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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된 나라에서 김진숙의 복직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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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된 나라에서 김진숙의 복직은 당연하다

[기고] 김진숙의 부채감을 나눠질 때

2020년이 저물어가는데, 노동자들의 집단해고 소식이 들린다. LG트윈타워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들이 일방적인 해고통보를 받았다는 것이다. LG그룹의 자회사로부터 청소용역업체가 용역을 받는 방식인데, 청소용역업체인 '지수아이앤씨'의 지분 50%씩을 소유한 사람은 LG그룹 구광모 회장의 고모들이라고 한다. 이들은 매년 수십억 원의 현금배당금을 챙겨가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에게는 최저임금 수준의 낮은 급여를 강요해 왔고, 이제는 해고를 하겠다는 것이다. 회사측은 해고이유로 '용역계약 해지'를 들고 있지만, 실제로는 노조 활동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1세기가 되고도 20년이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노동조합을 만들고 활동할 권리조차 보장되지 않는다.

그리고 2020년 연말이 되면서 또 다른 얘기를 듣는다. 이제 정년퇴직 연령인 만60세가 되는 김진숙 지도위원이 연말까지 한진중공업에 복직해서, 단 하루라도 출근할 수 있도록 하자는 간절한 목소리들이다.

문득 2014년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연을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녹색당에서 마련한 자리였다. 그 자리에서 김진숙은 "내 신념을 만든 것은 치욕이다"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때부터 겪어왔던 비인간적인 노동현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당하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본인의 신념이 형성되었다는 얘기였다. 그 신념을 가지고 김진숙 지도위원은 35년 동안 해고노동자로서, 노동운동가로서 할 수 있는 역할들을 다 해 왔다.

그러나 정작 김진숙은 아직도 복직되지 못했다. 같이 해고당한 동료노동자들이 복직할 때에도 김진숙은 복직되지 못했다.

김진숙이 한 일이 무엇인데 복직되지 못하는가? 김진숙이 해고되던 1986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는 어용노조가 있었다. 여름에 55도까지 육박하고 겨울에 영하10도까지 내려가는 가혹한 작업환경 속에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된 끼니도 제공하지 않는 상황을 방치하는 어용노조였다.

▲ 김진숙 지도위원. ⓒ연합뉴스

1986년 김진숙은 이런 어용노조에 대항하여 제대로 된 민주노조를 만들려고 했다. 유인물을 만들어서 동료들과 함께 배포했다. 그게 전부이다. 그런데 해고됐다. 그렇다면 민주화된 나라에서 복직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1988년 국회에서 "아직도 경제발전을 위해서, 케이크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야"라고 외치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노무현과 함께 노동법률상담소를 열었던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었어도. 김진숙은 복직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진중공업은 2019년 이후 채권단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고,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이다. 그리고 산업은행 지분 100%를 정부가 갖고 있다. 그러니 김진숙의 복직문제에 대한 최종책임도 정부에게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김진숙은 복직되지 못하고 있다.

답답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부채감이 있다면, 김진숙의 복직을 외면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도 부채감 속에서 살아왔던 김진숙을 안다면, 그의 부채감을 나눠지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1986년 함께 해고됐다가 2006년 20년만에 복직을 하게 된 두 명의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보면서, 김진숙은 이렇게 썼다.

"나를 여기까지 꾸역꾸역 떠메고 온 9할은 사실 부채감이었다. ... 이제 와 말이지만 떠나고 싶은 날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이제는 정말 벗어나고 싶은 순간들이 얼마나 시시때때였는지 ... 제발 내일 아침에는 저들 중 누구 하나라도 안 나타나기를, 힘들어서 더는 못하겠다 취중이라도 선언해주기를 얼마나 빌었는지. 차마 먼저 가겠단 말은 못하고 그걸 빌미로라도 그만 떠나고 싶을 만큼 고단했던 날들" <소금꽃나무(후마니타스)> 중에서 -

그러나 김진숙은 복직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혹시나 그들에게 부채감이 넘어가지 않을까 걱정한다. 김진숙은 "내가 비로소 내려놓는 그 만성적이고 고질적인 부채감을 형들에게 고스란히 되지우는 게 아니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김진숙은 여전히 부채감을 놓지 못한다. 한진중공업 노동운동 과정에서 먼저 세상을 떠난 "박창수, 김주익, 곽제구, 그들에 대한 부채감도 20년 아니 40년이 걸리더라도 이렇게 내려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말한다.

이런 김진숙을 생각하면서, 올해 연말까지 단 하루라도 출근을 할 수 있기는 바라는 마음을 간절하게 가져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부채감이다. 이런 부채감이 김진숙의 부채감을 조금이라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부채감을 나눠서 그 무거운 부채감 속에서 살아온 김진숙 지도위원이 환한 얼굴로 출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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