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남녀가 노래방에서 술을 마시며 놀았다. 남성 이기태(가명) 씨는 노래방에서 여성(20세)이 만취 상태가 되자, 동의 없이 인근 모텔로 끌고 갔다.
이 씨는 술에 취한 여성을 강간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여성은 이 씨를 손으로 밀치며 소리쳤다.
이 씨는 손바닥으로 여성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머리를 쳤다. 여성은 화장실로 도망가려 했지만, 이 씨가 폭력으로 막았다. 그는 또 여성을 강간했다. 이 씨는 그 모습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여성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씨는 재판에 넘겨졌다.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 제1형사부(재판장 이언학)는 강간상해 및 성폭력범죄 처벌에 등에 관한 특례법(카메라 등 이용 촬영)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이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2017년 9월 15일 선고했다.
재판부는 가해 남성의 어린 나이와 반성하는 태도를 양형에 반영했다. 판결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강간 범죄를 저지른 그때, 이 씨에겐 여자친구 강하연(가명)이 있었다. 이 씨는 강간 범죄를 다음날,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강 씨와 데이트를 했다. 강 씨는 남자친구의 범죄사실을 약 한 달 뒤에 알았다.
법정에선 “반성한다“고 한 가해자 이 씨. 여자친구에겐 부끄럽지 않은지 이렇게 반문했다.
강 씨는 성폭행 가해자 이 씨와 곧 헤어졌다. 분노와 배신감이 풀리지 않았을까, 아니면 "매우 폭력적인" 수법으로 한 여성을 강간하고 동영상까지 촬영했는데도 고작 "징역 3년-집행유예 5년"을 선고한 법원에 실망한 탓일까.
강 씨는 이 씨와 이별 뒤 약 1년여가 흐른 뒤인 2018년 7월 27일 약 30명이 있는 SNS 단체 대화방에 이런 글을 올렸다.
강 씨는 다음 달에도 한 온라인 카페에 비슷한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강 씨는 인터넷 사이트에 비슷한 내용의 글을 총 21번 올렸다. 성폭력 가해자 이 씨는 전 여자친구 강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2018년 9월 18일 고소했다.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강 씨를 기소했다. 법원은 강 씨의 행동을 유죄로 판단했다.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판사 정용석)은 2019년 9월 18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받는 강 씨에게 벌금 30만 원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다른 사례도 보자.
남성 A와 여성 B는 술을 마셨다. B가 술에 취해 잠들자, 남성 A는 이 여성을 강간했다. A는 준강간 혐의로 기소돼 2017년 12월 재판에 넘겨졌다. A는 OO도청에서 일했다.
1심 공판이 진행된 다음날인 2018년 3월 16일, 피해 여성 아버지는 OO도청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남겼다.
재판부는 A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2018년 5월 3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A가 공동상해죄로 벌금 70만 원의 형을 선고받은 적 외에 다른 범죄 전력이 없는 점, 피해자가 합의 후 피고인의 처벌을 원하지 않은 점 등을 참작해 형을 감경했다.
이후 B의 아버지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검찰은 도청 온라인 게시판에 A의 이름을 밝힌 피해자의 아버지를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2019년 10월 30일, 벌금 50만 원 형을 선고했다. B의 아버지는 항소했지만, 2심에서 기각됐다. 판결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두 사례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 번째 사례의 여자친구, 두 번째 사례의 피해자 아버지는 성폭력 사건 직접 피해자가 아니다. 각각 가해자, 피해자와 친밀한 관계지만, 엄밀히 따지면 이들은 ‘제3자‘다.
앞 사례의 여자친구는 가해자와 헤어지고 1년 뒤에 인터넷 등에 전 남자친구의 강간 범죄를 폭로했다. 뒤 사례의 피해자 아버지는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강간 가해자‘의 실체를 그의 직장 게시판에 올렸다.
둘은 강간 가해자 이름 등을 인터넷에, 그것도 가해자를 아는 사람이 많은 공간에 올렸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됐다. 현행법상, 둘이 무죄를 선고 받으려면 자신들의 행위가 공익을 위한 것임을 입증해야 했는데, 법원은 둘의 행동은 공익과 무관하며 그에 따라 유죄가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사실을 말한’ 두 사람을 형사 처벌하는 게 맞을까?
사람마다 판단이 다를 테지만, 한 가지 짚어볼 게 있다. 과연 ‘공익성‘을 어떻게 평가하고 판단하느냐 하는 문제다. 가위로 종이를 자르는 것처럼, 공익의 범위를 명확히 구분하고 제단하긴 어렵다. 어디까지가 공익이고, 어디서부터는 공익이 아닌지 그 기준과 경계가 모호하다.
국가가 개인에게 형벌권을 행사할 땐, 명확한 법률에 근거해야 하는 건 형법의 기본 원칙이다. 어떤 행위가 위법인지, 해당 행위를 하면 어떤 형벌을 받는지가 미리 법률로 정해져 있어야만 한다. 이런 죄형법정주의 원칙으로 볼 때, 모호한 ‘공익성‘으로 유무죄가 갈리고 사람을 처벌하는 건 그 자체로 모순이 아닐까?
물론, 아무리 사실이어도 누군가의 범죄 이력, 부도덕 행위, 감추고 싶은 사생활 등을 주변 불특정 다수에게 알리는 행위는 인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존속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사생활 침해도 우려한다.
위에서 언급한 두 사람의 행위는 유쾌하거나 기분 좋은 일로 보기 어렵다. 경우에 따라선, 타인에게 권장할 만한 일도 아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폭로와 표현을 형벌로 다스리는 건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대원칙과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는 건 아닐까?
무엇보다 허위가 아닌 사실을 말했는데 말이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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