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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집에 맡긴 수험생 딸, 친척에 성폭력 당한 사실을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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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집에 맡긴 수험생 딸, 친척에 성폭력 당한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2] 열두 번째 이야기, 친족 성폭력 신고, '오늘'이 가장 빠른 날

한 중년 여성이 찾아왔다. 마음고생의 흔적이 역력한 얼굴에, 망설임이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빠듯한 살림에 맞벌이를 하느라 딸에게 신경을 많이 쓰지 못했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

"딸은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고 싶어 했다. 수험생활을 직접 뒷바라지하기 어려워 친척집에 맡겼다. 딸은 친척집에서 고등학교를 다녔고, 거리가 꽤 떨어진 대학으로 진학하며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겠다면서 친척집을 나왔다. 딸이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돼서야 친척에게 심각한 성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고,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고등학생인 딸이 의탁한 곳이고, 금전적으로 신세를 진 일도 적지 않다 보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엄마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망설이는 사이 딸은 엄마에 대한 실망이 컸던 것 같다. 모녀 관계마저 소원해졌다. 이대로 두고 볼 수만은 없어서 딸을 붙잡고 차라리 고소를 하자고 말했다. 그날, 분을 참지 못하고 가해자에게도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날 이후 친인척들이 찾아와 고소를 만류하기 시작했다. 딸에게 직접적으로 위협적인 말을 하는 이도 있었다."

중년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이대로 고소해도 괜찮을지 몰라 찾아왔다"고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피해자에게, 가해자는 여느 친척 어른 중 한 명이 아니라 실질적인 보호자였다. 가해자는 피해자에게 이것저것 알려준다는 핑계로 몸을 밀착시킨다거나, 점검 등을 빙자하여 스스로 탈의하도록 만들거나, 피해자로 하여금 가해자의 신체 일부를 만지도록 시켰다. 그럴 때마다 가해자는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이유를 늘어놓았고 피해자가 스스로 한 행동임을 각인시켰다. 가해자는 자신이 피해자의 부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를 자주 이야기했다. 가해자는 성폭력을 한 날에는 피해자에게 돈을 쥐여줬다. 얼결에 한두 번 받아든 돈은 피해자에게 자책과 부끄러움의 씨앗이 되었다. 피해가 몇 번 반복된 후로는, 피해자는 신고해도 소용없다고 포기했던 것 같다.

이처럼 피해자가 아동·청소년 시절 보호자 지위의 성인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고도 부모에게 바로 말하지 못하는 사건 상당수는, 피해자의 부모가 취약한 지위에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뒤늦게 피해자로부터 피해 사실을 전해 들었는데 그 피해가 지속되고 있지 않다면, 피해자의 부모 중 상당수가 분노한 정도와는 또 다르게 실제적인 법적 조치를 하는 것 또한 망설이게 된다. 여기에는 가해자에 대한 사회·경제적 의존관계나 가해자와도 직접적인 혈연 간인지와 같은 이해관계가 결부된다.

문제는 피해자가 받는 상처다. 이런 망설임은 고소를 저해하게 하거나 자칫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소 계획을 미리 알려 대비하게 만드는 일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피해자가 상처를 입는 것을 넘어 보다 구체적인 피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사건에서 가장 빠른 대응과 조치는 바로 '오늘'이다. 살아야 하는 날 중 피해자의 기억이 가장 온전한 날도 바로 '오늘'이다.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맞춰 무엇이 남아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고 수사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러니 '오늘'은 너무 늦은 날이 아니라 가장 빠른 날이다.

어린 나이에 열악한 지위에서 친족 성폭력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바로 알리지 못한 채 피해 사실을 끌어안고 성장한다. 이 같은 성장은 치유를 동반하지 않는다. 대게의 피해자들이 평생 우울증을 앓으며 살아간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입은 피해를 뒤늦게 알게 된 이후 불안하고 무기력하겠지만, 모르고 지낸 시간이나 알고도 망설인 시간은 그 불안함과 무력함은 피해자에게 고스란히 떠넘기는 게 된다.

사건의 해결은 어떤 일이 있어서 같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함께 해결해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는 시작점에 같이 서는 일임을 환기해야 한다. 너무 늦은 때라는 것은 없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느냐보다 '오늘'을 딛고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피해자의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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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의

이은의 변호사(ppjasmine@nate.com)는 이은의 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위 글의 내용에 대한 추가적인 문의 사항이나 법률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메일이나 아래 전화로 연락을 주십시오. (평일 오전 9시 30분~오후 6시 : 02-597-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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