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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 없이도 폭설 속 눈길 달리는 배달 노동자, 이것이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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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시 없이도 폭설 속 눈길 달리는 배달 노동자, 이것이 혁신?

[기자의 눈] 배달 플랫폼, 공유 경제라는 달콤한 거짓말

"00은 파트너님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도로상황으로 중단됐던 서울지역 서비스를 오후 1시부터 제한적으로 재개합니다. 현재도 도로상황이 좋지 않으니 안전에 각별히 유의하시어 진행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간밤에 내린 폭설로 잠정 중단된 배달앱 서비스가 다시 진행된다. 배달앱이 배달 노동자들의 안전을 걱정해서 서비스를 중단한 것은 아니다. 폭설로 배달 주문은 늘어나는 반면, 마찬가지로 폭설로 배달 노동자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은 6일 페이스북에 "현재 곳곳에서 라이더들이 넘어지거나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 고립됐다"며 "혼자 넘어진 것도 산재로 인정된다"고 공지했다. 이들은 7일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각 배달앱에 배달 서비스 중단을 요구했다.

▲ 폭설 속에 배달하는 노동자. ⓒ연합뉴스

눈이 와도 목숨 걸고 달려야하는 배달 노동자들

눈이 온 다음 날이 더 위험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배달앱 서비스가 재개되면서 두 발로 달리는 배달 노동자들 상당수가 다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배민라이더스나 쿠팡이츠의 경우, 배달 노동자에게 의무적으로 산업재해 보험을 가입하도록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른 배달대행업체들은 대부분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은 상황이다.

물론, 배달 노동자는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지 않아도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전속성, 즉 자신이 일하는 배달앱 업무만을 수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대다수 배달 노동자는 여러 앱을 동시에 켜고 배달이 들어오는 대로 배달을 하는 식이다. 그렇기에 전속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설사 여기에 부합한다 해도 과연 몇 명의 배달 노동자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산재를 신청할지는 의문이다.

지난 8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산하 디지털 전환과 노동의 미래위원회가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조사 대상 플랫폼 배달 종사자 가운데 산재보험 가입자의 비율은 0.4%에 불과했다. 산재보험 미가입자는 92.5%나 됐다. 나머지는 자신이 산재보험에 가입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더구나 지난 1년 동안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고 답한 플랫폼 배달 종사자는 38.9%나 됐다.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탓에 플랫폼 배달 종사자는 사고가 났을 때 본인 치료와 오토바이 수리비용을 스스로 부담한다는 응답은 87.4%에 달했다.

그나마 오토바이 보험을 들면 치료비와 수리비 등을 보상받을 수 있다. 다만 이 보험료가 만만치 않다. 라이더가 가입할 수 있는 오토바이 보험은 책임보험과 종합보험 두 가지다. 책임보험은 라이더가 사고를 냈을 경우, 상대방의 피해를 보상하는 제도다. 의무로 가입해야 한다. 반면 종합보험은 의무가입이 아닌 반면, 타인만 아니라 라이더 본인의 피해도 보상해준다.

문제는 종합보험 비용이 상당하다는 점이다. 평균적으로 종합보험료는 1년에 약 200만 원 정도 된다. 나이가 어리고, 오토바이 경력이 적을수록 이 금액은 더욱 올라간다. 자연히 라이더의 가입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100명 중 6명 정도만이 종합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다 보니 일하다 다칠 경우, 병원비는 고사하고, 천문학적인 오토바이 수리비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까지 생긴다. 다친 부위가 중할 경우에는 몇 주 동안 일 자체를 하지 못한다. 쉬는 동안 수입이 '제로'인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배달 플랫폼, 공유 경제라는 달콤한 거짓말

혹자는 폭설이나 폭우가 내리는 날씨에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배달을 해야 하느냐며 사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린다. 하지만 건당 가격으로, 하루 벌어먹고 사는 배달 노동자 입장에서는 날씨가 좋지 않다고 일을 쉬기는 어렵다. 아르바이트식으로 배달 일을 한다면, 쉬는 게 가능할지 모르나, 한 집안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의 배달 플랫폼을 두고 혹자는 '공유 경제'라고 주장한다. 이런 공유 경제의 요체는 거대한 공유 플랫폼을 이용해 '노동자도 사장님이 될 수 있다'는 달콤한 표현에 있다. 업무 일정을 자유롭게 짤 수 있고, 업무 내용도 선택할 수 있다고 한다. 월급 받는 날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일한 만큼 돈을 벌수 있다고 덧붙인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의문이다. 이 주장들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배달 플랫폼 종사 노동자들 대다수는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서 배달앱에서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달리 선택할 여지가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최선을 택한 셈이다.

정규직 일자리가 단기 임시직 일자리로, 원청 노동자에서 하청, 파견 노동자로 바뀌어 온 한국 노동 구조 속에서 예전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한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결과는 불확실해졌다는 게 중론이다. 노동 유연화의 끝자락에 와있는 셈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노동자들이 선택할 여지는 거의 없다. 그나마 열심히 일하면 돈이라도 더 많이 받는 배달앱을 선택하는 이유다.

배달앱이 말 그대로 쉬고 싶을 때 쉬고, 일하고 싶을 때 일하는 이들에게는 꿈의 일자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생계를 이어가야 하는 노동자에게는 다르게 다가온다. 전통적으로 주어지는 노동자의 권리가 빠지고 암묵적인 의무만이 주어지기에 꿈의 일자리는 될 수 없다.

배달 플랫폼은 노동자에게 위험을 넘길 뿐만 아니라, 경제적 위험까지도 떠넘기는 식이다. 산재보험, 고용보험 등에 가입되지 않는 게 대표적이다.

이는 유럽의 초기 산업사회에 등장한 공장들이 보여준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농업에서 공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당시에는 일감을 집으로 가져와서 작업을 한 뒤, 그에 따라 돈을 받는 식이었다. 그렇다보니 노동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상관없이 만든 생산품 건수 당 임금을 받았다. 일하다 다쳐도 오로지 노동자의 책임이었다. 일감이 끊기면 다른 일을 찾아야 했다. 그런 초기 산업화 시대로 우리 사회가 회귀했다고 느끼는 건 기자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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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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