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국적의 케미컬 운반선이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이란의 혁명수비대에 의해 나포되면서, 그 배경과 상황 전개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사건은 미국과 이란의 긴장이 고조되는 와중에 발생했다.
일단 이란 정부는 해당 선박이 "해양 환경법을 위반"해 나포한 것이며, 이에 따라 "이번 사건은 사법 당국이 다루게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선사인 디엠쉽핑은 소속 선박이 환경오염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국내외 일각에선 다른 해석도 내놓고 있다. 이란이 한국의 은행 두 곳에 묶인 70억 달러 규모의 원유 수출 대금을 돌려받기 위한 정치적 계산의 일환으로 나포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이란의 조치가 이런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상황 전개는 대단히 복잡해질 수 있다. 결국 나포된 선박의 석방을 비롯한 한국과 이란의 양자 관계가 이란 핵협정의 앞날에 상당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국내 은행들의 이란 원유 수출 대금의 지급 동결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부과한 이란 제재를 위반할 경우 세컨더리 보이콧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제재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한 다음 부과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이란이 우라늄 농축 농도를 20%까지 높이겠다고 선언한 직후 한국 선박을 억류한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라늄 농축 상향 조치의 의도는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의 발언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그는 우라늄 농축 상향 조치가 "핵 합의의 몇몇 당사자들의 합의 위반에 대한 대응 조치"라며 "우리의 조치는 모든 당사자들의 합의 이행에 따라 완전히 되돌릴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즉, 미국이 제재를 풀고 핵협정에 복귀하면 이란도 다시 핵협정을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하나는 퇴임을 보름 앞둔 트럼프 행정부가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 핵추진 항공모함 및 잠수함, 그리고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해왔다. 이 와중에 이란의 우라늄 농축 상향 조치가 나오자 이스라엘의 벤자민 네타냐후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 핵시설에 대한 정밀 타격을 고려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자칫 전쟁 위기가 도래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 위기가 무사히 넘어가도 문제는 남는다. 취임을 앞둔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는 "이란이 핵협정을 준수한다면, 후속협상의 출발점으로 핵협정에 다시 가입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 이란의 우라늄 농축 상향 조치는 트럼프의 이란 핵협정 탈퇴 이후 가장 중대한 합의 위반에 해당된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하나는 핵협정에는 우라늄 농축 상한선이 3.67%로 명시되었는데, 이란 정부는 2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참고로 핵무기급 우라늄의 농축도는 90% 이상인데, 20%에서 90%로 가는 것은 비교적 단시간 내에 가능하다. 또 하나는 핵협정에선 포르도 농축 시설에선 농축·연구·핵물질 저장을 금지하기로 했는데, 20%로 우라늄 농축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곳이 바로 포르도라는 점이다.
이러한 이란의 조치는 미국의 일방적인 핵협정 탈퇴와 제재 부과에 항의하고 출범을 앞둔 바이든 행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바이든은 핵협정 복귀를 약속하면서도 "이란이 협정을 준수한다면"이라는 조건을 달았다. 그런데 이란의 조치는 중대한 합의 불이행으로 간주될 수 있다. 바이든의 선택에 역효과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기실 이번 사태는 '지구적 문제아'로서의 트럼프 행정부의 면모와 맞닿아 있다. 유엔도 인정했던 것처럼 이란의 핵협정을 잘 준수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에 대한 반감과 이스라엘의 로비에 넘어가 핵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곤 강력한 제재를 부과했다. 세컨더리 보이콧을 앞세워 다른 나라들의 이란과의 금융거래도 단절시켰다. 코로나19 창궐로 이란에서 인도적 위기가 커지자 인도주의와 관련된 제재는 풀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요구도 묵살했다. 동맹국인 한국의 선박이 나포된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미국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바이든 행정부는 출범 직후 이란과의 대화를 재개해 미국의 제재 해제와 이란의 농축 활동 중단을 '동시 행동' 차원에서 풀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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