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부유층의 선의가 우리사회에서 화제가 되었다. 지난 8일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카카오 지난해 실적 발표를 하루 앞두고, 자신의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해 기부하겠다고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보유한 카카오 지분이 24.95% 정도라고 하니, 시장 가치 기준으로 평가하면 대략 10조 원이 조금 넘는다. 이에 언론은 최소 5조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국내 기부 역사상 최대란다. 물론 현재로서는 기부 의사를 밝힌 것뿐이어서 언제 어떤 방식으로 실제적인 기부가 이뤄질 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코로나19라는 재난이 역설적 계기가 되어 최대 실적을 낸 디지털 플랫폼 기업들 가운데에서도 다음카카오는 국내 최대 규모다. 시가 총액 기준으로는 다음 카카오는 랭킹 10위 안에, 그리고 2020년 기준 자산규모로 26위(10.6조), 계열사 수는 97개로 SK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과거 용어로 표현하자면, 재벌이다.
네이버 역시 시가 총액 10위 안에 있고 자산총액 9.5조로 재계 순위 41위다. 사상 최대 실적으로 낸 다음카카오가 성과를 나눈다면서 본사 전 직원 2619명에게 자사주 10주씩을 지급한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2월 5일 기준 가격으로 45만5000원이니 1인당 대략 455만 원에 해당하며 전체 규모로는 119억 원이다. 네이버를 비롯해서 코로나19로 실적이 좋은 플랫폼 기업, 통신 기업 등에서 유사한 성과 보상이 있기도 했다.
김범수 의장의 발표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자수성가한 '흙수저' 출신 기업가라는 '능력주의'적 서사가 부각되기도 하고, 그의 카톡 프로필 메시지인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기술기업 경영자의 면모가 관심을 받기도 한다. 이런 대목들은 오랫동안 부모에게 기업을 물려받아 경영해온 재벌 2세·3세와는 달리 뭔가 혁신적이고 진취적인 뉘앙스를 풍긴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거대기술 기업가들
첨단 IT기술을 기반으로 성장해 재계 반열에 오른 거대 기술 기업들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혁신'과 '진보'의 아이콘이 되는 경우는 흔하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와 구글 창업자들(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 피터 틸과 마크 저커버그, 제프 베조스와 마크 베니오프 등 저명한 기업가들은 혁신가이자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선구자로 여겨진다.
그들은 종종 스스로 미지의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기존의 정부 규제나 법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과감히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율규제' 능력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국내에서 '타다'의 규제 논란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유사하게 정부나 국회가 낡은 규제의 잣대를 들이대서 혁신을 망쳤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아울러 이들은 전통적인 기업들보다 사회에 대한 선의의 관심을 상당히 보여주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마크 저커버그, 일론 머스크, 트래비스 캘러닉(전 우버 최고경영자), 샘 앨트먼(Y 컴비네이터 창립자) 등 실리콘 밸리의 주요 기업가들은 미국에서 앞장서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들은 기술뿐만 아니라 환경이나 기후변화에까지 관심 영역을 넓히면서 진취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약 1억 달러 상금을 걸고 앞으로 4년 동안 탄소포집기술 경진대회를 열어 탄소포집기술개발 촉진에 기여하겠다고 발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는 전염병에 대한 관심을 넘어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매우 적극적으로 관심으로 가지고 최근 <기후재앙을 피하는 법(How to avoid a climate disaster)>이라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물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초부유층들이 기후변화에 관심을 보여주는 경향을 '그린리치(green rich)'라는 이름을 붙여 곱지 않게 보기도 한다. 일례로 온실가스를 뿜어대는 개인 제트기를 1500대나 동원해서 스위스 다보스에 모여 부자들의 포럼을 열면서, 기후위기 논의를 하는 것이 얼마나 위선적인가 하는 비판도 있기는 하다(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으로 열렸다). 또한 전부는 아니지만, 이들이 주로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제창하는 것이 탄소포집기술이나 지구공학과 같은 비현실적인 기술주의적 해법이고, 실제로 생태적 사회로의 전환과 같은 제도적 해법에 대해서는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것이 지적되기도 한다.
온화한 금권주의(benign plutocracy) 대신 규칙을 지키는 기업가로
힘들게 번 돈을 사회에 기부하려는 의지, 기본소득과 같은 전진적인 사회복지에 보이는 호의, 기후위기에 대한 문제의식에 대한 공감 등 기술기업 기업가들의 새로운(?) 면모를 환영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긍정적으로 평가받아 마땅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아주 상식적인 궁금함이 제기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지 않을까? 이들이 사회에 기울이는 관심과 행동을 볼 때, 적어도 기업의 유일한 목적은 수익 추구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강변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사회에 기여하는 기본적인 방법은,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규제를 잘 지키고, 세금을 잘 내며, 직원과 협력사를 포함한 이해관계자들을 존중하고 평등하게 대하는 것이지 않을까?
코로나19로 인해 현재 'K자 양극화'라는 진단 그대로, 일부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훨씬 좋은 실적을 내기도 하지만 압도적으로 많은 서민들은 일자리와 소득손실이 심각한 상황이다. 그런데 다음 카카오나 네이버, 배달의민족 같은 플랫폼 기업들은 K자 곡선의 상승 쪽에 해당한다. 이런 상황에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재난 연대세' 등이 현재 시점에서, 재난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보는 기업들이 사회공헌을 할 적절한 제도의 틀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선의의 혁신 기업가들도 여기에 일언반구 동조하는 모습을 찾기가 어렵다.
전 세계적으로 '혁신적'이라고 하는 플랫폼 기업들이야말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자금을 조세 회피 지역으로 빼돌리면서 세금을 적게 내디 위해 노력하고, 가장 막대한 로비집단을 구성해서 정치권에 로비를 했으며, 직장 내 차별적인 행위나 후진적 노동 감수성을 보이기도 했다. 저널리스트 라나 포루하(Rana Foroohar)는 그의 책 <돈 비 이블, 사악해진 빅테크 그 이후(Don't Be Evil)>(김현정 옮김, 세종서적 펴냄)에서, 자칭 세상을 바꾸는 혁신 기술 기업들의 이런 행태를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기도 했다.
또한 거대기술기업들이 정말 사회적 기여를 하고 싶다면 자신들의 기업내부와, 협력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파격적인 노동시간 단축이나, 노동 스트레스 해소, 파격적인 그들의 권리보장에 더 눈을 돌릴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혁신적 기술기업가들은 이 점에서도 그다지 혁신적이지 못하다. 약 200여 명이 구글 직원들은 지난 1월 5일 실리콘 밸리 거대 기술 기업 중 처음이자 회사 역사상 최초로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이미 19세기에 합법적 지위를 얻은 노동조합을 만들기 위해 구글 직원들은, "첩보영화처럼 매우 비밀리에 일대일로 사람을 만나고, 조합에 대한 얘기를 매우 조심스럽게 꺼내야만 했다. 그리고 누구에게 우리의 어떤 이야기를 언제 꺼내야 할지 많은 생각이 필요"했다고 한다.
왜 기업은 늘 '주식회사'이어야만 하는가?
물론 한국에서는 지난 2018년에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노동조합이 만들어졌고 라이더유니온 등 배달 노동조합도 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혹자는 이렇게 타박할지 모른다. 왜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하는 첨단 기술기업에서 낡은 노동관점을 가지고 뻔한 노동조합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이들에게는 노동조합이라는 사회적 조직 방식조차 혁신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묻고 싶다. 그토록 어마어마한 혁신을 한다는 기술 기업가들이 왜 다른 것들은 그토록 '창조적'으로 하고 '혁신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하면서, 왜 기업의 형식은 500년 전쯤에 네덜란드인들이 만들었던 '주식회사' 형태밖에 만들지 못하냐고. 왜 유니콘 기업이 되고 기업이 성공하면 그 수익이 주주들에게만 귀속되는 '낡은' 기업 방식만 고집하냐고. 기업의 모습이 주식회사로 여전히 남는 이상 노동자 조직의 모습이 노동조합으로 남는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물론 드물게 주주자본주의 모델보다는 그나마 나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주장하는 기업가들도 있다. 세일즈포스 경영자 마크 베니오프(Marc Benioff)가 그런 인물의 한 사람이다. 베니오프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밝힌다.
그래서 베니오프가 이해관계자 원칙을 자신의 기업 세일즈포스에 어떻게 구현했을까? 여기 하나의 사례가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18년 멕시코 국경에서 이민자의 아이들을 부모들과 떼어놓자 수많은 미국 시민이 분노했다. 세일즈포스 직원들도 그랬는데, 하필 세일즈포스가 미국 이민국에 소프트웨어를 팔았던 모양이다. 직원들이 베니오프에게 당장 계약을 철회라고 했지만, 베니오프가 한 일은 기업 안에 '윤리 및 인도적 사용부서'를 신설한 것 정도란다. 물론 경영자 개인 베니오프는 훌륭하다 생각한다. 하지만 이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라고 주장하면 곤란하지 않을까?
그럼 어떻게 하냐고? 앞서 말한 대로 간단하다. 시민들이 혁신적인 기술 기업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온화한 금권주의'에서 비롯한 자선 같은 것이 아니다. 그저 다른 이들과 똑같이 적절한 규제를 받아들이고, 내야 할 세금을 제대로 내고, 직원들과 이해관계자들의 노동권을 법에 명시된 그대로 보장해주면 된다. 어쩌면 시민들이 거대 기업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혁신적이고 자비로운 기업가가 아니라 상식적인 기업가를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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