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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오사카 사이, '낀 도시' 나고야의 새로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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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와 오사카 사이, '낀 도시' 나고야의 새로운 가능성

[좋은 도시를 위하여] 나고야

한동안 일본은 한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일본 열도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 규슈까지 한국인 관광객이 없는 곳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고야라면?

한국인 중에 이 도시를 가고 싶은 곳으로 꼽거나 가봤다는 이들은 많지 않다. 가봤다고 해도 출장이나 유학으로 다녀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인만 그런 건 아니다. 많은 외국인에게 나고야는 썩 익숙한 곳이 아니다. 심지어 일본인에게도 그렇다. 일본 3대 도시권의 핵심 도시 중 하나인데 존재감은 참으로 미비하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도쿄 중심의 관동 지역, 오사카와 교토 중심의 관서 지역으로 나뉜다. 그 연원은 16세기 일본 통일 무렵까지 거슬러올라간다.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동군이 승리한다. 이들은 에도, 즉 오늘날의 도쿄에서 도쿠가와 막부를 중심으로 1868년 메이지 유신 시대까지 일본을 지배했다. 하지만 여전히 천황은 교토에 있었다. 그렇게 도쿄와 교토의 권력은 두 지역을 중심으로 유지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이 도쿄로 오면서 이 지역이 힘을 더 얻는 듯했지만, 19세기 말 일본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공업화에 박차를 가하고, 아시아를 향해 제국주의의 야심을 드러내면서 교토 인근 오사카가 공업 도시로 크게 발전해 이 지역 역시 힘을 더욱 강화해 나갔다.

이 두 거점의 중간 지역은 중경 또는 중부로 불리는데 나고야는 바로 이곳에 있다. 지리적으로는 오사카에 더 가깝지만 워낙 큰 패권을 차지하고 있는 도쿄와 교류가 더 많다. 그렇다고 나고야가 몸집이 작거나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니다.

2015년 조사에 의하면 도쿄 광역 지역에 3700만 명, 오사카 광역 지역에 1900만 명, 그리고 나고야 광역 지역에는 90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숫자를 비교하면 나고야의 덩치가 작아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로 꼽히는 시카고와 비슷한 숫자이고, 유럽의 도시였다면 5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오스트리아나 헝가리 인구와 비슷하다.

1603년 도쿠가와 막부가 전국을 통치할 당시 이 지역의 초기 권력 중심은 나고야 시 인근 기요스성이었다. 하지만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통치권을 받은 그의 아홉 번째 아들(도쿠가와 요시나오)은 항구 가까운 곳에 새로운 성을 지었다. 바로 1620년 완공한 나고야 성이다. 이로써 유리한 위치를 차지한 나고야는 무역과 상업을 통해 도시를 키워나갔고, 에도 시대 중요한 지역 도시로 꼽히게 되었다.

나고야의 성장은 20세기에 접어든 뒤에도 계속 이어졌다. 공업화와 도시화를 이어나가는 한편,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전투기를 비롯한 무기 생산지로 주목을 받았다. 이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크게 받기도 했지만 전쟁 이후 다시 한 번 자동차 산업으로 발판을 마련, 공업 중심의 산업 도시로 발전해 왔다.

일본의 전후 회복과 발전 전략은 수출에 주력하는 한편으로 중산층을 중심으로 내수를 키우는 것이었다. 이러한 전략의 일환으로 일본은 1964년 도쿄 올림픽과 1970년 오사카 엑스포를 개최했다. 두 가지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른 일본은 그 다음을 또 기획했다. 도쿄와 오사카에서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렀으니 이제는 제3의 도시인 나고야 차례였다. 1970년대 말부터 일본과 나고야는 1988년 하계 올림픽을 염두에 두고 본격적인 유치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1981년 올림픽위원회의 결정은 나고야가 아닌 서울이었다. 나고야의 충격과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도쿄와 오사카가 그랬듯 세계 무대에서 나고야의 존재감을 내세우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1988년 올림픽은 비록 서울에 빼앗겼지만, 나고야는 세계 무대에 존재감을 획득하기 위해 미국 보스턴 미술관과 협력해서 시내에 분관을 여는 등 여러 노력을 이어나갔다. 한편 일본 경제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극복하고, 1980년대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거품 경제를 거쳐 1990년대 장기 불황으로 접어들었다. 나고야는 일본의 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새로운 공항을 건설하고, 나고야 역 주변의 재개발을 진행하는 등 새로운 도약을 꿈꿨다. 이 과정에서 이 도시에는 이전과 다른 현상이 나타났다. 1990년대부터 나고야는 물론 인접 지역의 공장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계 브라질인들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국적의 노동자들이 나고야에서 일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를 겪으며 많은 외국인 노동자가 본국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나고야에 중요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주로 나고야 주변 공업 도시지만, 이들이 거주지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이들로 인해 나고야에는 뚜렷한 변화가 생겼다. 지하철을 포함해 시내 곳곳의 다국어 안내판에는 자연스럽게 포르투갈어가 나오고, 시내에는 브라질 음식점도 꽤 많이 있다.

▲나고야 시내 상가에 있는 브라질 음식점. ⓒ로버트 파우저

최근 20여 년 사이 전 세계적으로 도시 재생이 유행이다. 도시의 전통적 산업 기반이 위축되고 상권과 인구의 변화로 도시마다 쇠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드러나는 현상이다. 일본의 많은 도시 역시 예외가 아니다. 도요타 자동차 회사 같은 경쟁력 있는 대기업 중심으로 형성된 나고야 지역의 경제 구조는 다른 도시에 비해 좋은 상황이긴 하지만, 이곳에서도 도시 재생은 피해갈 수 없는 현상이다.

▲나고야항 지역 민간 단체가 운영하는 도시재생센터. ⓒ로버트 파우저

나고야의 경우 도시재생이 민간 단체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한때 사람들이 많았으나 쇠퇴하기 시작한 나고야 역 인근 엔도지(円頓寺) 상가는 2010년대 후반 젊은이들이 작은 가게와 공방을 차려 들어오기 시작해 활기를 되찾았다. 시내에서 꽤 멀리 떨어진 나고야 항구 인근은 소규모 공장들이 사라지면서 지역 상권이 함께 쇠퇴했으나, 2006년 무렵부터 여러 단체가 자발적으로 만든 협의회가 이곳의 비어 있는 상가의 활용 방안부터 주민들이 함께 하는 행사까지 기획하여 추진하고 있다.

▲엔도지 상가 행사 안내판. ⓒ로버트 파우저

▲엔도지 상가의 오래된 가게와 새로운 가게. ⓒ로버트 파우저

관광객들에게 존재감이 약한 도시, 도쿄와 교토 중간 지대라는 특징 없는 지리적 위치가 나고야의 약점처럼 여겨지곤 하지만, 나고야는 21세기에 맞는 변화를 모색 중이다. 그 변화는 어쩌면 바로 그 약점에서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급성장기와 거품 경제 시대에는 존재감을 향한 열망이 나고야를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이러한 열망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2027년 개통 예정인 초고속 철도 주오 신칸센이 달리기 시작하면 오늘날 1시간 40분 거리의 도쿄는 40분으로 가까워진다. 이로써 나고야는 명실상부 도쿄 광역 지역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이는 곧 대도시권 중심도시였던 나고야가 도쿄의 기능을 보완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보면 도쿄의 패권에 항복하는 셈이기도 하지만, 이로써 나고야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게 될 것이다.

나고야 변화의 또 한 축은 역시 2037년에 완성된다. 주오 신칸센이 오사카까지 연장될 예정이다. 오사카까지 17분 만에 갈 수 있게 된다면 나고야는 또 다시 도쿄와 오사카 사이를 연결하는 중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양쪽과 더 긴밀히 교류하면서 더 높은 삶의 질을 이 도시 시민들에게 제공하게 될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도시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우리는 모두 답을 모른다. 하지만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높이려는 열망 대신, 중간 지대로서의 장점을 잘 활용한다면 나고야는 정체성의 변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야말로 이 도시가 그 동안의 열등감에서 벗어나 시민들에게 훨씬 더 나은 미래를 희망으로 제시해줄 방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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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파우저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미국에서 독립학자로 활동하고 있는 로버트 파우저가 <프레시안>에 '좋은 도시를 위하여'라는 연재를 시작한다. 그는 <미래 시민의 조건>, <서촌 홀릭>, <외국어 전파담>과 <외국어 전파담 개정판>, <로버트 파우저의 도시탐구기>, <외국어 학습담> 등 인문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를 쓴 작가이기도 하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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