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비서실 직원 성추행 사건과 관련, 피해자와 변호사·여성단체가 접촉한 사실을 서울시청 측에 알려준 인사로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전 최고위원)이 지목돼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은 이에 대한 언급을 삼가고 있다.
민주당은 전날 서울북부지검 발표 자료로 알려진 이같은 논란에 대해 31일 오후 현재 공식 입장을 내지 않고 있다. 민주당 허영 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공식적 수사 결과로 나온 내용이 아니라고 파악한다며 "좀 더 팩트 확인이 필요하다"고만 했다.
허 대변인은 당의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남 의원에게 직접 확인을 해 본 적이 없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전날 피해자의 박 전 시장 고소 준비 등이 어떻게 박 전 시장 측에 사전에 알려졌는지, 청와대나 서울중앙지검(지검장 이성윤)에서 고소장 접수 관련 피해자 법률대리인 측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서울시 측에 전달했는지 여부를 규명한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북부지검의 수사 결과는 '박 전 시장 측에 피소 정보를 알린 이는 중앙지검이나 청와대 관계자는 아니었고, 이들은 무혐의'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사의 결론보다 눈길을 끈 것은 '그러면 박 전 시장은 어떻게 그 사실을 미리 알고 극단적 선택을 했느냐'라는 의문의 해답이 밝혀진 부분이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으로부터 지원 요청을 간접적으로 전달받은 여성단체 활동가가 이를 여성단체 출신 민주당 남 의원에게 전달했고, 남 의원은 다시 이를 서울시 임순영 젠더특보에게 알린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졌다. 검찰이 수사결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사실관계는 다음과 같았다.
임 특보는 7월 8일 오전 외에도 이후 2차례나 더 이미경 소장에게 전화를 해 김재련 변호사 및 성폭력상담소 등 여성단체 동향을 캐물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임 특보는 박 전 시장이 소집한 '공관 회의'에 참석하던 중 이 소장에게 2번째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냐. 좀 알려달라'고 물었고, 이 소장은 '알려줄 수 없다'고 했다.
임 특보는 7월 9일 아침 7시경에도 이 소장에게 3번째로 전화해 '내가 구체적 내용을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상담을 하는 것인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인지, 법적 조치를 하는 것인지 알려달라'고 요구했고, 이 소장은 이에 다시 '확인해 줄 수 없다', '내가 이제 관련인이 되어서 아무 말도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전화·문자메시지로 전했다고 한다.
임 특보는 당시 서울시장 특보였지만, 그에 앞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성폭력문제연구소 등 여성단체에서 활동했었고 남인순 의원 보좌관도 지냈다. 박 시장을 겨냥한 '미투' 폭로가 준비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에서, 피해자 측 동향을 알아내 박 시장에게 전달했거나 하려고 시도한 것은, 서울시 특보로서는 어떨지 몰라도 여성운동가 출신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을 받을 만하다.
임 특보는 그러나 <프레시안>과 한 통화에서 "내가 피해자 관련 사실이나 구체적 내용을 물어본 바는 전혀 없다. 당시 나는 피해자가 누군지도 몰랐다"며 "(성폭력상담소 등이 피해자와) 상담을 하는 건지 기자회견을 하는 건지 등만 알려달라고 했고, 그나마 못 알려준다고 해서 '알았다'고 하고 끊은 것이 전부"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가장 큰 비난은 남 의원에게 쏠린다. 임 특보에게 전화한 것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기 위한 것으로 선해한다 하더라도, 임 특보가 현재 서울시청 소속 공무원임을 감안하면 결과적으로 피해자 측의 동향을 '가해자 측'에 전달한 꼴이다. 남 의원은 현재 기자들의 전화를 받지 않고 있다.
남 의원은 지난 7월 2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한 신상발언에서 "저는 박 시장에 대한 피소 사실을 몰랐다. (제가 박 시장에게) 피소 상황을 알려줬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그는 또 같은달 27일 최고위에서는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직 공직자의 위력에 의한 성폭력 문제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권력관계의 성 불평등을 균형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저부터 통절한 반성을 한다. 자책감과 죄책감이 겹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하고 눈물을 보이기도 했었다.
당시 '남인순의 눈물'은 민주당 젠더폭력TF 단장으로서, 또 여성계를 대표하는 최고위원으로서 박원순 시장 사건 관련 입장을 요구받고도 별다른 입장 표명을 하지 않았던 데 대한 반성으로 해석됐었으나, 그가 여성단체로부터 들은 '미투' 의혹을 서울시 특보에게 전달한 점에 비춰보면 그 눈물의 의미에 대해서도 달리 해석할 여지가 생긴다.
김영순 여연 상임대표에 대한 시민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다. 남 의원이 여연 대표 출신이고 여성 의제에 대해 활발히 발언해온 이력이 있긴 하지만, 박 전 시장과는 시민운동 시절부터 가까운 사이였고 '박원순계'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 남 의원에게 전화를 한 것이 과연 피해자 지원 활동을 도와달라는 순수한 의도였겠느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김 상임대표도 언론의 취재 요청에 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연은 전날 검찰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비로소 홈페이지와 SNS에 사과문을 올렸다. 여연은 "검찰 수사결과에 언급된 여성단체 대표는 여연 상임대표"라고 인정하며 "그에 의해 '사건 파악 관련 약속 일정'이 외부로 전해졌다. 이는 반성폭력운동에서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시인했다.
여연은 "피해자와의 충분한 신뢰관계 속에서 함께 사건을 해석하고 대응활동을 펼쳐야 하는 단체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동안 정의로운 싸움에 함께할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까웠고 송구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분투하신 피해자와 공동행동 단체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했다.
여연은 "이 일을 확인하고 상임대표를 직무배제했으며, 그동안 반성폭력운동의 원칙과 책무에 대해 다시 고민했고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고 사건 처리 경과를 일부 밝히면서도, 검찰 수사결과 발표 전까지 이를 함구한 데 대해서는 "피해자와 지원단체에 대한 2차 가해, 사건 본질의 왜곡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해당 내용이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 파장, 사건에 대한 영향 등을 고려해 바로 사실을 밝히지 못했다"는 해명을 내놨다.
이에 앞서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민우회 등 283개 단체로 구성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은 "공동행동에서 활동하고 있는 단체들은 피해 지원 요청과 지원 내용에 대해 외부에 전달한 바가 없다"며 "공동행동은 결성 시기부터 (김 상임대표) 소속단체를 배제했으며, 이 단체에 해당 일에 대한 소명·평가·징계 등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공동행동은 이미경 소장이 여연 김민문정 공동대표에게 공동 대응을 요청한 배경은 "사건의 성격과 규모, 위험성을 판단"한 결과였으며 여연은 "다른 지방자치단체장 위력성폭력 사건을 함께 대응한 바 있는 단체"여서 "공동 지원 필요성을 타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임 특보가 이 소장에게 전화해 사건에 대해 캐묻는 일이 발생하자 "(김 상임대표가)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에게 사실을 전달했을 가능성을 확인하고, 즉시 이 단체를 배제한 후 어떠한 관련 연락도 주고받지 않았다"고 여연은 밝혔다.
온라인에서는 김 상임대표와 남 의원에 대한 비판이 들끓고 있다. 작가 임승수 씨는 SNS에 쓴 글에서 "이 사람들은 도대체 여성운동을 왜 하는 건가? 성폭력 피해자 입장에서 고민해야 할 사람들이 가해자인 박 시장의 안위만 고려하니 이런 상황 대처가 나오는 것 아닌가"라며 "게다가 박 시장 측근들은 이 과정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여태껏 피해자가 무고한다는 식으로 계속 거짓말을 했다"고 비판했다.
열다북스 대표 국지혜 씨는 "여성단체 대표이며 평생을 여성운동에 헌신했다고 알려진 이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 앞에서 가장 먼저 가해자를, 특별시장을, 최고 권력자를, 자기 오랜 친구이자 동지인 남자를 걱정했다. 피해자는 뒷전이었다"며 "이들이 관심있는 것은 여성이 아니라 권력이며, 이들의 정체성은 여성단체가 아니라 민주당"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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