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탐사그룹 <셜록>이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지난 10월 8일 헌법재판소에 접수했다. 진실한 이야기는 보호 받아야 한다는 믿음으로 청구인으로 직접 참여한 것이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 기본 바탕이다. 사실을 말할 자유를 '진실유포죄'로 가둘 수 없다는 판단이다. <셜록>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앞두고 '진실유포죄'의 문제를 알리고자 <프레시안>에 '진실유포죄를 고발합니다'라는 연재를 진행한다. 진실을 말했다가 사실적시 명예훼손에 의해 형사 처벌당한 사례, 침묵을 강요당하는 피해자의 고통, 가해자의 역고소, 국내와 다른 해외의 명예훼손법 등을 담을 예정이다.
성폭력 가해자는 작은아버지였다. 삼촌 B 씨는 조카 A 씨의 몸을 자기 마음대로 만졌다. 피해를 입은 그때, A 씨는 미성년 고아였다.
A 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중학교 졸업 때까지 삼촌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고통의 시간, 삼촌의 성폭력은 6년간 이어졌다. 삼촌이 결혼하고 나서야, A씨는 끔찍한 일에서 해방됐다.
그래도 평범한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었다. 10년, 20년, 30년이 흘러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A 씨는 심한 우울증과 외상 후 스트레스를 앓았다.
일상생활부터 부부관계까지 원만하지 못했다. 남편과 잠자리를 가질 때에도 작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A 씨는 작은 아버지가 입을 틀어막던 손길도 생생하게 기억했다. 친할아버지가 작고한 2008년 9월 5일께, 불혹의 나이를 넘긴 A씨는 결심했다. 연락을 끊고 살던 친가 쪽 가족들 중 C 고모를 친할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만난 게 계기였다.
A씨는 장례가 다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당일 새벽, 한 인터넷 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렸다.
A씨는 같은 날 아침, 삼촌이 근무 중인 OO도청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도 동일한 내용의 글을 게시했다. 글을 올린 직후, A씨는 또 다른 고모 D에게 메일을 보냈다.
D 고모는 답장을 보냈다.
성폭력 가해자인 삼촌 B 씨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자기 친구들의 인터넷 아이디를 동원했다. 그러곤 조카이자 성폭력 피해자 A 씨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의 글을 작성했다. 그는 본인을 숨긴 채 마치 A 씨의 이웃이 올린 글처럼 위장했다.
삼촌은 A씨를 허위사실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2009년 4월 30일, 광주지방검찰청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허위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A씨의 싸움은 고단했다. 약 1년간 공판이 일곱 차례 열렸다. 고모 C, D 법정 증인으로 출석했다. 고모들은 B의 성폭력 혐의를 부인했다.
C 고모는 "지금 생각하면 성추행이지만,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등의 말로 작은 아버지를 감쌌다. 법원은 A씨의 행동을 유죄라고 판단했다.
2010년 6월 16일, 광주지방법원 형사6단독(법관 문방진)은 "A씨가 쓴 게시글의 내용이 진실에 가깝다"고 판단하면서도, 정보통신망법 위반에 의한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비교적 가벼운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가 이 기간을 지나면 처벌하지 않는 제도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대해 불복해 곧바로 항소했다. A 씨의 성폭력 피해 주장이 허위사실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A 씨의 재판은 대법원까지 갔다.
A 씨의 사실적시 명예훼손 관련 유죄 판결은 2010년 11월 25일 확정됐다. 그렇게 성폭력 피해자 A씨는 범죄자가 됐다.
2018년 서지현 검사에 의해 시작된 '미투(MeToo) 운동'. 그 이후에 A 씨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했다면, 결과는 달랐을까? 판단이 어렵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성폭력 가해자가 피해자를 고소해 공격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실제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보복성 역고소‘를 당하는 일은 흔하다.
가해자는 방어를 넘어, 성폭력 피해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무고함을 내세운다. 형법 제307조 1항은 이들의 방어수단이자 무기이기도 하다.
이를 근거로 검찰과 사법부의 판단은 가해자의 명예를 지키는 데 일조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형법 제307조 1항이 표현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현재,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최근에 나온 판결들만 살펴보아도, 사실적시 명예훼손죄가 여전히 '피해자 입막음'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 성인 남성이 여자 친구를 성폭행했다. 몰래카메라로 영상도 찍었다. 피해 여성은 연인이었던 이 남성을 준강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이 남성은 2019년 6월 26일 준강간죄 등으로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 여성은 그 남성을 직접 찾아갔다. 피해 여성은 그의 집 출입문 번호키를 풀고, 현관문 앞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피해 여성의 절규는 건물 복도까지 퍼졌다. 그 주변에 있던 식당 주인과 성명불상의 남성 2명도 피해 여성의 목소리를 들었다. 성폭력 가해자인 남성은 전 여자친구이자, 성폭력 피해자인 이 여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대구지방검찰청 서부지청은 이 여성을 주거침입과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성폭력 피해자를 피고인으로 만들었다. 사법부 역시 유죄로 판단했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2020년 8월 18일 주거침입과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이 여성에게 벌금 100만 원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두 번째 사례도 비슷하다. 이혼 소송 중인 한 부부는 2018년 4월 25일경 법원 앞에서 말다툼을 했다. 여성은 전 남편의 활동보조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실제 전 남편은 성범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전력이 있다. 전 부인과 말다툼을 한 당시에도, 이 남성은 타인의 신체 부위를 허락없이 사진 촬영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었다.
그럼에도 검찰은 전 부인에게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재판에 넘겼다. 서울북부지방법원도 사실적시 명예훼손 혐의를 받는 이 여성에게 벌금 50만 원을 2019년 9월 19일 선고했다.
여성은 전 남편의 전과를 사실 그대로 말했지만, 재판부는 그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여성에게 죄를 물었다. 쉽게 말해, '가해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가해자 명예 보호에 앞장서는 국가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사실적시 명예훼손 피소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면 된다.
만약 피해 사실을 누설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했다면, 먼저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범죄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한다. 갖은 방법을 동원해 사실 입증을 해냈다면, 이번엔 비방이 아닌 공익을 위한 목적이었다는 점을 밝혀내야 한다. 이걸 해낼 자신이 없는 피해자는 아무런 말을 해선 안 된다.
2016년 여성가족부 전국 성폭력 실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를 고백한 적 없는 피해자는 62.1%에 달한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다면, 앞서 말한 대로 사실을 입증하고 공익 목적을 밝힐 자신이 없다면, 이 통계의 피해자들처럼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않는 게 좋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으로 범죄자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이용해 성폭력 피해자의 입을 막는 가해자들의 수법은 언제쯤 사라질까. A씨와 같은 성폭력 피해자들은 수십 년째 같은 고민을 하며 202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린다.
이 기사는 <프레시안>과 <셜록>의 제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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