군사 모험주의를 통해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위험할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20여 년 전에 나온 이러한 결론의 위세는 여전히 강하다.
미국은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오래된 질문이지만 바이든 행정부 들어 새롭게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1월 3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심각한 전략적 경쟁자(serious strategic competitor)"라고 부르면서 "미국의 국익에 기반한" 대중 전략을 펼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2월 4일 외교정책 연설에서 두 가지 방향을 밝혔다. 중국을 "미국의 가장 심각한 경쟁자"로 규정하면서도 "미국의 이익에 맞으면 중국과 협력할 준비도 돼 있다"고 밝힌 것이다. 2월 7일에 공개된 <CBS>와의 인터뷰에선 "극심한 경쟁이 있을 것"이라며, 국제 규범과 동맹 강화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겠다고 밝혔다.
더 긴 전문?
중국 견제에 미국의 초당적인 의지가 모아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은 <더 긴 전문 : 새로운 미국의 중국 전략을 위해 (The Longer Telegram : Toward A New American China Strategy)>라는 보고서를 내놨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냉전시대 미국의 소련에 대한 봉쇄 전략을 구상한 조지 케넌의 <긴 전문(Long Telegram)>을 본뜬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케넌이 'X'라는 익명으로 <포린 어페어스>에 기고한 것처럼 이 보고서 역시 익명으로 표기되었다. "중국에 대한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지는 전직 고위 관료"라는 설명과 함께.
보고서가 의도하는 바는 명확하다. 케넌이 75년 전에 소련을 이해하고 소련에 대응하기 위한 냉전시대 구상을 설계했던 것처럼, 미중 대립이라는 신냉전에 본격적으로 대비하기 위해서는 중국을 이해하고 대중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21세기 미국과 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유일하고도 가장 중요한 도전은 중국의 부상"이라며 "시진핑 주석의 중국이 점차 권위주의적 국가"로 변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즉, 중국 자체보다는 시진핑의 중국이 최대 도전이며 이것이 바로 미국의 전략적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과 지배 엘리트, 공산당과 정부, 그리고 공산당과 인민 사이에 균열이 존재할 수 있다며 이를 십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중국이 경쟁적인 질서를 만들려고 하는 것보다는 미국 주도의 자유주의적 국제질서의 틀 내에 순응하도록" 중국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주장한다. 내용적으로 보면 시진핑을 국가주석 대신에 "공산당 총서기"로 부르면서 중국 공산당을 최대 위협으로 간주한 트럼프 행정부와 흡사하다.
<더 긴 전문>은 미국의 사활적 이익을 6가지로 제시했다. △경제적·기술적 우위의 유지 △기축통화로서 미국 달러의 지구적 위상 보호 △압도적인 군사적 억제력 △강압적인 대만 통일을 비롯한 중국의 영토 확대 시도 예방 △동맹·우방 확대와 강화 △규칙에 기반한 자유주의적 질서의 보호와 개혁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또한 중국이 넘어서는 안 되는, 그래서 중국이 넘으면 미국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금지선(red line)'의 목록도 제시했다. △미국과 동맹국에 대한 중국의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를 이용한 군사공격이나 북한이 이들 무기를 사용하려는 것을 중국이 방치하는 것 △대만과 주변 해역에 대한 중국의 군사공격 △동중국해 및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의 일본에 대한 공격 △남중국해를 둘러싼 적대 행동 등이 그것들이다.
냉담한 반응
이에 대한 중국 전문가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중국국제문제연구소의 장텅쥔 부교수는 중국의 영자지 <글로벌타임스>를 통해 "중미 사이의 이념 갈등을 촉발시켜 신냉전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중국국제대학의 리하이동 교수는 <글로벌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중국 인민과 공산당, 그리고 지도자들은 공동의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과 인민을 분리시키려는 미국의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급격한 경제성장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 그리고 신속하고도 강력한 코로나 방역은 중국 인민들의 지지와 중국 공산당의 리더십이 어우러진 결과라며 미국이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어떠한 전략과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냉담한 반응은 서방 진영에서도 나오고 있다. 2007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정보국에서 동아시아 담당관을 지낸 폴 히어 내셔널 인터레스트 연구위원은 <더 긴 전문>의 담긴 내용이 "문제의 진단도 부정확할 뿐만 아니라 권고한 전략도 비현실적"로 비판했다.
히어는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하나는 <더 긴 전문>에 담긴 것처럼 중국은 중화주의적 세계 질서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적 자본주의와의 평화적 공존"을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중심의 권위주의적 세계 질서는 실현 가능하지도 않고 지속가능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역효과가 크다"는 점을 중국 지도자들도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더 긴 전문>이 시진핑 개인에게 너무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이 역시 오류라는 것이다. 히어는 시진핑과 이전 지도자들 사이의 단절보다는 연속성, 그리고 수십년에 걸친 중국의 부상이라는 관점에서 중국을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다 결정적으로는 시진핑이 아니었다면, 혹은 포스트 시진핑의 중국이 온건해지고 미중관계가 안정화될 것이라는 가정 자체가 "보고서의 가장 큰 문제"라는 것이다.
<더 긴 전문>을 비롯해 미국의 강경파들은 '대중 봉쇄'를 주창한다. 그렇다면 미국, 혹은 미국 주도의 민주주의 동맹체가 중국을 봉쇄할 수 있을까?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의 논설위원인 마틴 울프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불가능하다"고 진단한다.
먼저 "중국은 소련보다 훨씬 유능한 적대국"일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잠재력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2030년 이전에 미국의 GDP를 넘어서고 2050년에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GDP 합계를 능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이를 뒷받침해준다.
둘째로 "중국 경제는 국제적으로 통합"되어 있는데, 이는 "중국의 취약성의 근원"이자 "영향력의 근원"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 특히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은 미중관계에서 양자택일을 꺼려하고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 작년 말에 중국을 포함한 50개국들은 참여하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Treaty)을 체결했다. 또한 1월 초에는 중국-유럽연합 투자협정 체결을 미뤄달라는 바이든 인수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은 이 협정에 서명했다.
셋째로 "미국의 명성 쇠퇴"이다. 미국은 중국을 향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responsible stakeholder)"가 될 것을 요구하곤 했는데, 정작 "미국이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이냐"는 반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비난 트럼프 4년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거짓 명분으로 강행된 이라크 전쟁은 전쟁에 중독된 미국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 경제에 일대 타격을 가했다. 최근 미국을 비롯한 부자 나라들이 '백신 민족주의'에 앞장서 국제사회의 빈축을 사고 있는 것도 "책임 있는 이해관계자"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면 미국과 그 동맹국들은 중국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뤄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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