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의약품안전처가 셀트리온이 개발한 코로나19 항체치료제 렉키로나주(CT-P59)의 검증결과를 18일 발표했다. 이 약을 투여받은 환자는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코로나19 감염 후 사흘가량 더 빨리 회복했다.
이에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코로나19치료제·백신의 안전성·효과 검증 자문단은 식약처에 렉키로나주 3상 임상시험 수행을 전제로 품목 허가를 제안했다. 즉, 조건부로 렉키로나주를 치료제로 사용하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항체치료제 자체가 백신과 같이 '게임체인저'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히 확인된 만큼, 국내 정치권을 중심으로 금융 시장에 이르기까지 그간 과도한 희망을 부풀려 온 상황은 반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의료계로부터 강하게 제기됐다.
식약처 "렉키로나주 투여 환자, 코로나19 회복 시간 사흘가량 단축"
이날 식약처가 발표한 내용을 보면, 경증에서 중등증 소견을 보인 코로나19 확진자 3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글로벌 임상 2상 결과 렉키로나주를 투여받은 환자는 코로나19 증상으로부터 회복에 걸리는 시간이 5.34일 소요되었고, 위약을 투여받은 환자는 8.77일 소요됐다.
렉키로나주 치료를 받은 환자가 그렇지 않은 환자보다 약 3.43일 정도 빨리 코로나19 감염으로부터 회복했다.
김상봉 식약처 바이오생약국장은 "검증자문단이 이 약을 투여함으로써 코로나19 증상이 개선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유의성이 있어 임상적으로 의의가 있는 결과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렉키로나주의 작동 원리를 수치로 보여주는 바이러스 음전 소요 시간(바이러스가 양성에서 음성으로 전환되는 시간)은 유의미하게 관측되지 않았다.
식약처는 렉키로나주를 투여할 경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인체 세포와 결합하는 대신 이 약과 결합해 인체 감염이 억제되는 지를 확인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약을 투여받은 사람의 비인두검체를 채취해 음전소요 시간을 측정하고, 약을 투여받은 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 음전소요 시간 단축 유무를 비교평가했다.
그 결과, 투약환자와 그렇지 않은 환자 간 바이러스 음전소요 시간 상 유의미한 차이는 확인되지 않았다.
검증자문단은 비록 해당 결과가 통계적으로 유의미하지는 않지만 "렉키로나주 투여 후 체내 바이러스 농도 감소 경향은 관찰됐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바이러스 측정방법이 표준화되지 않았고, 시험 결과 간 편차가 커, 바이러스 음전소요 시간 결과는 임상적으로 큰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약의 부작용은 특별히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렉키로나주 투여 28일이 경과한 시점까지 환자에게서 발생한 이상 사례 등을 조사한 결과, 고중성지방혈증, 고칼슘혈증 등 1상 임상시험에서 이미 확인된 사례가 일부 나타났으며, 경미하거나 중등증 정도의 이상 사례가 일부 확인되긴 했으나, 생명을 위협하는 중대한 이상 사례는 없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과를 바탕으로 검증자문단은 식약처에 렉키로나주의 임상 3상 수행을 전제로 품목허가를 낼 것을 제안했다. 더불어 실내 공기에서 산소포화도가 94%를 초과하는 자, 보조 산소 공급이 필요하지 않은 자, 투여 전 7일 이내에 증상이 발현한 자 중 경증에서 중등증을 보인 환자의 임상 증상 개선을 제안했다.
아울러 3상에서는 충분한 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렉키로나주를 투여할 경우 경증~중등증 환자가 중증으로 이환되는 상황이 유의미하게 감소하는지를 확증해야 한다고도 권고했다.
투명한 정보 공개해야...'치료제 정치'는 그만
이 같은 임상 결과는 이미 어느 정도 예측된 바다. 애초 임상 2상 결과를 토대로 렉키로나주가 경증과 중등증 환자의 회복시간 단축에 효과를 발휘할 뿐, 중증 환자 치료에 뚜렷한 효과가 없다는 점은 밝혀졌다.
그럼에도 특히 여당과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 약이 마치 '게임체인저'인양 홍보된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 의료계로부터 나왔다.
이날 의료계 6개 단체의 연합체인 건강권실현을위한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을 내 "항체치료제는 그 한계에 비해 그간 지나친 기대를 받아 왔다"며 "이는 정부가 부추긴 측면이 크다"고 비판했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여러 차례 셀트리온을 직접 언급하며 국내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의 의의를 강조해 왔다.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국산) 치료제가 상용화된다면 대한민국은 방역·백신·치료제 세 박자를 모두 갖춘 코로나 극복 모범국가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지난해 12월 22일 인천 연수구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환자들을 잘 치료하는 특효약이 개발된다면 우리나라가 코로나19를 성공적으로 극복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며 치료제의 의의를 높이 평가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또한 지난해 10월 18일 셀트리온 2공장을 방문해 "셀트리온을 비롯한 국내 기업들이 강력한 치료제를 조기에 대량 생산하면 우리는 코로나19를 조기 종식하고 세계 최초의 코로나19 청정국이 될 수 있다"며 치료제를 향한 기대감을 부풀렸다.
실제 '게임체인저'는 백신이 유일하지만, 특히 중증 환자도 아닌 경증 환자를 대상으로 개발된 치료제의 의의를 정치권이 앞다퉈 부풀렸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과학의 영역에 정치가 근거 없이 개입"했다며 "이 때문에 연구가 진실되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의구심도 완전히 지우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정치권이 치료제에만 목을 매면서 "정부여당이 병상과 의료인력 문제에는 소홀"한 것 아니냐며 "지금까지 사람이 죽어간 것은 치료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적 수액치료와 산소치료를 하지 못해서"라고 꼬집었다.
렉키로나주 개발에 셀트리온뿐만 아니라 질병관리청 국립보건연구원도 참여한 만큼, 질병청이 해당 치료제 연구 결과를 공개해야 한다고 보건의료단체연합은 강조했다. 셀트리온만의 성과가 아닌, 국민 세금이 투입된 결과물인 만큼 국민이 해당 개발 내역을 상세히 알아야 한다는 이유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현재까지 알려진 것은 셀트리온이 발표한 짧은 보도자료와 렉키로나주 임상에 관한 학술대회 발표가 전부"라며 "투명하고 과학적으로 연구성과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동료평가가 이뤄진 논문이 발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미국은 NIH(국립보건원)가 공동으로 연구한 코로나19 치료제인 렘데시비르의 논문 및 보고서를 공개하였으며, 그 외에도 NIH가 연구에 참여한 모든 치료제 임상자료는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오후 3시 40분 현재 셀트리온 주가는 전날보다 4.56% 하락한 31만4000원이다. 식약처의 검증 발표를 앞둔 이날 오전까지도 셀트리온 주가가 강세를 유지하리라는 증권가 전망이 줄을 이었으나, 실제 주가는 예측치와 달리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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