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정기국회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정부여당이 연내처리를 공언했던 각종 법안들이 민주당의 독주 속에 해당 상임위에서 속속 의결되고 9일 현재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공수처장 추천에 대한 야당의 거부권을 삭제한 공수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제 공수처는 명실상부한 대통령의 친위부대가 된다. 여기에 검찰총장 찍어내기까지, 민주당의 권력기관 개혁은 이렇게 권력기관 장악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런데 공수처법 외에도 문제적인 법안이 처리되었다. 민주당과 정의당이 '5.18 특별법'에 역사왜곡처벌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 즉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상임위에서 통과시킨 것이다. 이 법은 허위사실을 유포하여 5.18 민주화운동을 부인, 비방, 왜곡, 날조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국가가 역사적 사실을 정의하고 이를 부인할 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차원의 포괄적인 5.18 진상규명 조사위원회가 올해 처음 구성되어 활동을 시작했고 '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위원회'도 출범하는 지금,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은 국가폭력의 역사를 사회가 어떻게 기억하고 피해자 회복에 노력할 것인지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5.18 역사왜곡처벌법, 국가보안법을 소환하다
민주당은 5.18 역사왜곡처벌법 제정의 이유로 '잘못된 역사인식의 전파와 국론분열의 방지'를 들고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유들이다. 국가가 전면에 나서 '다른 역사인식'을 '잘못된 역사인식'으로 규정하고 이를 국론을 분열시키는 사회해악적인 범죄로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법이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된 이후, 보수세력은 천안함 사건이나 6.25 왜곡에 대해서도 처벌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한국사회에는 이와 유사한 법률이 이미 있다. 국가보안법이다. 과거사나 역사인식을 직접 규율하는 법률은 아니지만, 북한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에 '다른 인식'을 퍼뜨릴 시에는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죄로 처벌해왔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5.18의 역사적 진실과 국가폭력의 문제를 한국사회에 알리는 과정 자체가 국가보안법과의 투쟁이었기 때문이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하고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를 처벌'하겠다는 국가보안법에 맞서 정치사상의 자유, 비판의 자유를 옹호하며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을 위한 투쟁이 5.18 운동이었다. 그런데 5.18에 대해 부인, 비방할 경우 형사처벌을 하겠다는, 국가보안법과 동일한 논리구조를 지닌 법이 5.18의 이름으로 제정되려는 것이다. “역사왜곡이 아이들 역사관 형성에 악영향을 미치고 나라의 정체성을 흔드는 정신적 내란죄”라며 5.18 역사왜곡처벌법을 옹호하는 민주당 양향자 의원의 발언에 참담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혐오와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명예훼손죄 고소?
그럼에도 5.18 역사왜곡처벌법에 대한 비판을 찾기 쉽지 않은 이유는 지난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5.18 망언과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지만원과의 결탁이 준 충격과 함께, 5.18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을 중심으로 퍼지던 5.18에 대한 왜곡과 혐오가 주요 정당의 국회의원을 통해 공언되고 학살 책임자 전두환이 회고록을 출간해 이를 반복하는 상황은 5.18 피해자들에게 견디기 어려운 폭력이다.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게도 비슷하게 반복된다. 총선과 겹친 세월호 추모 시기가 되면 후보를 비롯한 정치인들이 세월호 피해자에 대한 혐오발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한 주된 대응은 해당 발언자에 대한 명예훼손과 모욕죄 고소였다. 세월호의 경우 형사입건되어 수사로 이어진 것만 200여 건이 넘는다. 지난 주 전두환 유죄 판결도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이었고, 올 초에 있었던 지만원 유죄 선고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명예훼손죄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거나 거짓 사실을 드러내어 고소인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다. 어떤 명예인지를 사회적, 공적 차원에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소인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행위 일체에 대해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명예훼손죄는 전통적으로 권력집단이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왔다. 성폭력 가해자, 국가기관, 기업, 법인, 선거 시기 정치인들이 입막음을 위해 민형사상 명예훼손죄 고소를 남발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한국사회가 국가폭력 피해자 혐오행위에 대해 적절한 규제와 대응방법을 찾지 못한 사이, 피해당사자들은 명예훼손죄 고소를 통해 개별 사건, 특정인을 상대로 한 대응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는 5.18, 세월호 참사와 같은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한국사회 공통의 인식지평 속에서 나온 사법적 판단이 아니다. 어떤 '명예'든 상관없이 보호하려는 명예훼손죄에 따른 판결일 뿐이며, 이러한 판례가 쌓이는 것은 국가폭력에 대한 사법정의의 실현이 아닌 명예훼손죄 처벌 활성화로 귀결될 뿐이다. 명예훼손죄는 고소인에 대한 객관적 사회적 평가라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정당한 비판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한다.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특정되어야 하는 명예훼손죄 구성요건의 한계를 넘어야 한다며 등장한 5.18 역사왜곡처벌법 역시 기본권 침해의 성격을 띨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상규명의 목적은 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아니다
5.18,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인과 왜곡, 피해자들에 대한 혐오행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피해자 회복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5.18은 90년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법률'부터 시작해 전두환, 노태우 처벌, 국가유공자 예우, 국가기념일 지정까지 이루어졌지만, 법률에 근거해 조사권한을 부여받은 진상규명 조사위는 2020년에야 겨우 출범했다. 5.18에 대한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진상규명보고서조차 없는 것이다. 오히려 지난 수십 년 동안 지역주의와 결합한 정치적 거래의 대상이 되어왔고 그 결과 5.18에 대한 부인과 왜곡이 정치적 자산이 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세월호 참사 역시 진상규명조사위를 꾸리는 과정 자체가 투쟁이었고, 이제야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인 상황이다.
국가폭력 및 국가범죄에 대해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진상규명을 남긴다는 건, 한 사회가 해당 사건에 대한 공통의 인식지평을 마련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을 시작하는 일이다. 이 과정을 통해 무엇이 폭력인지, 어떤 행위가 인간존엄성을 침해하는 것인지, 피해자 회복과 재발방지를 위해 정부와 사회가 지속해야 할 책무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합의해나갈 수 있다. 이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통해 어떤 행위가 차별인지를 포괄적으로 규정하고 고용, 교육, 재화서비스, 행정서비스와 같은 '공적-시민권 영역'에서 차별 금지와 예방, 피해 구제를 분명히 규정해 차별과 혐오에 대한 최소한의 사회적 규범을 세우고자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국가기관-정치인-언론과 같은 공적 기관과 인물들에 의해 국가폭력이 부인되거나 왜곡될 때 가장 큰 충격을 받고 공적 부인과 배제를 경험하게 된다. 지만원의 국회 강연,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5.18 망언, 총선 후보들의 세월호 혐오 발언이 그것이다. 차별과 혐오를 막고 피해자들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다. 충실한 진상규명을 통해 혐오표현이 국가폭력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만드는 것. 이를 통해 '공적-시민권 영역'에서부터 국가폭력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차별과 혐오'를 금지하고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명예훼손죄의 확대, 역사왜곡처벌법에 의한 형사처벌이 정부와 국회의 역할은 아닐 것이다.
이번 정기국회 상임위에서 40년 만에 구성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조사기간을 연장하고, 조사범위도 확대하는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지난 20대 국회 때 개정된 과거사법에 따라 '2기 과거사위'도 새롭게 출범하여 일제강점기 이후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조사를 추가로 할 예정이다. 너무나 오래 지연되고 지체되어왔다. 그 시간만큼 피해자들은 차별과 혐오에 고통받아왔다. 이번 진상규명은 과거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사죄와 반성이 시작될 수 있도록 한국사회의 준거점을 만드는 소중한 작업이 되어야 하며, 진상규명의 목적이 형사처벌의 정당성 확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보다 형사처벌을 앞세우는 5.18 역사왜곡처벌법은 당장 폐기되어야 한다.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으로 읽는 세상'은 <프레시안>과 <비마이너>에 공동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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