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21년, 접경지역에 봄이 와야 한반도에도 봄이 온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21년, 접경지역에 봄이 와야 한반도에도 봄이 온다.

[김귀옥의 평화문화만들기] 한반도의 분단 장벽을 허무는 일, 세계 곳곳의 장벽을 허무는 지름길

이번 겨울 엄동설한에 한 사람이 삼보일배를 했다. 그의 모습이 인류의 짐을 대신 지고 있는 시지프스의 그림자가 비치는 듯했다. 지난 12월 중순 영하권의 강추위에 땅마저 얼어붙은 땅 위에서 1km에 가까운 구간을 삼보일배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였다.

그는 "이제는 남북이 개성공단 재개 선언부터 하고 정상화를 위해 지혜를 모아 국제협력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봉쇄되어 있는 개성공단의 문을 열면서 남북을 가로막고 있는 분단의 장벽 허물기 운동을 했던 것이다.

또 다른 장벽의 시대

30여 년 전, 지구의 반대쪽에서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졌다.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장벽이 무너지면서 동서냉전의 닫힌 문도 활짝 열리게 되었다. 이제 브란덴부르크는 세계적 관광 명소가 되어 있다. 독일의 통일은 소련의 해체와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 과정에서 그간의 철의 장벽을 부숴버리고 열린 유럽을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를린 장벽의 잔해물들이 있던 곳에는 봉쇄되었던 시절을 회고하는 비석이나 전시물들이 서 있다. 전시물에는 장벽에 가로막혀, 또는 장벽을 넘다가 허망하게 죽은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되어 있었다. 희생 당한 사람들, 특히 청년들의 이름을 보면서 가슴이 아파했던 것은 한반도의 고통이 겹치기 때문이었으리라.

1990년대 이래로 한국 청소년들이나 청년들의 최고의 워너비 중 하나는 유레일을 타고 유럽 곳곳을 방랑하는 여행자가 되는 것이었다. 지금은 코로나19로 기대를 잠시 접었지만 그 꿈을 위해 청년들은 각종의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용돈을 모으곤 했다. 2017년 여름, 베를린 출장에서도 베를린의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East side gallery)나 브란덴부르크 광장 앞을 헤매고 있는 청년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1990년대 세계적 탈냉전은 새로운 시대를 불렀다. 세계무역기구(WTO), 지역공동체, 각종 다자주의 흐름이 지속되면서 세계는 지구촌 시대, 세계시민사회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장밋빛 낙관론이 대세를 이뤘다. 물론 한국에서는 이에 저항하는 반세계화 운동이 처절하게 이루어졌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번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그런데 최근 코로나19 팬더믹으로 다시 유럽 국가들이 봉쇄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팬더믹이 오기 전부터 봉쇄는 곳곳에서 있었다. 한반도의 248km의 휴전선은 말할 것도 없고 미국,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등에는 다양한 형태의 봉쇄의 장벽이 세워져 있었다.

갈등과 분쟁의 현지를 넘나들면서 취재하면서 글을 써온 팀 마샬(Tim Marshall) 기자는 최근 유럽을 보면 냉전의 절정기보다 더 많은 장벽들이 세워지고 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 한반도를 포함한 65개 국민국가에 세워진 장벽의 길이만도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한 흐름을 주도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임은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을 지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시절 공약했던 미국-멕시코 국경장벽 세우기를 취임 초기부터 이행했다. 어떤 정치가는 장벽을 '국경 안보'로 표현하기도 했다. 물리적 장벽은 미국 사회 속의 인종차별의 분리장벽도 다시금 높이 쌓아 올렸다. 물리적, 심리적 장벽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고 피해를 입고 있다. 인종차별의 분리장벽이 2020년 여름 미국 전역에 #Black Lives Matter 운동과 함께 반트럼프 운동을 가져왔고, 그 결과는 트럼프 대통령 연임의 실패로 나타났다.

겨울 속 한반도 접경지대

어릴 적 국어교과서에서인가 읽었던 '거인의 정원'이 간혹 떠오른다. 욕심 많은 거인은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정원에 들어와 정원을 망가뜨리는 게 싫어서 높은 장벽을 쌓아 올렸다. 장벽을 쌓아 올리자 정원은 조용해졌으나 차츰 꽃도 피지 않고, 새도 노래하지 않는 겨울의 추위만이 남은 곳으로 되었다.

어느 날 어린아이들이 다시 거인의 정원에 와서 놀 수 있게 했다. 다시 봄이 와서 꽃도 피고 새들도 노래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세월이 갈수록 깊은 울림이 있다. 안전과 행복을 위하여 벽을 높이 쌓을수록 행복해지지 않고, 오히려 벽이 낮아지고 문이 열릴수록 안전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아직도 한반도는 겨울이다. 한반도의 정원이라 할 비무장지대(DMZ)를 거인이 지키게 되면서,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농사짓고, 이웃과 사이좋게 살아가는 마을은 사라졌고, 궁예의 태봉국도 신화로 남게 되었다. 그곳에 상급의 천적이 사라지자 멧돼지, 살쾡이들이 번창하고 있는 새로운 생태공동체가 되었다. 또한 그곳은 비무장(Demiliterized Zone)이라는 말과는 정반대로 세계에서 가장 많고 끔찍한 중화기로 무장되어온 지대이다.

2018년 2월 평창 평화올림픽을 개최하면서 한반도에 '봄이 온다'는 노래가 울려 퍼지며, 2018년 4·27판문점선언에 이어 9·19 평양공동선언과 군사합의서까지 남북의 두 정상이 서명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협정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게 되리라 기대했다.

수십 년째 꿈만 꾸어온 비무장지대가 해체되고 드디어 봄꽃과 청년, 청소년들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푸른 정원으로 재탄생하리라 기대했다. 끊어진 도로와 철길도 다시 잇자고 남북은 약속했고, 철길 연결을 위한 준공식도 했다. 금강산 관광도 재개할 뿐만 아니라, 개성공단에서는 남북의 근로자들이 머리와 마음을 맞대고 일하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한반도는 겨울이다.

2000년대 들어 나는 겨울 방학이면 휴전선 부근의 지역이나 비무장지대 접경지역 마을을 조사하곤 했다. 마을 사람들 중에는 1945년 8월 15일, 분단의 그 날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까지만 해도 바로 옆 집, 옆 동네여서 무시로 드나들었던 친척집, 친구집이 38선 분단선 때문에 갈 수 없게 되거나 몰래 드나들었던 기억을 하는 분이 있었다. 일제 때 만든 수리조합으로 함께 농사를 지었는데 수리조합이 38선으로 갈라지면서 봇물을 막느니 마느니 하면서 고생했던 얘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일제 때 수풍발전소에서 내려온 전기가 분단되고도 얼마간은 내려왔으나, 전기요금 소동이 남북 정부 간에 나면서 전기가 끊기게 되었다는 불만으로 가득찬 기억담도 들을 수 있었다.

또한 38선이 휴전선으로 바뀌면서 기억은 더 많은 불만과 공포로 바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여름이면 동네 친구들이 멱을 감고 물장구를 쳤던 임진강은 그림의 떡처럼 변했다. 강화도 사람들의 삶 속에 분단이 어떻게 내재화되었는가도 이야기 들을 수 있었다.

강화 본도 옆의 교동면 사람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말할 것도 없고, 38선 이남이었기에 해방되어서도 장날에는 바다 건너의 연백군이나 개성으로 장 보러 가곤 했다고 한다. 공부를 잘하면 서울로 유학가기도 했지만, 개성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건너갔다고 했다. 한국전쟁이 나면서 연백이나 개성은 금기시되면서 관련 기억도 침묵으로 바뀌었다. 연백군이나 개성으로 건너간 사람은 자원적 월북자로 간주되었고, 남은 사람들은 '빨갱이집안'으로 몰려서 죽임을 당하거나 부역자로 고생하는 일이 허다했다.

그러한 사정은 민간인보다 군인이 더 많은 철원 접경지역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남북 군대가 경쟁적으로 틀어대는 방송은 일상의 평온을 깼다. 군사훈련 철이 되면 농경을 중단해야 했다. 간혹 사격 훈련의 유탄 때문에 집이나 농토가 파괴당하는 일도 있었다. 더 나쁜 것은 군사 훈련이나 지뢰로 사람의 목숨을 잃게 되거나 부상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최근에는 인권에 관심을 갖지만, 1990년대에만 해도 그런 불상사로 피해자나 그 유족들이 군대에 항의를 하면 군인들은 민간인 탓을 했고, 심하면 빨갱이로 몰기도 했다. 1982년 전국적으로 통행금지제도가 폐지된 이후에도 민통선(민간인출입통제선의 준말) 마을 사람들에게는 통금이 계속되었다.

최근에는 밤 12시부터 새벽 4시까지가 통금시간이 줄었으나 한 때는 저녁 8시,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10시로 늘어났지만 통금시간으로 인해 농경의 불편함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적인 불편함도 막심했다. 심지어 경조사 때에도 친인척 방문조차 제약당해야 했다.

▲ 철원역에서 내금강을 잇던 철길 ⓒ김귀옥

2000년 전후로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접경지대 사람들의 행복한 단꿈은 잠시였고, 또 다른 광경을 목격해야 했다. 돈 보따리를 짊어진 부자들이 모여들면서 동네 사람들이 헛바람만 들어,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또 파주 같이 이북이 가까운 곳에는 군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온갖 기구들을 실고 온 사람들이 확성기를 틀고 북녘을 향해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대북전단지를 담은 기구를 쏘아 올렸다. 이에 북측이 고사총 사격으로 응수할 때면, 접경지대 인근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곤 했다.

접경지대와 한반도 전역에 평화의 봄이 간절하다

분단 75년의 세월은 많은 사람들에게 분단이 당연한 것으로 되고 분단의 고통도, 상실감도 잊히게 만들고 있다. 전쟁만 없다면 분단된 채 살고 싶다고 말을 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분단의 장벽이 세워진 접경지대의 사람들은 집과 논밭을 분단과 군대에게 빼앗겼고, 심지어 생명마저 담보 잡힌 채, 수십 년간 불안하게 살고 있다.

과거 군부대가 대북사업으로 했던 대북전단지 띄우기를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더 이상 띄우지 않게 되자, 반북민간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위반하면서까지 대북전단지 등을 쏘아올리고 있다. 북한의 대응도 살벌하기 짝이 없다. 그런 민간단체들에게는 수십 년간 재산권은 말할 것도 없고, 생명권까지 위협을 받으며 접경지대에 살고 있는 우리 국민들이 보이지 않는 것인가?

▲ 외지인의 민통선 임시출입증 중 하나ⓒ김귀옥

누군가의 자유를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위태로워질 때, 요한 갈퉁(Johan Galtung)의 표현에 따르면 그 자유는 '폭력'일 뿐이다. 반북민간단체들이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위하여 접경지역 주민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권리, 생명권을 포함한 인권을 희생시켜서는 안된다. 또한 반북민간단체 역시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비평화적 수단을 더 이상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 지름길은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정원이 되도록 하고, 생명 공동체로 바뀌고 분단의 철책이 꽃으로 바뀌게 하는 것이다.

2018년으로부터 2019년에 걸쳐 북미관계의 중단으로 퇴행해 버린 남북관계를 보았듯이, 한반도 평화의 시대가 제대로 열리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이재강 경기도 평화부지사가 보여준 시지프스적 삼보일배가 그것을 시사하는 터이다.

그렇다고 한반도 평화시대가 완전히 열리기 전에는 접경지대 주민들이 계속 생명을 담보 잡힌 채 살라고 해서는 안된다. 그들에게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주어야 한다. 그 출발이 2020년 12월 개정된 남북관계발전에 관한 법률일 것이다. 수년 간 접경지역 주민들의 입법 건의, 청원, 지지 선언 등이 있어서 간신히 입법되어진 법률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은 미봉책이라는 점이다. 한반도에 진정한 봄이 오기 위해서, 남북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보장해 주기 위해서는, 한반도 구성원들이 모두 힘을 합쳐 비무장지대의 철책을 걷어내 버려야 한다. 한반도의 분단 장벽을 허무는 일은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일일뿐 아니라, 세계에 재무장되고 있는 장벽을 허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2021년 신축년 원단에 비는 한반도 평화의 꿈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김귀옥

김귀옥 교수는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월남민의 생활세계와 정체성: 속초'아바이마을'과 김제 '용지농원'을 중심으로>(1999)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04년부터 현재까지 한성대 교양학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주로 구술사 방법과 현지조사를 통해 분단과 전쟁, 여성과 민중, 이산가족과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로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저서로는 <구술사연구: 방법과 실천>, <그곳에 한국군'위안부'가 있었다>, <이산가족>(한국과 일본에 소개), <우리가 큰 바위얼굴이다> 등이 있습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